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기도 이야기] (5) 아이를 낳지 못해 서러움을 당하다가 아이를 얻은 한나의 기도(1사무 1-2장)
봉헌과 겸손의 자세로 보여준 참된 고백 - 게르브란트 반 덴 에크하우트 <엘리에게 아들 사무엘을 바치는 한나> 사무엘은 반복적으로 이민족의 괴롭힘을 당하던 판관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민족을 인도한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인물입니다. 아이를 못 낳는 여인으로서(1,2.5-8) 아들을 주십사 애절히 기원하고(1,10-13), 어렵게 얻은 사무엘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한나는 자기 민족 역사의 전환기 중심에서 기도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한나는 아이를 못 낳는 데다가 남편의 다른 부인이 그를 괴롭히고 화를 몹시 돋우었기에(1,5-6) 먹지도 못하고 울기만 합니다. 먼저는 남편 앞에서 울고(1,7) 이제는 주님 앞에서 울면서 자신의 마음을 털어 놓습니다.(1,15) “주님의 면전에서 네 마음을 물처럼 쏟아 놓아라”(애가 2,19)는 말씀처럼 기도는 자신의 마음을 하느님께 그대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한나는 하느님 앞에 솔직하게 쓰라린 마음과 무거운 마음과, 괴롭고 분함을 그대로 털어놓습니다. 한나가 소리 없이 입술만 움직이며 기도하는 동안 사제 엘리가 그의 입을 지켜보면서 한나를 술에 취한 여자로 오해했다는(1,12-13) 사실은 당시에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소리를 내어 기도했음을 추측게 합니다. 한나는 마음속으로 말하면서도 동시에 하느님께 기도함으로써 침묵 속의 기도도 좋은 기도가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한나에게서 두 가지 자세가 눈에 띕니다. 첫째는 하느님 선물을 자신이 독차지하지 않고 아낌없이 다시 내놓겠다는 봉헌의 자세이고 둘째는 하느님뿐만 아니라 자신을 꾸짖는 사제 엘리 앞에서 자신을 ‘당신 여종’으로 여기는 겸손의 자세입니다.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다는 사실 자체로 한나에게서 이미 변화가 감지됩니다. 울기만 하며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한나는 기도 후에 음식을 들며 얼굴색이 밝아집니다. 또 기도의 구체적인 결과를 얻기도 전에 그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남편과 함께 주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후에 아이를 바치면서도 다시 두 사람은 주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이 사실은 하느님을 경배하는 이는 현실의 어려움에 휩쓸리지 않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사무엘을 바친 한나는 자기가 겪은 일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하느님이 이루시는 일의 근본적인 모습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릅니다.(1사무 2,1-10 참조) 한나는 넘치는 기쁨에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세 번이나 반복되는 “누구도 주님과 같지 않습니다”(2,2)는 고백은 “온 세상에 나와 같은 신은 없다”(탈출 9,14)는 하느님 말씀에 대한 응답인 동시에 인간의 교만함과 거만함에 대한 경고입니다.(2,3) 뒤집어짐을 표현하는 열네 개의 반대말(2,4-7)은 모든 것이 하느님께 달려 있음과 더불어 어떠한 인간적인 대단함도 그분 앞에서는 보잘것없으며 그것에 의지하는 것이 어리석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힘 있는 이들이 아니라, “가난한 이를 먼지에서 일으키시고 궁핍한 이를 거름 더미에서 일으키시어 …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 하느님이 세상의 주인이시며 역사를 이끄십니다. 이민족의 억압을 받던 이스라엘이 다윗 왕을 통해 ‘평온’(2사무 7,1)을 얻고, 엘리의 사제 가문이 몰락(1사무 2-4)한 뒤 사무엘의 등장하고, 사울이 선택되었지만 몰락하며(1사무 9-31), 한나가 사무엘을 바친 뒤 다섯 자녀를 더 얻었다는(1사무 2,19-21) 사실은 뒤집어짐을 노래하는 한나의 기도가 힘없는 이들의 하릴없는 독백이 아니라 하느님을 신뢰하는 이들의 참된 고백임을 입증합니다. [가톨릭신문, 2024년 8월 11일, 신정훈 미카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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