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들의 기쁨과 삶을 담은 사도행전 읽기 25] 안티오키아 교회와 사도들의 삶(사도 11,19-12,23) 우리는 사도행전 8장을 통해 박해는 교회의 몰락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더 넓은 지역으로 복음이 선포되는 결과를 가져왔음을 압니다. 이 확장의 결과는 사마리아를 넘어 안티오키아라는 곳까지 확대됩니다. 안티오키아 교회는 스테파노의 일로 일어난 박해 때문에 흩어진 이들 중 키프로스 사람들과 키레네 사람들이 세웠습니다. 그들은 안티오키아에 있는 그리스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는 하나의 교회를 위해 바르나바라는 공식적인 선교사를 파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르나바는 회심한 사울, 바오로를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교회로 데리고 와 본격적인 이방인 선교 여행을 준비합니다. 사도행전은 ‘그리스도인’이란 명칭이 처음으로 쓰인 경위를 알려줍니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11,26) 그렇지만 구성원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불린 이 교회는 더욱 더 유다인들에게 박해받습니다. 그리고 스테파노 이후, 사도 중에서 첫 번째 순교자를 배출합니다. 바로 야고보입니다. 그는 요한과 함께 제베대오의 아들로 예수님과 특별한 친분을 맺었던 사도입니다.(루카 8,51; 9,28) 또한 야고보의 순교 이야기에서 헤로데라는 임금이 언급되는데, 이 사람은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던 헤로데가 아닙니다. 그는 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로 헤로데 대왕의 손자이며, 헤로데 안티파스의 조카입니다. 이 헤로데는 로마에서 성장했으며, 기원후 41~44년에 팔레스티나 거의 전역을 다스렸던 인물입니다. 야고보를 죽인 헤로데는 유다인들의 환심을 더 사고 싶어서 베드로도 감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투옥은 오래가지 않았고, 그는 주님의 천사가 풀어줍니다. 이렇게 풀려난 베드로는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12,12)으로 갑니다. 여기서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은 바르나바의 사촌이며,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는 바오로의 마지막 로마 투옥 생활 때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베드로와도 각별한 사이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1베드 5,13) 이렇게 베드로는 헤로데 왕의 손아귀에서 벗어났고, 헤로데는 주님의 천사에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결국 박해와 온갖 고난은 성령을 통한 복음 선포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됩니다. 오히려 더 넓은 지역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가도록 만들 뿐입니다. 창세기의 마지막 장에서 요셉이 자기를 팔아넘겼던 형들에게 한 말이 떠오릅니다.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창세 50,20) 요셉은 형들의 악조차도 선으로 바꾸신 하느님의 업적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 업적은 성령 안에서 바르나바와 바오로라는 인물을 통해 계속 이어집니다. [2023년 7월 23일(가해) 연중 제16주일(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서울주보 5면, 김덕재 안드레아 신부(사목국 성서못자리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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