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광야의 불 뱀 사건 이스라엘의 남부 지방에 자리한 네겝 광야에는 ‘팀나’라 하는 유적지가 있습니다. 기원전 1200-900년경 구리 광산으로 유명했던 곳입니다. 팀나에서는 옛 광산의 흔적뿐 아니라 과거 이집트인들이 지어 놓은 하토르 신전도 볼 수 있는데요, 그곳에서는 12센티미터가량의 구리 뱀도 발견되어 민수 21,4-9의 사건을 떠올려 줍니다. 배경은 이렇습니다. 민수 10,11부터 21장까지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광야를 떠나 가나안의 입구 모압 벌판까지 가는 여정을 다룹니다. 그런데 광야 생활이 거의 끝나갈 무렵 양식과 물이 없다며 백성이 또 다시 불만을 터뜨렸고, 이에 주님께서 불 뱀으로 그들을 벌하시는 일이 벌어집니다. 백성이 이집트에서 갓 탈출했을 때만 해도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관대히 대하시고 불평이 터져 나올 때마다 해결책을 주셨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동안 주님의 보살핌을 받고 그분의 능력도 보아왔는데도 여전히 불신과 반역을 일삼았기에, 그들을 엄하게 다스리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느님께서 일부러 불 뱀 몇 마리를 보내어 백성을 치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디 광야는 불 뱀과 전갈이 사는 곳이니(신명 8,15) 감사를 모르는 백성이 불 뱀에게 공격당하도록 내버려두셨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제야 백성이 회개하여 모세에게 중재를 청하자 하느님께서 치유법을 알려주십니다. 백성을 물었던 뱀의 형상을 만들어 기둥에 달아 놓으면 그것을 바라보는 이마다 낫게 되리라는 거였습니다. 이렇게 징벌의 도구였던 뱀은 치유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같은 동종요법(同種療法)이 이집트 유물에서도 종종 발견된다는 점입니다. 옛 이집트인들은 뱀의 형상을 부적으로 달고 독뱀이나 악령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역설적이지만, 뱀의 형상으로 뱀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파라오 왕관에 달린 코브라 휘장(우래우스)이 대표적입니다. 그들은 적이 나타나면 왕관의 코브라가 파라오를 보호해준다고 믿었습니다. 당시 광야에서 뱀에게 물린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탈출한 1세대와 그 후손들이니, 뱀의 형상이 힘을 발휘한다고 믿었던 이집트의 전통을 익히 알고 있었고, 불 뱀을 만들어 기둥에 달면 뱀의 추가 공격도 막고 상처까지 치유되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낯설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때 모세가 ‘구리’로 뱀 형상을 만든 건, 그가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향하던 경로에 구리 산지인 팀나가 자리해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곳은 당시 백성이 떠나온 “호르산”과 그들이 향하는 “갈대 바다”(민수 21,4) 사이의 지점이라 접근이 쉬웠을 터입니다. 구리 뱀 사건은 이후 요한 3,14에 다시 등장합니다. 십자 나무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기둥 위 불 뱀에 비견됩니다. 이는 높이 달린 구리 뱀을 바라보면서 살 수 있게 된 광야 사건을 예형 삼아, 죄악 때문에 죽음을 선고받은 인류도 십자가에 현양(顯揚)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속죄하면 구원되리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3년 6월 11일(가해)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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