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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하느님 뭐라꼬예?: 판관 기드온과 함께하신 하느님의 힘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7-03 조회수2,172 추천수0

[하느님 뭐라꼬예?] 판관 기드온과 함께하신 하느님의 힘

 

 

40년 동안의 평온

 

판관기가 전하는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습니다. “‘주님, 당신의 원수들은 모두 이렇게 망하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은 힘차게 떠오르는 해처럼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 뒤로 이 땅은 마흔 해 동안 평온하였다.”(판관 5,31) 이스라엘 자손은 판관 ‘드보라’와 (가나안족과 평화롭게 지내던) 카인족 헤베르의 아내 ‘야엘’의 용감한 활약으로 가나안 지역의 하초르를 다스리던 임금 ‘야빈’의 군대를 내쫓게 됩니다. 곧 이스라엘 자손은 온전히 하느님의 힘에 의지했던 두 명 여인의 활약 덕분으로 가나안의 한 임금과 그 장수 ‘시스라’를 죽음으로 내몰고 그 성읍을 멸망시킨 것입니다. 판관기는 이렇게 하여 이후 이스라엘에 평화의 시대가 찾아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판관기는 (판관기 5장의 말미에서) ‘40년 동안의 평온’이란 단서를 달았듯이, (판관기 6장의 시작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자 하느님께서 그들을 일곱 해 동안 미디안 족의 손에 넘겨버리셨고, 이에 고통에 신음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느님께서 판관을 보내시어 구원하신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이런 식의 서술이 판관기 전체에 걸쳐 계속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서술되는 기쁜 소식과 함께 등장하는 인물이 판관 ‘기드온’입니다.

 

지금 내가 평온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언제든지 환난과 고통의 시기가 나에게 찾아올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깨어 살지 않으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사는 사람에게 시련의 때는 언제 어디서 다가올지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 레지오 단원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시기를 살고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간 레지오 마리애가 수십 년 평온의 시기를 누렸다면 지금은 코로나19 이후 시련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하느님께서 우리의 간절한 부르짖음과 노력을 어여삐 여기시어 새로운 일꾼들을 보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레지오 마리애에 다시 번영의 시기가 찾아오기를 소망하며 함께 힘을 모읍시다!

 

 

기드온의 부르심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그들을 일곱 해 동안 미디안족의 손에 넘겨 버리셨다. … 그들(미디안족)은 이렇게 와서 이 땅을 황폐하게 만들곤 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미디안 때문에 큰 곤궁에 빠졌다. 마침내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께 부르짖었다.”(판관 6,1-6)

 

기드온에 대한 하느님의 부르심은 먼저 하느님께서 (미디안 때문에 부르짖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예언자 한 사람을 통해 준비되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미디안족은 어떤 사람들인지 살펴봅니다. 먼저 ‘미디안’은 (구약성경에서) 아브라함이 다시 ‘크루라’라고 하는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그에게서 태어난 네 번째 아들로 언급됩니다. 이때 아브라함이 미디안과 그 형제들을 상속자인 이사악과 구별하기 위해 이들을 요르단강 동쪽으로 내보냈지요. 그럼으로써 미디안과 그 형제들은 그 지역 원주민들 중의 하나가 됩니다.(창세 25장 참조)

 

훗날 형들에게 미움을 사 구덩이에 던져졌던 요셉을 지나가다 구해내어 이스마엘인들에게 팔아넘긴 사람들이 미디안 상인들이며,(창세 37장) 이집트에서 도망친 모세가 결혼할 때 장인어른이 되는 사람이 미디안의 사제 ‘이트로’이고, 그렇게 하여 40년 동안 양치는 목자생활을 한 곳이 미디안이었지요.(출애 3장 참조) 즉 성경에 따르면, 미디안은 먼저 사람 이름으로 언급되었다가, 여러 번에 걸쳐 이스라엘과 대립하는 민족명으로 발전되었고, 왕정시대에는 더 이상 민족공동체가 아닌 요르단 건너편 남부를 지칭하는 단순한 지역명으로 정착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미디안 때문에 부르짖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애원을 들으시고 한 예언자를 보내주셨는데, 그가 전한 하느님의 말씀이 이러합니다.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 너희가 아모리족의 땅에 산다고 해서 그 신들을 경외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너희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판관 6,10) 이 말씀은 (가나안 땅에 사는 동안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아닌 가나안족의 신들을 경외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한)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내리시는 경고의 말씀이며, 동시에 다른 신을 따르는 그들을 징벌하겠다는 하느님 의지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에 이어 판관기는) 미디안족의 눈을 피해 밀을 감추어 두려고 포도 확에서 밀 이삭을 떨고 있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에게 나타난 주님의 천사의 말을 전합니다. “힘센 용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선조들에게 그러하셨던 것처럼 당신께서 함께하겠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말씀입니다.

 

– 이사악에게: “나는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느님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창세 26,24)

– 모세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이것이 내가 너를 보냈다는 표징이 될 것이다.”(탈출 3,12)

– 여호수아에게: “힘과 용기를 내어라. 무서워하지도 말고 놀라지도 마라. 네가 어디를 가든지 주 너의 하느님이 너와 함께 있어 주겠다.”(여호 1,9)

 

하지만 기드온은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의문을 제기합니다.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계시다면, 어째서 저희가 이 모든 일을 겪고 있단 말입니까? … 지금은 주님께서 저희를 버리셨습니다. 저희를 미디안의 손아귀에 넘겨 버리셨습니다.”(판관 6,13) 이에 하느님께서는 기드온을 구원자로 보내주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너의 그 힘을 지니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족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여라. 바로 내가 너를 보낸다.”(판관 6,14) 이 말씀에도 기드온은 자신이 집안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자인데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이냐고 반문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겠다. 그리하여 너는 마치 한 사람을 치듯 미디안족을 칠 것이다.”(판간 6,16) 하고 재차 강조하시며, 표징을 요구하는 기드온의 청을 들어주기까지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계시다면 어째서 제가 이런 일을 겪고 있단 말입니까? 지금은 하느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 같아. 하느님께서 계시다면 세상이 이럴 수는 없어!” 살아가면서 이런 생각을, 이런 말을 얼마나 자주 되풀이했든가 반성해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으로 계셨을 뿐인데…. 그분이 그저 그 자리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계시기만 한 것처럼, 우리들은 그분의 침묵 앞에 그분을 원망하고 비난하고 심지어 저주를 퍼붓곤 합니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겠다!” 하느님의 이 말씀보다 더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말씀이 있을까요? 내가 어려운 시간에 처하여 고통 중에 있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런 나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걱정하지 말라며 말씀하여 주실 것입니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겠다!” 침묵하시는 듯해도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우리를 위로하고 계실 것입니다. 함께 하시겠다는 하느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용감히 적들과 맞선 기드온처럼, 임마누엘 하느님을 신뢰하며 힘을 냅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7월호,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대구대교구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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