[성경 73 성경 통독 길잡이] 예레미야서 예레미야는 벤야민 땅 아나톳에서 힐키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당시는 고대 근동 지역이 격변의 시기를 겪던 때였습니다. 아시리아와 신생 바빌론 그리고 이집트 등, 강대국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남유다 왕국은 남으로는 이집트와 북으로는 아시리아와 바빌론 사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예레미야는 남유다 왕국이 바빌론에 의해서 멸망하기 전 약 40년의 시간, 즉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절박한 시기를 겪는 동안 예언자로서 활동하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바빌론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침략해와서 성전을 포위하고 파괴하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으며,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것도 바라봐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이 더렵혀지고, 하느님의 백성이 몰락하는 것과 더불어 제기되는 신앙적인 도전의 문제를 품어내야만 했습니다. 예레미야서는 연대기순으로 전개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서를 읽어가는 동안 전후 관계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예레미야서는 주제별로 구분해서 살펴보는 것이 좋은데 먼저 1-10장은 예레미야가 예언자로서 소명을 받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1장 5절에 보면 예레미야 예언자는 ‘민족들의 예언자’로 소명을 받게 되는데, ‘민족들의 예언자’라는 말은 예레미야의 예언이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이웃 국가와 다른 민족들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잘 보여줍니다. 뒤이어 2장부터 9장까지는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예언자의 고발이 이어집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정치적인 혼란기를 겪으면서 한때 이스라엘은 세력을 확장하던 아시리아를 섬기면서 이방민족들의 신을 함께 경배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섬겨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본분을 저버리는 행동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고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셨지만 그들은 겉으로만 그런 모습을 보일 뿐 온 마음으로 이를 따르지 않았기에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제련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벌하셨습니다. 11장부터 20장까지는 예레미야 예언자의 다섯 가지 고백이 전해집니다. 여기서 예레미야는 하느님께 자신이 느끼는 모든 것을 털어놓습니다. 악인들의 길이 번성하고 배신자들이 성공해서 편하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제기되는 하느님의 공정성에 물음, 온 민족들을 대상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겪게 되는 시비와 조롱, 멸시와 박해로 인한 고통에 대한 분노, 유일한 피난처가 되어 주시는 하느님을 향한 의탁,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복수 요청, 예언자로서의 소명을 부여하신 하느님에 대한 불만 등 예메리야 예언자가 자신의 소명을 수행하는 동안 마주하게 되는 모든 감정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후대는 예레미야 예언자를 고독한 예언자, 고통의 예언자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예레미야의 고백은 하느님과의 밀접한 인격적 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또한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여러 어려움을 기도 안에서 하느님께 고백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끝까지 의탁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범이자 희망이 됩니다. 예레미야의 다섯 가지 고백은 예언자 개인으로서의 체험에 근거하고 있지만 이뿐만 아니라 혼란기를 겪고 있는 남유다 공동체의 상황에 대한 반영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 부분은 21장부터 29장까지인데 여기서 예레미야는 임금, 예언자, 사제 등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가는 정치 종교 지도자들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임금의 첫 번째 덕목은 모세로부터 받은 신명기 법을 충실하게 지키면서 정의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유다의 임금들은 하느님의 대리자로서 부여받은 임무를 소홀히 한 채 오히려 백성들을 탄압하였으며, 사치에 빠져들었습니다. 또한 당시에는 사마리아 예언자들, 즉 아시리아의 침공으로 멸망한 북왕국에서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던 예언자들이 있었으며, 예루살렘 예언자들도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거짓된 신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던 사마리아 예언자들을 비판하였으며, 예루살렘 예언자들의 경우에는 비도덕한 모습들과 하느님께 기도하지 않은 채 하느님의 뜻이 아닌 자신들의 생각을 전하는 태도들을 비판하였습니다. 뒤이어 예레미야는 이민족들을 향해서 하느님의 심판에 관한 신탁을 전한 뒤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의 신탁을 선포합니다. 예레미야가 비판했던 임금과 예언자들은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하지만 예레미야는 굴하지 않은 채 하느님이 전해주시는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돌아서라고 말합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은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거짓 예언자들에게 맞서서 바빌론에 항복하는 것이 국가의 멸망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선언합니다. 이는 예레미야 개인의 뜻이 아니라 “내가 오늘 민족들과 왕국들을 너에게 맡기니,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며 세우고 심으려는 것이다.”(1,10)하신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우고 심으려고 한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바빌론을 섬기게 되는 것은 단순한 멸망이나 하느님의 저버림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이 범한 잘못에 대한 것을 깨닫고 새롭게 첫마음으로 돌아오게끔 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의 채찍질입니다. 30-45장에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선포됩니다. 마지막 날에 하느님께서 흩어진 백성을 시온으로 불러 모아 새로운 계약을 맺으심으로써 하느님 백성을 회복시켜 주시고, 약속의 땅을 회복시켜주심으로써 이민족을 통한 하느님의 심판은 심판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과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이 드러납니다. 그러면서 예레미야는 다시금 신명기 신학, 즉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느님만을 섬기며 살아갈 때 축복을 받게 될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하느님으로부터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46-52장은 다른 민족들에 대한 하느님의 신탁을 전하고 있는데 이로써 예레미야가 모든 민족들의 예언자이며, 예레미야가 선포하는 하느님이 온 세상 모든 민족의 하느님이시라는 것이 장엄하게 드러납니다. 이처럼 예레미야 예언자는 북이스라엘 멸망 이후 홀로 남겨진 남유다 왕국을 향해 이방민족들과의 동맹 등의 인간적인 해결책만으로 접근할 경우 오히려 이방 신에 대한 우상숭배가 들어오는 등 문제가 악화될 뿐임을 알려준 뒤, 분명한 회개를 토대로 해서 하느님께 돌아오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며, 이것이 올바른 하느님 백성의 모습이라는 것을 담대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3년 3월호, 노현기 신부(사목국 기획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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