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73 성경 통독 길잡이] 호세아서 호세아 예언자가 활동했던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 치하에서 전성기를 맞이하다가 30년도 안 되는 사이에 임금이 즈카르야, 살룸, 므나헴, 프카흐야, 페카, 그리고 북왕국의 마지막 왕인 호세아로 바뀔만큼 격동의 시간을 보낸 뒤 BC 722년에 아시리아에 의해서 멸망을 겪게 되었습니다. 호세아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BC 750년경부터 730년경까지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예언자, 즉 북이스라엘의 전성기와 패망의 시기를 동시에 목격한 예언자입니다. 호세아서 1-3장은 호세아 예언자의 혼인생활을 전하고 있습니다. 호세아는 창녀와 결혼을 합니다. “나는 바알들의 축제일 때문에 그 여자를 벌하리라. 그 여자는 바알들에게 분향하고 귀걸이와 목걸이로 단장한 채 애인들을 쫓아갔다. 그러면서 나를 잊어버렸다. 주님의 말씀이다.(2,15)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는 가나안인들에게서 유래하는 ‘풍요 다산의 제의(祭儀)’와 연관된 여자로서 일반적 의미에서의 창녀라기보다는 이교신에게 바치는 제사 가운데 성적인 의식에 참여한 여인이었습니다. 호세아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그녀와 결혼을 하고 아들과 딸을 낳고 각각 이름을 이즈르엘, 로 루하마, 로 암미라고 짓습니다. 이즈르엘은 열왕기 하권 9장에 따르면 예후가 아합 가문 사람들을 학살하고 왕위를 찬탈한 곳으로서 권력 투쟁을 상징하는 장소이며, 로 후하마의 이름은 ‘가엾이 여김을 받지 못하는 여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로 암미는 ‘나의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이로써 1장은 표면적으로는 불륜을 저지른 호세아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하느님을 저버린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분노와 심판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반면 2~3장은 하느님께서 다시금 광야에서 그들을 깨우친 다음 받아들이시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암미’, ‘루하마’라고 부르시는데 이는 각각 ‘나의 백성’, ‘가엾이 여김을 받는 여자’라는 뜻으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새로운 관계를 예표합니다. 그리고 호세아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다른 남자를 사랑하여 간음을 저지른 아내를 다시금 사랑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더 이상 창녀 짓을 해서는 안 되며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어서도 안 된다고 말하면서 신의를 지킬 것을 강조합니다. 이는 당시 북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예언자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당시 북이스라엘 백성은 아시리아와 이집트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아시리아는 그들의 팽창 정책에 따라 여러 차례 서부 지역 원정을 강행하였고 이에 위협을 느낀 이집트는 아시리아가 정복한 여러 지역의 봉기를 선동하였습니다. 지역적으로 그 사이에 위치란 북이스라엘은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도자의 무책임한 모습으로 인해 사회 정의가 무너졌으며, 도덕적 타락이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또한 농경 생활이 풍요롭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연의 힘을 주관한다고 생각했던 바알 등의 가나안 신에 마음을 빼앗기면서 우상숭배에 빠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물론 하느님을 완전히 저버렸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느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농경과 연관된 가나안의 신들을 일정 부분 수용하면서 필요한 도움을 받고자 하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섬겨야 하는 계약을 어겼습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호세아를 통해 부정을 저지른 아내에 하시는 말씀은 하느님을 저버린 북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말씀에 해당합니다. 4장부터는 북이스라엘의 백성과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여러 신탁들이 이어집니다. 먼저 사제, 백성, 지도자들이 지은 죄가 차례대로 언급되면서 하느님께서 직접 그들을 고발하십니다. 그들이 저지른 잘못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은 계약, 즉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섬기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지켜주시는 하느님이 되어 주실 것이라는 계약을 어긴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은 계약에 충실하신 반면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의 신들에게 마음을 빼앗겼고, 자신들에게 닥친 문제를 하느님 안에서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판단으로만 접근하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호세아서는 이를 혼인의 문제에 빗대어서 부정을 저지른 아내로 이스라엘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죄를 깨닫고 내 얼굴을 찾을 때까지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가 있으리라. 그제야 그들은 환난 속에서 나를 찾으리라.”(5,15)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곁을 떠나셨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사랑은 극진하시기에 “에프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내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저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처럼 내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츠보임처럼 만들겠느냐?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나는 네 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이’ 분노를 터뜨리며 너에게 다가가지 않으리라.”(11,8-9)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다시금 구원으로 이끄십니다. 과거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으로 이끌어주셨던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저버린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한 번 당신의 사랑에 근거해서 아시리아에서부터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내십니다. 마지막으로 14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참된 회개에 따른 고백이 터져나오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사랑으로 품어주십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리리라.”(14,10)라고 마지막 경고를 전하며 호세아서는 끝이 납니다. 당시 유다인들의 율법에 따르면 간음한 여인은 발각된 그 자리에서 죽을 때까지 돌을 맞아야 하는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혼당한 여자는 절대로 첫 남편에게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호세아서는 결혼한 관계 안에서의 부정함이라는 주제를 사용하면서도 간음한 아내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남편의 간절한 마음을 통해 당대의 관습을 넘어서는 놀라운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에서 하느님의 철회되지 않는 사랑을, 벌하고 단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회개하여 당신 곁에 머물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3년 9월호, 노현기 신부(사목국 기획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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