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이야기] “주 네 하느님의 길을 걸어라.”(1열왕 2,3) - 다윗이 조상들과 함께 잠들다 열두 번째 이야기 : 1열왕 1-2장 인간이 하느님과 다른 것은 시작과 마침이 있다는 것이다. 다윗 역시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하나의 인간이었다. 다윗 임금이 늙고 나이가 많이 들자, 이불을 덮어도 몸이 따뜻하지 않았다.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주군이신 임금님께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해 드려 임금님을 시중들고 모시게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 처녀를 품에 안고 주무시면 주군이신 임금님의 몸이 따뜻해지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신하들은 이스라엘 온 지역에서 아름답고 젊은 여자를 찾다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찾아내고는 그 처녀를 임금에게 데려왔다. 그 젊은 여자는 매우 아름다웠다. 그가 임금을 모시고 섬기게 되었지만, 임금은 그와 관계하지는 않았다.(1,1-4) 임금이 나이 들면 젊은 여인을 품게 하는 것이 당대 관습이었다. 임금의 기력이 떨어지면 왕위를 넘기고 물러나야 했기 때문이다. 다윗은 서른에 임금이 되어 40년을 통치했으니 일흔 살 가량 되었을 것이다.(1역대 29,26-27) 지금이야 기력이 좋은 나이지만 고대에는 수명이 지금만큼 길지 않았다. 열왕기는 이 상황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후 “내가 임금이 될 것이다.”(1,5)라는 아도니야의 말을 곧바로 소개함으로써 후계자 문제가 불거졌음을 알려준다. 다윗의 셋째 아들인 압살롬이 죽은 이후 넷째 아들 아도니야로서는 왕위에 대한 기대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왕권을 둘러싼 일화들은 다윗의 생애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사무엘기 하권 13장 1절에서 열왕기 상권 2장 12절까지를 왕위 계승 내러티브라고 부르는데, 장남 암논의 악행에서 시작되어 압살롬의 반란, 아도니야와 솔로몬의 왕위를 둘러싼 대립과 다윗의 임종까지의 긴 이야기이다. 압살롬의 죽음으로 다윗 왕조의 차기 후계자를 지명하는 것은 다윗이 죽기 전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임금이 그들에게 명령하였다. “그대들은 그대들 주군의 신하들을 거느리고, 내 아들 솔로몬을 내 노새에 태워 기혼으로 내려가시오. 거기에서 차독 사제와 나탄 예언자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우시오. … 그가 와서 내 왕좌에 앉아 나를 대신 하여 임금이 될 것이오. 내가 그를 이스라엘과 유다의 영도자로 임명하였소.”(1,33-35) 예언자 나탄의 도움에 힘입어 밧 세바는 아들 솔로몬이 다윗의 선택을 받도록 하는데 성공한다.(1,11-31) 왕조를 이어갈 후계자를 세운 후 다윗은 새 임금에게 당부의 말을 남긴다. 다윗은 죽을 날이 가까워지자, 자기 아들 솔로몬에게 이렇게 일렀다. “나는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을 간다. 너는 사나이답게 힘을 내어라. 주 네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 그분의 길을 걸으며, 또 모세 법에 기록된 대로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 법규와 증언을 지켜라. 그러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2,1-3) 그의 유언(2,2-9)에서 첫 자리는 하느님을 향한다. ‘하느님의 명령’이라는 표현에 쓰인 ‘명령’의 히브리어(미슈메렛)의 본뜻은 ‘의무, 직무, 직분’이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임금으로서의 직분을 수호할 것을 당부한 것이다. ‘주님의 길을 걷는 것’은 신명기적 사관을 담은 사무엘기와 열왕기에서 하느님께 충실한 임금의 기준이다. 이 유언을 통해 다윗은 ‘네 자손 가운데에서 이스라엘의 왕좌에 오를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하느님의 약속(2,4)을 새 임금에게 유산으로 넘겨주고 있다. 왕위 계승은 왕조의 영속성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을 물려받는 것이기도 했다. 이어서 다윗은 세 가지를 지시하는데, 복수에 해당하는 두 가지는 충신이었던 요압까지 포함되기에 당혹스럽다.(2,5-9) 비록 그가 아도니야를 지지했지만 다윗 임금이 이토록 옹졸했던가 싶어지는 까닭이다. 그런데 열왕기 저자의 관심은 다윗에게서 시작된 왕조가 굳건히 자리매김하는 왕위 승계 과정 자체에 있다. 다윗 생전에 이미 아들들 사이에 피를 부르는 다툼이 있었던 만큼 새 임금이 수행해야 할 필연적 과제는 왕권에 위협이 될 소지를 없애는 것이었다. 다윗은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들어 다윗성에 묻혔다. 다윗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기간은 마흔 해이다. 헤브론에서 일곱 해, 예루살렘에서 서른세 해를 다스렸다. 솔로몬이 자기 아버지 다윗의 왕좌에 앉자, 그의 왕권이 튼튼해졌다.(2,10-12) 성경에서 “조상들과 함께 눕다.(잠들다)”라는 표현은 죽음을 의미한다. 이 말은 죽은 이를 장사 지낸 1년 후 그의 유골을 수습해서 조상들의 뼈를 모아둔 곳으로 옮기던 풍습에서 생겨났다. “그(솔로몬)의 왕권이 튼튼해졌다.”는 구절은 같은 2장의 마지막 구절인 “솔로몬의 손안에서 왕권이 튼튼해졌다.”(2,46)라고 다시 한번 강조되면서 다윗의 생애를 최종 평가해 준다. 신앙의 삶을 짚어 보고자 시작했던 다윗 이야기도 이제 마침의 순간에 이르렀다. 다윗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그의 일생은 어떤 의미에서는 평범했다. 성공과 고난, 영화로움과 시련, 그리고 모든 인간이 맞이하는 죽음은 굴곡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윗이 그저 한 인간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비범했다. 집회서 저자는 “다윗과 히즈키야와 요시야 말고는 모두가 잘못을 거듭 저질렀다. 과연 그들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법을 저버렸기에 유다 임금들이 사라지게 되었다.”(집회 49,4)라고 평가한다. 여기서 말하는 죄는 하느님을 저버리는 잘못을 말한다. 다윗의 하느님은 사랑하는 이에게 충실하시고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셨다. 꾸중과 엄한 벌로 자식을 가르치듯 하시면서도 용서하기에 인색하지 않으셨던 하느님, 다윗은 자신이 그분께 사랑받는 자임을 알았다. 다윗의 삶에 비범함이 있어 후대에 높은 평가를 받는다면 그것은 잘못이 없었다는 게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분의 법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리라. 다윗의 유언 첫 자리에 놓인 당부, 하느님의 길을 걸으라는 당부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집약한 결론이 아닐까! “주 네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 그분의 길을 걸어라.”(2,3) * 그동안 ‘다윗 이야기’를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과 연재를 맡아 주신 송미경 수녀님께 감사드립니다. [월간빛, 2023년 12월호, 송미경 베로니카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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