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모세 일화에서 얻는 교훈 신명 32,35과 로마 12,19 등에는 ‘복수와 보복은 하느님께서 하실 일’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상대가 누구든 그 행실대로 갚으실 이는 결국 하느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선 하느님의 품성으로 ‘공정과 정의’가 자주 강조되는데, 이를 알려주는 예 중 하나가 탈출 4,24-26에 나오는 모세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 일화는 예부터 수수께끼였습니다. 모세는 호렙산의 떨기나무 사이에서 주님의 발현을 접한 뒤(탈출 3장) 예언자의 소명을 받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명령에 따라 이집트로 길을 떠나는데, 갑자기 주님께서 달려들어 그를 죽이려고 하셨습니다. 이때 모세의 아내 치포라가 아들의 포피를 자르고 그 피를 모세에게 바르며 “나에게 당신은 피의 신랑입니다.”(4,25)라고 하여 남편의 목숨을 구합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예언자로 뽑으신 모세를 당신께서 죽이려 하셨으니 수수께끼지요. 그런데 이 일화는, 신적 존재의 공격을 받고 그것을 극복해 냈다는 점에서 야곱이 야뽁강에서 천사와 씨름했던 일(창세 32,23-33)을 떠올려줍니다. 당시 야곱은 형 에사우와 대면을 앞둔 상태였는데, 오래 전 자기에게 속아 장자권을 빼앗긴 형이 복수할까 봐(창세 27,41)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모세는 오래 전 히브리인을 학대하는 이집트인을 때려죽인 뒤 미디안으로 달아난 처지였습니다(탈출 2,11-22). 에사우가 야곱에게 오랫동안 앙심을 품었듯이, 당시의 파라오도 모세를 잡으려고 벼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탈출 4,19). 곧 야곱과 모세는 저마다 속임수와 살인을 저지른 죄인의 처지였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둘 다 신적 존재의 공격을 받는데요, 이 공격은 두 사람에게 모두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야곱과 모세가 위험한 공격을 겪고 그것을 극복해 냄으로써 속임수와 살인에 대한 죗값을 치르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해를 끼쳤으면, 자신도 그만큼의 해를 입어야 보상이 됩니다. 죄인들이 감옥에 갇히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다만 모세는, 이유가 무엇이었든,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였기에 야곱보다 죗값이 컸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공격한 이도 대리자 천사가 아닌 심판자 하느님으로 보입니다. 야곱은 죄의 대가로 20여 년간 타향에서 머슴살이하며 반성의 기회를 가졌고 천사와의 씨름을 겪은 뒤,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으로 거듭납니다(창세 32,29). 마침내 형의 용서도 받게 됩니다(33,1-11). 모세 역시 갑작스러운 주님의 공격에 죽을 위기를 맞지만, 과거에 그가 흘리게 한 피에 대한 죗값을 치렀습니다. 이로써 흠 없는 자가 되어 새 파라오와 대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모세에 얽힌 이 일화는 야곱의 일화와 더불어, 주님이 죄를 그냥 넘기지 않고 반드시 책임을 물으시는 ‘정의의 하느님’이심을 알려줍니다. 이는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우선 나에게 숨은 죄가 있을지 모르며, 보복을 꾀하려 마음의 평화를 해치지 말고 응보는 하느님께 맡겨드리라는 가르침을 전해줍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가 있다. [2023년 9월 17일(가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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