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와 함께 떠나는 복음 여행]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마르 10,8)
때가 되어 하느님께서 맡기신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옮기십니다. 늘 그랬듯이 수많은 사람이 모여듭니다.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견하시어 마음이 심란하셨을 법도 한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물리치지 않으시고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십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는 나쁜 의도를 가지고 예수님께 접근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바로 바리사이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혼인의 율법 규정에 관하여 묻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모세는 ‘이혼장’을 써 주면 아내를 버려도 된다고 허락하였습니다.”(마르 10,2-4 참조) 겉으로 보기에는 율법에 명기된 혼인 규정에 대한 예수님의 의견을 묻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보편적인 사랑을 가르치시던 예수님께서 모세를 거슬러 혼인을 해석하는지 보기 위해 함정을 파놓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의 율법(신명 24,1-4 참조)에 근거해 당시 통용되던 이혼 관습을 비판하며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사실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남편이 아내에게 구두로 통보하면 이혼이 성립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관습이 악용되어 사소한 일에도 여자에게 이혼을 강요하는 일이 생겨났고, 또 구두로만 성립된 이혼이다 보니 이혼 후, 친정으로 돌아간 여자들이 새로운 남편을 만나 생계를 유지하며 사는 데 많은 어려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에 모세는 남편이 아내에게 ‘이혼장’을 써주어야 한다는 율법을 마련합니다. 그래야 사회, 경제적으로 제약을 받던 여자들이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이런 율법을 만들어 남긴 이유를 인간의 ‘완고한 마음’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창세기의 말씀을 근거로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혼인을 신성한 것으로 축성하셨음을 재확인시켜 주시며 혼인의 근본적인 의미를 밝혀주십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그들의 ‘완고한 마음’ 때문에 눈이 있어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왜 인간에게 혼인을 마련해 주셨는지 성찰하지 못했고, 그저 법적인 차원에서만 혼인을 바라보았습니다. 혼인은 단순히 인간이 만들어 낸 규정이나 제도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창조된 그 목적에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마련해 주신 놀랍고도 고귀한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태초에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어, 그들이 함께 살아감으로써 ‘내어줌’과 ‘하나됨’을 배우고 살아가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인간은 창조된 그 순간부터 ‘나’만을 향하는 존재가 아니라, ‘너’를 향해야 하는 존재, 곧 자신을 버리고 온전히 내어줌으로써 ‘내’가 ‘너’가 되고, ‘너’가 ‘내’가 되는 사랑의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부부가 하느님 은총 안에서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혼인은 단순한 율법의 규정이 아니라 인간이 사랑으로 자신의 창조 목적에 다다를 수 있도록 마련해 주신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에게 물어봅시다. 혼인이란 무엇인가요? 단순히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인간이 만들어 놓은 제도적 법률인가요? 아니면 창조 때부터 하느님이 나를 나답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참다운 자신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마련하신 선물인가요?
[2024년 7월 14일(나해) 연중 제15주일 서울주보 4면, 이영제 요셉 신부(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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