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38) 역대기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풀어낸 구원 역사 - 역대기의 중심 사상은 유다 공동체 안에 펼쳐지는 이상적인 신정 왕국이다. 예루살렘의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 만나기 위한 유일한 성소이다. 역대기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성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고 한다. 이스라엘 박물관에 설치된 예루살렘 성전 모형. 역대기의 히브리어 성경 이름은 ‘디브레 하얌밈’입니다. 우리말로 ‘나날의 행적들’, ‘시대의 사건들’로 옮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헬라어 번역본인 「칠십인역」은 디브레 하얌밈을 사무엘기와 열왕기를 보충하는 책으로 인식해 ‘파랄레이포메논’(Παραλειπομνων, 옆에 빼놓아둔 것, 곁들여 전해진 것, 간과된 것)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그리고 본디 한 권이었던 디브레 하얌밈을 상ㆍ하권으로 나눴습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 역시 칠십인역 목록 이름을 음역해 ‘파랄리포메논(Paralipomenon) ⅠㆍⅡ’라고 표기했습니다. 하지만 불가타 성경을 번역한 예로니모 성인은 이 책을 “하느님의 거룩한 역사 전체의 연대기”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 주교회의가 발행한 가톨릭 「성경」은 예로니모 성인의 제안에 따라 ‘역대기’(歷代記)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역대기는 본디 한 권의 책이었다고 했습니다. 나아가 역대기 하권 36장 22-23절과 에즈라기 1장 1-3절이 서로 겹쳐 ‘역대기-에즈라기-느헤미야기’를 하나로 묶을 수도 있습니다.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 역시 처음에는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 정경 안에서는 내용상 역대기가 에즈라-느헤미야기보다 앞서야 하지만 그 뒤에 편집돼 있습니다. 아마도 역대기가 에즈라, 느헤미야기보다 늦게 유다교 정경 안에 받아들여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날 성경학자들은 구약 성경 역사서를 ‘신명기계 역사서’와 ‘역대기계 역사서’로 구분합니다. 이 둘 가운데 먼저 형성된 역사서가 신명기계 역사서입니다.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열왕기가 신명기계 역사서에 속합니다. 신명기계 역사서는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 함락까지의 역사를 다룹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과 유다가 멸망한 것은 임금들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불충실했기 때문이며, 유다인들이 바빌론으로 유배가 포로 생활을 하는 것은 그에 따른 징벌이라고 강조합니다. 역대기계 역사서는 신명기계 역사서보다 훨씬 더 늦은 시기에 쓰였습니다. 성경학자들은 기원전 330-250년 사이에 역대기계 역사서들이 쓰였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역대기, 에즈라기, 느헤미야기가 역대기계 역사서에 속합니다. 이 책들은 모두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풀려나 귀향한 후 쓰였습니다. 역대기계 역사서가 신명기계 역사서와 가장 차이를 보이는 것은 역사를 ‘아담부터’ 서술한다는 것입니다. 역대기계 역사서는 아담에서 시작해 바빌론 유배 이후 에즈라와 느헤미야에 의해 예루살렘과 성전이 재건된 시대까지 유다인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역대기는 ‘아담에서 다윗까지의 조상들 족보’(1역대 1-9장), ‘다윗 통치사’(1역대 10-29장), ‘솔로몬 통치사’(2역대 1-9장), ‘솔로몬 죽음부터 바빌론 유배와 예루살렘으로의 귀환 직전에 이르는 유다 왕국사’(2역대 10-36장) 네 부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역대기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다윗 왕조를 중심으로 서술합니다. 그중에서도 다윗과 솔로몬의 이상적 통치를 핵심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역대기는 열왕기와 달리 다윗의 오점을 싣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충실하게 따른 모범적인 임금으로만 소개합니다. 이런 이유로 역대기는 다윗 왕조를 이어받지 못한 북 왕국 이스라엘의 역사를 취급하지 않습니다. 다윗 왕조만이 유일하고 합법적인 왕조이며, 다윗의 후손만이 하느님 백성의 합법적인 임금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역대기는 다윗과 그의 후손들은 하느님을 대신해 주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대리자일 뿐이라고 강조합니다. 역대기는 또 솔로몬을 처음부터 다윗의 유일한 후계자로 선택된 인물로 소개합니다.(1역대 29,23-25) 더욱이 솔로몬은 다윗과 달리 평생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완전하고 충실한 삶을 산 임금으로 평가합니다. 또 솔로몬은 하느님께 성전을 지어 봉헌한 인물이고, 성전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을 신앙 공동체로 결속시킨 인물이라고 합니다. 역대기는 다윗과 솔로몬 후계자들의 역사는 성전을 재건하고 경신례를 개혁한 임금들을 비중 있게 다룹니다. 아사(2역대 14-16장), 여호사팟(2역대 17-20장), 히즈키야(2역대 29-32장), 요시야(2역대 34-35장)가 그런 임금입니다. 역대기는 아울러 레위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입니다. 레위인들은 아론 집안 출신의 사제들이거나, 다른 집안으로서 레위 지파 출신의 레위인들입니다. 모세 오경 전체는 사제들에 관해 27번 언급하는 데 반해, 역대기는 76번이나 언급합니다. 역대기는 ‘예루살렘 성전’과 ‘경신례’를 중시합니다.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을 직접 당신이 머무를 장소로 선택하셨고(2역대 6,6), 이곳에 세워진 성전이 ‘하느님의 이름을 위한 집’(1역대 22,7)이며 ‘하느님의 성소’(1역대 22,19)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 만나기 위한 유일한 성소이며, 그곳에서 거행되는 경신례는 유일한 공적 제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역대기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성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고 합니다. 역대기의 중심 사상은 유다 공동체 안에 펼쳐지는 이상적인 신정 왕국입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봉헌되는 유일하고 합법적인 경신례는 하느님 백성이 사제들과 레위인들의 도움을 받아 그들의 임금이신 하느님께 충성과 기쁨, 찬양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일은 주님의 백성이 매일의 삶 안에서 지켜야 할 첫 번째 의무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9월 3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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