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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경 인물 이야기: 요시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3-13 조회수2,046 추천수0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요시야 (1)

 

 

“다윗과 히즈키야와 요시야 말고는 모두가 잘못을 거듭 저질렀다.”(집회 49,4) 집회서는 이스라엘의 그 많은 임금 가운데 단 셋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 하나인 요시야를 이렇게 극찬합니다: “요시야에 대한 기억은 향 제조사의 솜씨로 배합된 향과 같다. 그것은 누구의 입에나 꿀처럼 달고 주연에서 연주되는 음악과 같다.”(집회 49,1) 도대체 요시야 임금이 어떤 인물이었기에 이만한 찬사를 받을 수 있는지 그의 삶을 들여다봅시다.

 

참고로 어떤 학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요시야 임금의 행적 대부분은 실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이상적인 왕의 상을 제시하기 위해 꾸며진 것이라 주장합니다만, 여기서는 성경이 보여주고 있는 요시야의 모습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의 요시야 임금은 남유다 왕국을 기원전 640년부터 609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탄생은 이미 삼백 년 전에 예언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람이 제단에 대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외쳤다. “제단아, 제단아,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다윗의 집안에 한 아들이 태어나리니, 그 이름은 요시야이다. 그가 네 위에서 분향하는 산당의 사제들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치고,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태울 것이다.’”(1열왕 13,2)

 

요시야는 여덟 살에 유다의 16번째 임금이 되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데는 다음과 같은 사정이 있습니다. 히즈키야의 아들 므나쎄는 55년 동안이나 임금의 자리를 지키면서 심지어 예루살렘 성전 안에까지 우상에게 봉헌된 제단을 세우는 등(2열왕 21,4)의 행위로 아버지의 모든 노력을 수포가 되게 만듭니다. 이 때문에 신명기계 역사가에게 역대 최악의 임금으로 평가받는 그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시 아시리아 제국의 국력이 정점에 달한 때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므나쎄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아시리아의 종교를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의 충실한 속국임을 보여주려 하였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설사 이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또한 하느님께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그릇된 결정입니다. 그리고 므나쎄는 폭군이어서 예루살렘을 채울 정도로 무죄한 피가 많이 흐르게 했습니다(2열왕 21,16). 설상가상으로 그의 아들 아몬은 아버지보다 더 지독한 우상 숭배자이자 폭군이었습니다(2역대 33,23). 그 결과 아몬이 불과 재위 2년 만에 신하들의 모반으로 죽임을 당하자, 백성은 어린 요시야를 임금으로 옹립합니다. [2023년 3월 5일(가해) 사순 제2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요시야 (2)

 

 

요시야가 아직 어린 나이일 때는 섭정(攝政)이 실질적으로 나라를 통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기 유다의 종교적 상황은 므나쎄와 아몬 시대와 별 다를 바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시야는 스스로 올바른 신앙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 뜻대로 통치할 수 있는 나이인 스무 살이 되자 우상 숭배와 종교 혼합주의(하느님을 버리지는 않지만, 유일신이 아니라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로 보는 것입니다)를 혁파하고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화합니다(2역대 34,3-7). 유명한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시작된 것입니다(열왕기 하권의 기록은 조금 달라서 율법서를 발견한 이후에야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요시야가 스물여섯 살이 되던 기원전 622년에 그 개인의 인생에서 결정적일 뿐 아니라 유다교는 물론 그리스도교에도 가장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가 될 일이 생깁니다. 바로 대사제 힐키야를 감독으로 세워 성전을 보수하던 중 하느님의 ‘율법서’를 발견한 것입니다(2열왕 22,3-20). 여기서 발견되었다는 것은 그 율법서가 숨겨졌거나 버려져 있었음을 가리킵니다. 어느 경우든 율법서를 부정한 큰 권위가 있었다고 추정됩니다. 율법서를 숨겨야만 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을 만든 권위, 혹은 감히 율법서를 버릴 수 있을 정도의 권위 말입니다. 이것이 요시야 시대에는 아예 율법이 없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안에서는 우상 숭배와 종교 혼합주의조차 용인되는 율법, 말하자면, 손상 혹은 훼손되어 불완전한 율법이 있었다는 말이죠. 그런데 오랫동안 잊혔던 하느님의 온전한 법이 요시야의 눈앞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요시야 시대에 발견된 율법서의 정체에 대하여는 의견이 두 가지로 나뉘고 있습니다. 토라(오경) 전체로 보는 의견과 오늘날 우리가 읽는 신명기의 근간이 되는 원(原)신명기로 여기는 견해입니다.

