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9) 사기꾼 아니면 지혜로운 사람, 야곱 - 조지 프레데릭 와츠 ‘야곱과 에사우’. 몇 년 전 잘 아는 변호사가 나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신부님,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이 일어나는 범죄가 무엇인지 아세요?” “글쎄, 싸움, 폭력 같은 게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많이 일어나는 범죄는 사기예요. 대부분 친하고 잘 아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해 안타깝죠.” 사기는 “사람을 기망(欺罔)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같은 방법으로 제3자로 하여금 재물의 교부를 받게 하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하는 범죄”(형법 제347조)이다. 기망이란 상대방을 착오에 빠지게 하는 모든 행위이고 착오를 일으키게 하는 방법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새로 서품받은 신부님들만 노리는 사기꾼들(?)이 있었다. 나도 첫 임지인 수유동본당에 있을 때 신앙상담을 한다며 한 중년 남자가 찾아왔다. 그의 기구한 삶을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는 자신의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손수레라도 사서 일하고 싶다며 5만 원만 보태주면 백골난망이라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는 선뜻 10만 원을 주었다. 당시 보좌신부였던 나의 수입에 비하면 과한 돈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동창 모임에 갔는데 한 동창 신부의 이야기가 어디서 많이 듣던 레퍼토리였다. 그러자 다른 동창 하나도 그 사람이 찾아와 돈을 주었다고 했다. 나중에 보니 그에게 속은 사람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 후 난 반포본당 보좌로 발령을 받았는데 며칠 후 초인종 소리에 나가보니 전에 나에게 거짓말로 돈을 가져간 그 사람이었다. “지난번 수유동에서 우리 봤지요? 생각 안 나요?” 그러자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네, 신부님, 제가 그 돈으로 근근이 먹고살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라며 인사를 한 후 줄행랑을 쳤다. 그 사람 뒤에다 “인사이동이 난 주보 좀 보세요”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가끔 그의 순발력(?)과 연기력에 감탄하곤 한다. 성경에서는 사기꾼, 모사꾼 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이사악의 아들 야곱이 있다. 야곱이 사기꾼인가? 지혜로운 사람인가? 하는 논쟁은 끝장 토론을 해도 쉽게 끝나지 않을 사안이다. 야곱은 양쪽 면을 다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기꾼의 면모도 있지만 야곱에게는 대단한 열정과 끈기가 있었다. 야곱은 탄생부터 운명이 기구했다. 어머니 레베카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쌍둥이로 형 에사우의 발목을 잡고 태어났다. 야곱은 결국 이스라엘 민족의 성조가 되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삶을 살았다. 야곱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처럼 세속적인 삶에도 열정적이고 투쟁하는 인물이었다. 자신의 삶에서 조용히 순서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삶이 아니라 스스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죽을힘을 다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사랑에도 열정적이었고 할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처세술도 지닌 인물이었다. 야곱은 형 에사우에게서 장자권을 빼앗고 죽을 위험에 처하자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야반도주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고생하며 에사우에 대한 두려움 속에 노동에 시달리는 고단한 삶을 살았다. [가톨릭신문, 2024년 2월 25일,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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