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옹기장이의 비유 예루살렘의 구 도시(old city) 남동쪽에는 ‘실로암’이라는 유적지가 있습니다. 이는 기원전 8세기 남왕국 유다를 다스린 히즈키야 임금이 아시리아의 침공에 대비하려고 기혼 샘에서 터널을 연결해 만든 저수지입니다. 기혼 샘은 성 바깥에 있기 때문에, 적에게 포위당할 경우 예루살렘은 위험에 처할 수 있었습니다. 이랬을 때 식수를 확보할 수 있도록 샘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실로암 못은 요한 9장에 나오는,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이던 사람의 눈을 예수님께서 뜨게 해주신 표징의 장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실로암과 기혼 샘은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보여주신 상징행위와도 관계된 장소로 추정됩니다. 이 상징행위는 예레 18,1-12에 묘사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옹기장이가 하는 일을 통해 메시지를 주십니다. 이때 예레미야가 “일어나 옹기장이 집으로 내려가거라.”(2절) 하는 명령을 받았다는 점에서 옹기 작업장이 성 아래쪽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옹기 제조는 물을 많이 필요로 하기에, 그곳은 동쪽 아래에 자리한 기혼 샘이나 남동쪽 아래의 실로암 부근이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예레미야가 가서 보니, 옹기장이는 “진흙을 손으로 빚어 옹기그릇을 만드는데, (···) 흠집이 생기면 자기 눈에 드는 다른 그릇이 나올 때까지 (···) 그 일을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4절). 이 과정이 뜻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옹기장이는 하느님이고, 진흙은 이스라엘을 포함한 세상의 민족들입니다. 옹기장이가 합당한 그릇이 만들어질 때까지 진흙을 뭉치고 빚기를 계속하듯이, 하느님께서도 세상 만민을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떨 때 옹기그릇에 흠집이 생길까요? 진흙이 너무 묽거나 뻑뻑할 때, 이물질이 들어갔을 때 등입니다. 옹기장이의 솜씨도 중요하지만, 옹기라는 결과물에는 진흙의 질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로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흠집 없는 그릇이 나올 때까지 반복하여 일하는 옹기장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저마다 행한 바를 다시 돌려받게 하시어 더 나은 모습이 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주님과 맺은 계약을 위반하여 징벌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회개한다면 징벌을 면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을 경우 파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즉 ‘다시 빚어질 수밖에 없다.’라는 메시지입니다. 이 비유에서, 주님께서 세상의 피조물들을 흙으로 빚으셨다는 것은 창세 2,7.19을 떠올려줍니다. 이사 64,7에는 이런 찬양이 나옵니다: “저희는 진흙, 당신은 저희를 빚으신 분. 저희는 모두 당신 손의 작품입니다.” 예레미야가 모태에서 ‘빚어 지기’ 전부터 하느님께서 그를 알고 계셨다는 예레 1,5 역시 같은 비유가 쓰인 예라 하겠습니다. 이 비유는 또한 죄를 지었다고 절망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가르쳐줍니다(키루스의 테오도레투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세례의 물로써 우리를 젖은 흙처럼 되게 하시고, 다시 주물러 당신 눈에 바람직한 모습으로 만들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요한 크리소스토무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가 있다. [2023년 12월 3일(나해) 대림 제1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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