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와 함께 떠나는 복음 여행] 왜 겁을 내느냐?(마르 4,40)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마르 4,35)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몰려든 군중을 뒤로한 채 제자들은 스승님의 말씀에 따라 배를 하나 마련하여 갈릴래아 호수를 건널 준비를 합니다. 어부였던 베드로와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은 이미 수도 없이 이 갈릴래아 호수에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았던 터라, 아마도 이들이 주축이 되어 배를 몰았을 것입니다. 한 배에 다 탈 수가 없어 예수님의 제자들은 여러 배에 나누어 타고 호수를 건넙니다. 그때 호수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이 배 안에 들이닥치기 시작했습니다. 어부였던 제자들이 “괜찮아, 괜찮아. 종종 이런 일이 생기니 걱정하지 말게.”라고 말하며 사람들 마음을 안정시켰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돌풍이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바람은 점점 매섭게 불어오기 시작하고, 물은 더욱 거세게 배를 흔들어 놓습니다. 그렇게 점점 배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앞서 다른 제자들을 안심시키려 했던 어부 출신 제자들도 이제 두려움에 사로잡혀 소리를 지릅니다. 그런 그들의 눈앞에 아무렇지도 않게 주무시고 계시는 스승님이 보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죽을지도 모르는 이런 상황에 잠이나 자고 계시다니!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여 소리를 칩니다. “스승님, 이러다 저희 죽습니다. 지금 뭐 하고 계십니까? 저희가 걱정되지도 않으십니까!” 제자들의 아우성에 잠이 깬 예수님께서는 호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습니다.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마르 4,39) 예수님의 이 말씀에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돌풍은 사라지고 호수는 고요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마치 제자들의 두려움도 가라앉히시려는듯 그들을 꾸짖으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 4,40)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셨는지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온전히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더 큰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호수까지 복종하게 만드는 이분, 이분은 도대체 누구인가?’ 마르코가 전해주는 이야기에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한시도 제자들 곁을 떠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주무시고 계셨지만, 그들을 지켜주고 보호해 주실 수 있는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아직 예수님이 어떠한 분인지 깨닫지 못하고 그분을 온전히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모습은 거울처럼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 줍니다. 신앙의 여정 속에서 뜻하지 않은 풍랑을 만나면 우리 역시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두려움에 하느님께서 침묵하고 계신 것처럼 느끼며 그분의 현존을 부정하거나 그분을 떠나려고 할 때도 있습니다. 두려움에 우리의 신앙이 흔들릴 때, 우리도 제자들처럼 예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왜 우리를 내버려두시냐고, 걱정도 안 되냐고 그분을 흔들어 깨워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예수님의 따뜻한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왜 겁을 내느냐? 내가 너와 함께 있지 않느냐.” [2024년 4월 14일(나해) 부활 제3주일 서울주보 4면, 이영제 요셉 신부(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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