 

다수의 학자는 원신명기 이론을 지지합니다.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요시야 임금이 행한 종교개혁의 내용이 신명 12장 등과 일치한다. 그리고 요시야가 주재한 파스카 축제도 탈출 12장보다는 신명 16,1-8의 규정을 따른 것이다. 탈출기는 각 가정에서 파스카를 지낼 것을 규정하지만, 신명기는 예루살렘에서만 지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시야가 파스카를 지낸 곳은 예루살렘이었다. 그리고 우상 숭배의 배척과 유일하신 하느님께 대한 열정의 강조는 신명기의 근본정신이다. [2023년 3월 12일(가해) 사순 제3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요시야 (3)

 

 

그런데 요시야 시대에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서를 토라로 이해하는 학자들도 있는데, 그 근거는 이러합니다:

 

요시야 임금이 우상 몰록에게 바치던 인신 공양을 철폐한 것은 신명기가 아니라 레위 18,21의 규정을 따른 것이다. 우리말 성경에 수호신들로 번역된 테라핌(2열왕 23,24) 또한 신명기에는 언급되지 않으며 창세 31,19에 나온다.

 

이 율법서가 토라든 신명기든, 그 안에는 당시의 율법이 갖지 못한 새로움이 있었습니다. 요시야는 서기관이 낭독하는 율법을 듣고서 참담한 마음에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 이것은 대표적인 애도의 행위입니다. 옷을 찢음으로써 마치 살이 찢겨 나가는 듯한 아픔을 표현하는 것이죠.

 

요시야가 애도의 행위를 취한 까닭은 오랜 세월 동안 임금에서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하느님의 진정한 율법을 모르고 살아온 결과 올바른 길에서 완전히 벗어난 유다가 죽음이 목전에 다다른 것처럼 위험한 처지에 처해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우리에 관하여 거기에 쓰여 있는 그대로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를 거슬러 타오르는 주님의 진노가 크오.”(2열왕 22,13)

 

되찾은 율법을 들은 요시야는 즉시 그 말씀에 따라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는 지방 성소들을 철폐함으로써 예루살렘 성전의 유일 성소로서의 권위를 확고히 하고 이방 종교의 흔적을 철저히 지움으로써 야훼 신앙의 순수성을 회복했습니다.

 

이 과정을 표현하는 데는 ‘끌어내다’, ‘태우다’, ‘내쫓다’, ‘허물다’, ‘가루로 만들다’, ‘죽이다’ 등 아주 강한 어조의 단어들이 사용되었습니다(2열왕 23,4-20). 즉시 하느님께로 돌아가고자 하는 요시야 임금의 뜨겁고 단호한 의지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시야 임금은 남 유다 왕국의 백성들만이 아니라 멸망한 북 이스라엘 왕국의 유민들까지 예루살렘으로 불러 모아 파스카 축제를 함께 지냅니다(2역대 35,18).

 

요시야는 이 파스카 축제의 거행으로써 출애굽 사건을 통해 하나의 백성으로 탄생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재확립하고자 한 것입니다. 또한 참으로 생명을 주는 신은 오직 하느님밖에 없다는 유일신 신앙을 재천명한 것입니다. [2023년 3월 19일(가해) 사순 제4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요시야 (4)

 

 

요시야 임금이 개혁을 추진하고 있을 때, 국제 역학관계에도 중대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역사상 최초의 제국 아시리아는 아슈르바니팔의 죽음(기원전 627년) 이후 내분을 겪으며 힘이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이 틈을 타 세력을 키운 신바빌로니아가 결국 기원전 612년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를 함락하며 고대 근동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집트의 파라오 느코 2세는 기원전 609년 멸망의 위기에 처한 아시리아를 지원하기 위해 북상해왔습니다. 이 사건은 신바빌로니아의 연대기에도 기록된 역사적 사실입니다.

