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초막절 요즘처럼 비가 자주 내리는 시기에는 이스라엘에서 지내던 초막절이 생각납니다. 10월 초 우기와 함께 맞이하는 명절입니다. 이때가 되면 집집마다 초막을 짓고 이레동안 이집트 탈출을 기억하는데요, 레위 23,43에선 백성이 광야에서 초막을 짓고 산 데서 기원한 명절이라고 설명합니다. 말하자면, 머물 곳 없이 떠돌던 과거를 기억하며 현재의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일깨우는 명절입니다. 전승에 따르면(『창세기 라바』 48,10) 아브라함이 한창 더운 대낮에 길손으로 가장한 천사 셋을 집으로 맞아 환대하였기에(창세 18,1-5),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뜨거운 광야에서 보호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광야에선 나무가 거의 없어 천막을 치고 살았지만, 가나안 정착 뒤에는 농경 사회가 되면서 초막으로 바뀌어 전해진 듯합니다. 실제로 초막절의 다른 이름은 “추수절”(탈출 23,16)입니다. 포도와 올리브 등 한 해 동안 땀 흘려 얻은 결실을 수확하는 때라(신명 16,13) 우리 민족의 한가위와 비슷합니다. 곧 초막절은 이집트 탈출이라는 역사적 의미에 농사 절기가 더해진 명절인 셈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듯이, 초막절도 온 이스라엘 백성이 기뻐하며 기다리는 절기였습니다(신명 16,14). 또한 이날은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해야 하는 의무 축제이기도 했습니다(탈출 23,14-17). 하지만 성전이 파괴된 이후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회당과 집을 오가며 명절을 지냅니다. 느헤미야서에 나오는 대로, 마당과 옥상 같은 곳에 초막을 짓고서 말입니다: “백성은 나가서 나뭇가지들을 꺾어다가 저마다 제집 옥상이나 뜰, 하느님의 집뜰이나 (···) ‘에프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만들었다”(8,16). 우리가 미사 때 독서와 복음으로 성경을 조금씩 나누어 읽듯이 그들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오경을 읽습니다. 그런데 초막절 뒤 여드렛날, 그동안 읽어온 오경을 모두 끝내고, 창세기부터 새로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초막절에 온 백성이 율법을 읽고 배워야 한다.’라는 규정이 신명 31,10-12에 나온다는 데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초막절 즈음 새해가 시작하니 그럴 법도 하지요. 탈출 23,16에서는 “추수절”이 “연말”로 언급되기도 합니다. 초막절이 새해와 연결되기에, 이때 내리는 가을 비는 이스라엘에서 “이른 비”(신명 11,14)라 일컬어집니다. 건기 동안 굳은 토양을 열어 농부들의 파종을 돕는 은총 같은 비지요. 그 뒤 12월부터 2월까지는 장맛비, 3-4월에는 봄비인 “늦은 비”(신명 11,14)가 내리는데, 이것은 그해 내리는 ‘마지막 비’라는 뜻입니다(이 무렵 파스카를 지냅니다). 그래서 예부터 근 반년만에 내리는 초막절 비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즈카 14,16-17에서는 초막절에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경배하지 않으면, 그들 위에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까지 하였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초막절 뒤 여드레날 ‘임금이신 하느님’께 기우제를 바칩니다. 이런 배경에서 예수님께서 초막절에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요한 7,37) 하신 말씀도 더욱 뜻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가 있다. [2023년 7월 9일(가해)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 미사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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