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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다윗 이야기: 이래서야 어떻게…?(2사무 6,9) - 다윗이 계약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7-19 조회수1,541 추천수0

[다윗 이야기] “이래서야 어떻게…?”(2사무 6,9) - 다윗이 계약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다

 

 

일곱 번째 이야기 : 2사무 5-6장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임금이 된 다윗은 왕권을 확립하고자 두 가지 일을 실행에 옮긴다. 우선 여부스족이 살던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다윗 성이라고 이름 짓는다.(5,6-12) 사울을 섬겼던 북부 지파들의 땅과 다윗이 7년간 다스린 유다 헤브론의 중간 지점이었기에 하나의 왕국으로 통합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예루살렘은 해발 약 750미터에 위치한 요새 성읍으로 여호수아 시대에 유다 지파에게 주어진 땅으로 정복하지 못했었다. 방어에는 유리했으나 성 안에 샘이 없어 밖에서 물을 끌어와야 했는데, 다윗은 그 수로를 통해 도성에 잠입해 함락시켰다. 다윗은 훗날 이 산성 남쪽에 제단을 쌓았고, 여기에 솔로몬이 성전을 세우게 된다. 다윗의 세력은 티로 임금이 사절단을 보내올 만큼 점점 커지는데, 성경은 “주 만군의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이다.”(5,10)라고 설명한다.

 

곧이어 다윗은 필리스티아를 두 차례 패배시켜 영토를 모두 회복한 후 주님의 계약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올 결심을 한다. 계약 궤는 이집트 탈출 후 광야에서 주님의 지시에 따라 만들어졌다. 아카시아 나무로 제작되어 순금을 입혔으며 안에는 주님께서 주신 증언판을 넣었다. 이 계약 궤 위에는 순금으로 만든 속죄판을 얹었다. 판의 양 끝을 두드려 커룹 둘을 만들어 세웠고 고리 두 개를 달아 채를 끼워 레위인이 운반하게 했다.(탈출 25,10-22; 37,1-9) 계약 궤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시고, 그들을 지켜주시는 표지였다. 계약 궤는 본래 실로 성소에 있었는데,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빼앗겼다가 우여곡절 끝에 유다 바알라(키르얏 여아림)에 사는 레위인 아비나답이 이십 년간 모시고 있었다.(1사무 4장; 7,1) 다윗은 새 수레를 만들어 계약 궤를 싣게 한 후 소가 끌도록 했다. 이 행사는 큰 축제의 분위기로 시작되었으나 수레를 몰던 아비나답의 아들 우짜의 죽음으로 갑작스레 중단된다.(6,6-7)

 

“다윗은 주님께서 우짜를 그렇게 내리치신 일 때문에 화가 났다.… 그날 다윗은 주님을 두려워하며, ‘이래서야 어떻게 주님의 궤를 내가 있는 곳으로 옮겨 갈 수 있겠는가?’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다윗은 주님의 궤를 자기가 있는 다윗 성으로 가져가려 하지 않고, 갓 사람 오벳 에돔의 집으로 옮겼다.”(6,8-10)

 

유다 율법에 따르면 하느님의 궤는 레위인들이 어깨에 메서 운반해야 하고 궤에 손을 댄 자는 죽는다.(민수 4 ,15;7,8-9; 여호 8,33) 수레가 흔들리자 궤를 붙들었던 우짜의 행동이 잘못됐다 하더라도 이 행사에 참여했던 이들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벌 이상의 의미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 일로 ‘다윗은 화가 났고, 주님을 두려워했다.’고 성경은 전한다. ‘화(火)’는 흔히 자신의 의지가 방해받거나 좌절되었을 때 가장 먼저 올라오는 감정이다. 계약 궤 이동은 다윗 성에 하느님의 현존을 자리매김함으로써 왕권의 정통성을 굳히려는 다윗의 정치적 목적이 컸다. 그런데 이 사건으로 거침없이 펼쳐지던 다윗의 계획에 빨간불이 켜지게 된 것이다. “이래서야 어떻게…?”라는 다윗의 반응은 자신의 계획이 틀어지는 상황 앞에서 터져 나온 탄식이었다.

 

성경은 다윗이 예루살렘을 왕국 전체의 수도로 정한 후에 주님께서 자기를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튼튼히 세워주셨음을 “알게 되었다.”(5, 12)고 전해준다. 사람은 뭔가 ‘안다.’고 여길 때 흔히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여기고 이를 앞세우기 쉽다. 다윗도 자만했던 것일까? 필리스티아와 전쟁을 하게 되면, 다윗은 늘 주님께 여쭙고 “네 손에 넘겨 주겠다.”(5,19)는 말씀에 따라 전쟁에 나서곤 했다. 그런데 ‘주님의 궤를 자기가 있는 다윗 성으로 옮겨 갈’ 일에 관해서는 주님께 여쭸다는 언급이 없다. 하느님의 현존을 하느님이 아닌 인간의 선택으로 결정한 셈이다. 다윗은 새 수레를 장만하고 여러 준비를 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친 듯하다.

 

“주님의 궤가 갓 사람 오벳 에돔의 집에서 석 달을 머무르는 동안, 주님께서는 오벳 에돔과 그의 온 집안에 복을 내리셨다. 주님께서 하느님의 궤 때문에 오벳 에돔과 그의 모든 재산에 복을 내리셨다는 소식이 다윗 임금에게 전해지자, 다윗은 기뻐하며 오벳 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하느님의 궤를 모시고 올라갔다.”(6,11-12)

 

다윗은 처음 계획을 포기하고 석 달을 기다리는 선택을 했다.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 기다림은 필수적인 듯하다.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걸음과 맞추려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 일을 통해 주님과 그 분의 신성에 대한 ‘두려움’을 체험한다. 다른 두려움과 달리 ‘주님을 두려워함’은 유익하다. 그는 계약 궤의 현존에서 축복이 오는 것을 표징으로 삼아 비로소 궤 이동을 재개한다. 이제 소가 끄는 수레가 아니라 율법에서 명한대로 레위인들이 직접 주님의 궤를 짊어진다. 여섯 걸음을 걷고 난 후 제물을 바치는데 이는 주님의 허락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다윗은 수금을 연주하던 목동으로 돌아간 듯 축제 분위기에 흥겨워 궤 앞에서 춤을 추며 기쁜 마음을 표현한다. 그의 분노와 두려움이 기쁨과 찬양으로 변화된 것이다.

 

이 석 달 동안 다윗이 무엇을 배웠는지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그가 자신의 계획대로 움직이려던 의지를 포기하고 기다렸다는 사실이다. 주님의 뜻에 항복하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자기 뜻을 펼치면서 하느님 앞에 자기 뜻을 접고 기다리는 겸손함이야말로 다윗이 주님께 사랑받는 비결이 아닐까?

 

“주님, 저의 반석, 저의 구원자시여 당신 앞에 드리는 제 입의 말씀과 제 마음의 생각이 당신 마음에 들게 하소서.”(시편 19,15)

 

[월간빛, 2023년 7월호, 송미경 베로니카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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