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29) 지혜로운 왕 솔로몬의 타락 - 루벤스 作 ‘솔로몬의 심판’ 지혜로운 사람은 가난해도 즐겁고 어리석은 사람은 부유해도 걱정에 잠을 못 이룬다. 신라시대의 대학자 최치원(857-?)은 생활에 만족할 줄 아는 것이 지혜라고 했다. 만족하면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고 자기 일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 어느 마을에 원님과 백정이 있었다. 원님은 그야말로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났고 착하고 예쁜 부인을 만나 자식도 여럿 두었다. 백정은 천한 신분 때문에 매일 무시당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쌓여 일찍 늙어 보여 결혼도 못 하는 신세였다. 어느 날 원님이 산책 중에 백정을 만났다. 백정은 예의를 갖추어 절을 하였다. “그런데 원님, 안색이 불편하신 것 같은데, 혹시 어디 안 좋으신 곳이라도?” 원님은 하늘을 한참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걱정이 너무 많네. 혹시 고을에 강도나 도둑이 들지 않을까? 혹시 누가 나에게 불만이 있는 자가 나를 모함하여 임금님이 갑자기 벼슬에서 파직시키지 않을까? 그 밖에도 걱정거리가 많다네. 내가 이런데 자네는 오죽하겠나?” 그 말에 백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쇤네는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가족이 없으니 걱정할 게 없고, 가진 재산도 없으니 신경 쓸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고기를 사람들에게 팔면 돈을 받으니 기쁘고, 매일매일 그냥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그 백정의 말에 원님은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충격이 왔다. 비로소 백정의 밝은 얼굴을 바라보며 만족의 삶에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보통 인간의 고통은 욕심에서 비롯되고 이 욕심이 사람들을 죄와 잘못된 길로 이끈다. 솔로몬은 그야말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태평성대를 이룬 왕이었다. 솔로몬 하면 항상 지혜라는 단어가 따라붙을 정도로 영민한 왕이었다, 다윗이 이스라엘 왕정을 확립했다면 그의 아들 솔로몬은 안정된 정치적 수완으로 왕국에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었다. 정략적인 혼인과 무역을 바탕으로 경제적 성장을 이뤄냈고, 그리고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하였다. 부전자전이라 했나? 솔로몬도 아버지를 닮아 호색가의 DNA(?)를 갖추었다. 그는 수많은 외국 이방인 여인들, 모압 여인, 아몬 여인, 에돔 여인, 시돈 여인, 헷 여인 등 온갖 외국 여인들을 후궁으로 맞아들였다. 분명 정치적 장점도 있었지만, 왕궁 깊숙한 곳에서 이방인들이 섬기는 신에게 드리는 제사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게 됐다. 이스라엘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종교국가이며 항상 이스라엘의 문제는 역사는 잡신들과의 투쟁과정으로 점철돼 있었다. 솔로몬은 우상숭배가 궁정 안에서 이루어지게 했고, 지나친 세금 부과와 강제노역으로 백성의 원성을 샀다. 큰 둑은 한 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가장 약한 부분부터 방심한 사이 어느새 전체가 무너진다. 하느님의 축복을 약속받는 것으로 시작된 솔로몬의 통치는 하느님의 분노를 사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풍요와 큰 성공은 솔로몬을 교만하게 만들었고, 그는 결국 타락하게 됐다. 인생에서 겸손은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의 마음을 지니자. [가톨릭신문, 2024년 7월 14일,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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