 

사실 이집트와 아시리아는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라 근동의 패권을 두고 오래 다툰 사이였죠. 그렇지만 신바빌로니아가 아시리아를 무너뜨리고 지나치게 강대한 제국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 힘의 균형을 맞추려 출전한 것입니다.

 

느코 2세의 출전 소식을 들은 신바빌로니아는 유다의 요시야 임금에게 이집트군이 아시리아군과 합류하는 것을 막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외경 에즈라 1서와 탈무드는 이때 예레미야 예언자가 요시야에게 참전을 만류하는 조언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시야는 군대를 이끌고 이집트 군대와 맞서는데,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남의 영토를 무단으로 침입한 이집트에 주권을 주장하기 위해서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회에 아시리아가 빼앗은 북쪽 땅을 회복하려 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북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키고 남 왕국 유다를 핍박해온 아시리아에 대한 복수를 동기로 보기도 합니다. 신바빌로니아의 우세를 전망하여 승자의 편에 서려는 것이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요시아는 천혜의 요새인 므기또에서 이집트 군대를 맞이하지만, 전투 중 서른아홉의 젊은 나이에 전사합니다(2열왕 23,29).

 

이것은 결코 독자들이 기대한 요시야 이야기의 결말이 아닐 것입니다. 요시야의 죽음은 하나의 심각한 신학적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어떻게 므나쎄와 같은 악한 임금은 예순일곱까지 장수하고 이스라엘에서 가장 의로운 임금인 요시야는 젊은 나이에 이방인의 손에 그처럼 허망하게 죽임을 당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상선벌악의 원칙이 허상에 불과하다면 종교도 윤리도 존립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2023년 3월 26일(가해) 사순 제5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요시야 (5)

 

 

요시야의 죽음에 대한 역대기의 해석입니다: “나는 오늘 그대를 치러 온 것이 아니라, 나와 싸움을 벌이는 왕실을 치러 온 것이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서두르라고 하셨소. 그러니 나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거스르지 마시오. 그러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그대를 멸망시키실 것이오.”(2역대 35,21)

 

유다 전승은 하느님의 예언자의 말을 따르지 않은 벌로 보기도 하고, 기원전 587년에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자비로운 죽음을 내리신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요시야는 흠도 티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 그도 죄를 지었습니다. 종교개혁 전까지는 요시야도 므나쎄와 아몬이 행하던 그릇된 경신례를 따랐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맥락에서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그의 완전한 회개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회개의 힘은 놀랍습니다. 성경은 회개한 요시야가 마치 처음부터 어떤 죄도 짓지 않은 것처럼 최고의 찬사를 보내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는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였으며, 자기 조상 다윗의 길을 그대로 걸어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았다.(2열왕 22,2)

 

그런데 인간적으로 볼 때, 요시야는 무척 외로웠을 것입니다. 그의 종교개혁을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탈무드는 요시야의 종교개혁 이후 많은 이들이 유다를 떠나 각지로 흩어졌다고 합니다. 심지어 유다가 멸망한 사건에도 백성들은 요시야의 탓을 합니다: “우리가 하늘 여왕에게 향을 피우는 일과 술을 부어 바치는 일을 그치자, 모든 것이 부족해지고 칼과 굶주림으로 망하게 된 것이오.”(예레 44,18) 그러나 요시야는 오직 하느님께 대한 열정으로 개혁의 길을 꿋꿋이 걸었습니다.

 

성경은 요시야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요시야처럼 모세의 모든 율법에 따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께 돌아온 임금은, 그 앞에도 없었고 그 뒤에도 나오지 않았다.”(2열왕 23,25)

 

요시야는 자신이 들은 율법의 말씀을 그대로 충실히 지킨 ‘율법의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4-5) [2023년 4월 2일(가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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