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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다윗 이야기: 내가 백성의 수를 알고자하오(2사무 24,2) - 다윗이 인구 조사를 실시하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3-11-21 조회수622 추천수0

[다윗 이야기] “내가 백성의 수를 알고자하오.”(2사무 24,2) - 다윗이 인구 조사를 실시하다

 

 

열한 번째 이야기 : 2사무 24장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두루 다니며 인구를 조사하시오. 내가 백성의 수를 알고자 하오.”(24,2) 통치 말기에 이르러 다윗은 전쟁 때 군사가 될 장정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어졌다.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단에서 브에르 세바’ 는 이스라엘 영토 전체를 뜻하는 전통적인 표현이다.(판관 20,1; 1사무 3,20; 2사무 3,10 등) 인구 조사는 군사적 목적과 조세 부과의 목적 두 가지로 시행되곤 했다.(탈출 30장, 2사무 24장, 1역대 21장) 그런데 다윗의 오른팔인 요압 장군은 이를 간곡히 만류한다.

 

요압이 임금에게 아뢰었다. “주 임금님의 하느님께서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불어나게 하시어,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께서 친히 그것을 보시게 되기를 바랍니다만,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께서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려고 하십니까?” 그러나 임금의 말이 요압과 군대의 장수들을 위압하였다. 그리하여 요압과 군대의 장수들은 임금 앞에서 물러 나와, 이스라엘의 인구를 조사하러 떠났다.(24,3-4)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려고 하십니까?’라는 질문은 다윗의 지시가 올바르지 않기에 재고해 볼 것을 간청하는 말이다. 요압은 왜 반대했을까? 탈출기는 “네가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를 세어 인구 조사를 실시할 때, 사람마다 자기 목숨 값으로 주님에게 속전을 바쳐야 한다. 그래야 인구 조사 때문에 그들에게 재앙이 닥치지 않을 것이다.”(탈출 30,12)라고 밝히고 있다. 이스라엘에게는 오직 야훼 하느님만이 당신 백성의 수를 알 권리를 지니신 분이셨다. 고대의 전쟁은 각 민족이 모시는 신들의 전쟁이기에 병력을 가늠해 전쟁의 승패를 저울질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승리를 주신다는 믿음과 배치되는 불신의 표지로 여겨졌다. 이를 다윗이 모를 리 없었다. 전쟁을 주관하시는 하느님께 늘 여쭙던 다윗은 지금 주님께 묻지도 충복의 말을 듣지도 않은 채 자기 뜻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성경은 두 군데에서 다윗의 완고함에 대한 이유를 언급했다. 먼저 사무엘기는 “주님께서 다시 이스라엘인들에게 진노하셔서,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부추기시며…”(24,1)라고 표현한다. 반면 역대기는 “사탄이 이스라엘을 거슬러 일어나, 이스라엘의 인구를 조사하도록 다윗을 부추겼다.”(1역대 21,1)라고 해석하고 있다. 사탄은 욥기에서 보듯 하느님 앞에서 인간을 고발하는 존재로 인간의 숨은 욕망, 하느님께 벗어난 어두움을 들추었다. 고대 근동의 여느 왕처럼 말년의 다윗 또한 물리적인 군사력에 기반을 둔 왕권 강화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듯하다. 백성의 잘못에 대한 징벌에 다윗의 약점이 도구가 되어 버린 셈이랄까.

 

다윗은 이렇게 인구 조사를 한 다음, 양심에 가책을 느껴 주님께 말씀드렸다. “제가 이런 짓으로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제 당신 종의 죄악을 없애 주십시오. 제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습니다.”(24,10)

 

다윗의 병적 조사는 지금까지 하느님과 맺어왔던 관계를 무산시키는 행위였다. 하느님 편에서 보면 참 섭섭할 일이다. ‘내가 너를 돌보아 주었고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왜 다른 데서 네 왕국의 안위를 보장받으려 드느냐? 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느냐?’

 

하느님께서는 다윗을 용서하시지만 세 가지 벌, 곧 7년의 기근, 석 달의 도망자 생활, 3일간의 전국적 흑사병 가운데 하나를 택하게 하신다. 근래에 3년의 기근을 겪었기에(21,1) 첫째 것을 선택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석 달 동안 적에게 쫓기는 벌은 다윗의 일생에 점철된 고난이다. 사울의 추격을 피해 떠돌던 시절(1사무 18장-31장)과 압살롬의 반란으로 피신했던 일(15장-17장)은 나이 든 지금에서는 차마 다시 겪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주님의 자비는 크시니, 사람 손에 당하는 것보다 주님 손에 당하는 것이 낫겠소.”(24,14)라는 말과 함께 전염병을 선택한다. 비록 3일이었지만 흑사병은 단에서 브에르 세바까지 백성의 목숨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다윗이 주님께 아뢰었다. “제가 바로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못된 짓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양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그러니 제발 당신 손으로 저와 제 아버지의 집안을 쳐 주십시오.” (24,17)

 

마침내 다윗은 자신의 목숨과 왕권을 받은 집안까지 주님 앞에 던져 놓으며 다시 주님께 자비를 청했다. 백성을 ‘양들’이라고 표현한 다윗에게서 처음 그가 임금으로 부르심 받던 순간이 엿보인다. 목동으로서 자기 양을 위해 목숨(1사무 17,34-35)을 걸었던 다윗을 주님은 영도자로 세워 주셨던 것이다.(7,8)

 

이스라엘에게 있어 인구 조사는 하느님의 백성을 통솔하기 위한 행위였다.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청하는 다윗의 고백과 탄원은 두 차례 반복(24,10.17)되는데, 주님과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은 그의 빗나간 걸음을 거듭 돌이키는 것처럼 보인다.

회개의 표시는 언제나 하느님 뜻에 대한 순종에 있다. 다윗은 예언자가 전한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해 장차 성전이 될 자리에 제단을 쌓아 친교 제물을 바쳤고 주님께서 그의 간청을 들어주시니 왕국은 평화를 되찾았다.(24,18-25) 마치 인간적 욕망이 정화된 자리에 하느님을 바르게 섬기는 자리가 마련된 듯하다. 어쩌면 하느님께 예물과 기도를 드리는 제단은 그분께 순종하는 이의 마음에 있지 않을까.

 

하느님 앞에 어떤 존재인지를 자주 잊어버리는 게 사람이다. 모름지기 주님을 섬기는 이는 여러 모양으로 건네시는 그분의 목소리를 가벼이 듣지 않도록 주의할 일이다.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려고 하십니까?”(24,3)

 

[월간빛, 2023년 11월호, 송미경 베로니카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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