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구약성경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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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서채석 | 작성일2018-07-24 | 조회수4,056 | 추천수0 | 신고 |
+ 찬미 예수님. 이제 막 신앙의 여정에 접어든 자매님의 앞날에 늘 주님의 풍성한 은총과 평화가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자매님의 글을 읽으니,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저의 미력한 생각이 자매님의 신앙 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구약 신약은 구약을 전제로 합니다. 구약은 신약 해석의 길잡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신약, 구약이 낡은 것, 새 것의 개념과는 다르다는 것 입니다. 우리가 구약이라고 하는 것을 유대 민족은 아직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신약이 없습니다. 2. 창세기와 구약 주지하시는대로, 구약의 시작은 "창세기"입니다. 창세기의 핵심은 원죄와 원복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이 죄를 범한 후 자력으로는 에덴 동산으로의 복귀가 안 된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주님께서는 그들을 되돌려(return, 회개) 다시 영생으로 이끄시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을 자신의 방식대로 이끌어 가시고자 인간들에게 몇 가지 요구 조건들(다시 말해 계약)을 내 세우시고, 그렇게 살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그 인간들이 늘 하느님 뜻을 저버렸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더 좋은 것, 더 행복한 것을 주고자 비록 자식에게는 지금은 조금 마음에 들지 않고, 언짢고, 무미건조할 수도 있는 일을 시키잖습니까? 그런데 자식들은 부모 말씀을 잘 들으려 하지 않지요. 자기들 식대로 하려 합니다. 세상사에서는 그래도 더 잘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그 상대가 전지전능하신 주님 앞에선 얘기가 다릅니다. 주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제발" 돌아오라고, 그래야 "영원히 잘 살게 된다"고 애원도 해 보시고, 때려도 보시고, 모질게도 대해 보시고, 때로는 달콤한 것도 주시고, 하여튼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해 보십니다. 그래도 인간들은 늘 "악"에 차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절대로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다른 사람들은 손가락질 하고, 욕하고, 흉봐도 부모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더 신경이 쓰이고, 사랑과 정성을 더 쏟는게 우리네 부모님들 이십니다. 인간인 부모도 그러할진데,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상상을 초월하시는 것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지상에 있는 네 아비도 그러한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께서는 어떠하시겠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아무튼 인간들을 온갖 방법으로 회유하려해도 목이 뻣뻣한 이 족속들은 도대체가 백약이 무효했습니다. 주님 입장에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인간들인데, "자유의지"를 가진 그들이 응답을 하지 않고, 자꾸만 샛길로 빠져 나갑니다. 우린 이때 "미치고 환장한다"고 말합니다. 아마 주님께서는 그 보다 훨씬 더 하셨을 것 같습니다. 저 산만 넘으면 아름답고 화려한 궁궐이 있는데, 오늘 길가 주막에 퍼질러 앉아 꿈쩍도 하지 않으려는 인간들을 보며 주님께서는 참으로 마음 아파하셨을 겁니다. 하여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본 떄(model)"로 세우시고, 그들을 이끌어 가십니다. 그들은 주님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엽고, 사랑스러운 자식들입니다. 하여 그들이 가는 곳에 있는 모든 악하고, 추하고, 냄새나고, 위험한 것 등을 주님께서는 깨끗이 치워주고 싶어하십니다. 자매님께서도 내 자식들이 그런 곳에 가면 몹시 신경이 쓰이실 겁니다. 인지상정입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죽이시는 것을 "무자비하고 무섭다"고 할 수도 있지만, 성경은 표징과 상징 (symbol & sign)의 책이라 생각한다면, 그 죽임 당한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말고, 그가 무엇을 "뜻"하는 가를 묵상해 볼 일입니다. 그래서 내 안에 여부스족, 히위족 같은 존재는 없는지, 또 나는 그것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방신 즉 우상을 많이 싫어하신다 하셨습니다. 가나안에 먼저 살고 있던 그들은 바알, 아세라 목상 같은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를 간음이라 하셨습니다. 지금도 천주교를 다니면서도 가끔 "점"의 유혹을 받는 저로서는 "간음"을 하는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죽여 없애시듯, 지금 우리도 그처럼 적당한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죽을 것처럼 단호히 잘라 내야 한다는 것 입니다. 과감히 끊어야 합니다. 냉정히 끊어야 합니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찬바람이 쌩하니 나도록 돌아서야 합니다. 진리는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구약의 수많은 사건들은 단지 과거의 행적들을 적어 놓은 한 권의 역사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늘 그것을 읽는 독자에게 도전하는 것 입니다. 그 역사의 현장이 지금 이 자리에서, 내 안에서 지금 재현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자신을 처절히 들여다보시고 나아가 엄위하신 주님의 음성에서 사랑을 느껴보십시오. 엄한 아버지지만 그 뒤편으로 흐르는 그 분의 따뜻한 사랑을 우리가 알고 있듯이, 참으로 무섭기만 한 그 분이 참으로 크신 사랑 때문에 울며, 애통해 하시며, 가슴 아파하시며 그렇게 하지 않으실 수 없는 그 처절한 마음을 그 귀절에서 읽어내신다면 자매님께서는 "구약"을 더 이상 무서워 하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주님께서 늘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3. 신약 구약은 구체적인 사건들이 있어서 이해하기가 쉽습니다만, 신약은 여러 교리적인 문제들이 얽혀있어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또 구약의 뒷 받침이 없으면 어떤 부분은 전혀 이해가 되지도 않습니다. 하여 원래 계획하셨던 대로 구약을 먼저 읽으시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다만 다 읽으시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한편 지루할 수도 있어서 최소한의 순서라면;
창세기 - 탈출기 - 신명기 - 열왕기 - 예언서(이사야, 에레미야) - 성문서(시편, 지혜서, 잠언) 정도는 읽고, 신약의 4복음서로 넘어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복음서 다음에는 사도행전-로마서-요한묵시록을 읽으시는 것이 좋으실 것 같습니다. 특히 복음서 중에서는 "요한"복음을 잘 읽어 보십시오. 사랑 깊은 펠리칸 예수님의 사랑을 맛 보실 수 잇으며, 잘하면 대사제의 긴 고별사에서는 한 줄기 카타르시스의 "눈물"을 흘리실수도.... 아무튼 성경을 자주 가까이 하셔서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늘 자매님께 넘쳐 나시기를 진실로 바랍니다. 이상 미련한 저의 소견을 적어 보았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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