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겟세마니 해마다 사순 시기가 되면 더 생각나는 예루살렘 성지가 있습니다. 올리브 산기슭에 자리한 겟세마니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를 기념하는 최후의 만찬을 하신 뒤, 기도하시려고 키드론 골짜기 길을 거쳐 이곳에 오셨습니다. 그날 밤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대사제의 무리에게 넘긴 곳도 겟세마니입니다. 겟세마니는 ‘기름을 쥐어 짜는 틀’이라는 뜻입니다. 올리브 산 아래 자리한 장소에 걸맞게 올리브 기름을 짜던 방앗간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명의 의미대로, 예수님께서는 그야말로 ‘쥐어 짜는’ 고통 속에 성부께 기도하셨습니다: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 이 기도를 바치신 장소로 전해지는 바위가 겟세마니 대성전 안에 남아 있습니다(사진). 올리브 나무는 나무 중의 나무라고 칭송될 만큼 수명이 깁니다. 천 년 이상 산다고 하지요. 전승에 따르면, 겟세마니에 생존해 있는 올리브 나무들은 이천 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원후 1세기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는 로마인들이 열혈당원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예루살렘과 그 주변의 나무들을 모두 잘라버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편 128,3에서 찬양하듯이, 올리브 나무는 중심 줄기가 잘려도 햇순이 돋아나 그 생을 이어갑니다. 그렇다면 전승이 알려주는 것처럼, 겟세마니의 고목들도 이천 년이 넘었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겟세마니에서 아래로 조금만 걸어 내려오면 동굴이 하나 나옵니다. 그곳은 예수님께서 홀로 기도하실 때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곳”(루카 22,41), 바로 제자들이 기다렸던 장소입니다. 지금은 경당으로 보존되어 있는데요, 예수님 시대에는 기름을 짜던 방앗간이었던 듯합니다. 동굴 형태라 사람들이 추위나 비를 피해 쉬어 가기도 한 것 같고요. 제자들도 이곳에서 예수님을 기다리다 슬픔에 지쳐 잠들어버렸습니다(루카 22,45). 우리는 흔히 겟세마니를 동산이라 칭하지만, 실상 신약 성경에서는 “동산”이라 일컬어진 적이 없습니다. 단지 “겟세마니라는 곳”(마태 26,36)으로 나옵니다. 오히려 겟세마니는 올리브 산기슭에 자리해 있어 ‘동산’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밑에 자리한 키드론 골짜기에서 올려다보면 위치가 꽤 높습니다. 또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겟세마니 동산’을 ‘에덴 동산’과 연관 지어 이해하였습니다. 말하자면, 겟세마니는 원조들이 죄를 지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뒤, 하느님께서 그 후예인 우리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 마련하신 동산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곳은 예수님께서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시어(히브 5,8) 우리 모두에게 구원을 마련해주신 성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3년 4월 2일(가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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