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와 함께 떠나는 복음 여행]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마르 10,21)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을 계속 이어가려는 그때 어떤 사람이 가쁜 숨을 내쉬며 급하게 달려옵니다.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마르 10,17) 겸손하게 모아 꿇은 무릎과 존경을 담아 바라보는 두 눈에서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율법에 나와 있는 계명을 충실히 지키면 된다고. 조금은 뻔한 것처럼 느껴지는 답변이지만 명쾌합니다. 영원한 생명, 곧 구원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이미 구약을 통해 마련해 주신 계명을 충실히 지키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 사람이 대답합니다. 말씀하신 계명은 어렸을 적부터 다 지켜왔다고. 바리사이들이 보이는 허영에 찬 자기 자랑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진정 영원한 생명에 대한 깊은 갈망에서 모든 계명을 충실히 지켜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코는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셨다’고 묘사합니다.(마르 10,21 참조) 그를 유심히 바라보시던 예수님께서 그 사람의 심연에 놓인 근원적인 회개의 필요성을 발견하시고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르 10,21) 이 말씀을 들은 그 사람의 얼굴을 상상해 보십시오. 방금까지만 해도 자신에 차 있던 모습, 금방이라도 영원한 생명의 보증을 손에 쥘 것 같았던 현실이 무너져 내려 좌절에 찬 모습. 얼굴에 깊은 그늘이 드리웁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던 두 눈은 어느새 땅으로 떨어지고 조용히 무릎을 털며 일어납니다. 그리고 방금까지도 예수님을 향해 달려왔던 간절함을 뒤로한 채 자신의 옛 자리, 곧 예수님을 몰랐던 과거 삶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마르코는 그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에 울상이 되어 돌아가 버린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짤막하게 전해줍니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마르 10,22) 여기서 핵심은 영원한 생명에 장애가 되는 것이 재물 자체가 아니라 재물과 맺고 있는 무질서한 관계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구원을 얻고자 하면서도 정작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하느님께 신뢰를 두고 살아가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재물을 향한 왜곡된 애착에 사로잡혀 마치 재물이 자기 삶과 미래를 보장해 줄 것처럼 숭배하던 그의 태도가 영원한 생명에 대한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이 계속 마음에 걸려 삶을 더 깊이 성찰하고 구원을 위해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발견했을까요? 아니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며 무시하고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갔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동안 지켜왔던 계명의 실천을 포기한 것은 아닐까요? 마르코는 이에 대해 어떠한 정보도 우리에게 제공하지 않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수님을 등지고 돌아선 그의 모습에서 우리의 나약한 모습이 보입니다. 우리가 진정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은총을 얻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주님의 빛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에게 정말로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도록. [2024년 7월 21일(나해)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 서울주보 4면, 이영제 요셉 신부(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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