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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성경, 하느님의 말씀: 우리를 사들이시고 나눠 주시는 주님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9-17 조회수47 추천수0

[성경, 하느님의 말씀] 우리를 사들이시고 나눠 주시는 주님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요한 6,5)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심에 앞서 주님께서 제자 필립보에게 던지신 질문입니다. 얼핏 보기에 설화적 상황에 딱히 이질적이지 않은 질문이지만, 분명 곱씹어 볼 요소 하나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 피조물을 상대로 주권을 가지신 분께서 굳이 빵을 사들이셔야 하는가요? 모든 것이 당신 것인데 일부러 사들이신다는 표현으로 제자를 시험하신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집니다.

 

“사다”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 ‘아고라조’는 사전적 의미로 “탁 트인 장소”를 뜻하는 ‘아고라’에서 파생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아고라는 정치, 경제, 종교적 차원에서 사람들을 모아들이는 도시의 중심을 차지했습니다. 시민들은 아고라에서 정치적 문제를 토론하고 경제 활동을 수행했으며 도시의 수호신에게 희생제를 바쳤습니다. 이 시민들의 행위는 일련의 ‘전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해당 의미는 다른 영역들에서도 통용되지만, 특별히 ‘사다’라는 행위를 포함한 경제적 활동에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땅을 파면 돈이 나오냐’는 말이 있듯이, 경제 활동을 위해 아고라에 들어서는 이들은 돈 또는 재화를 자기가 피땀으로 마련해 와야만 합니다. 또 준비해 온 것들로 사람들과 흥정을 하며 의견 차이를 조율하거나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한 싸움을 벌이기도 합니다. 돈 또는 재화를 훔치려는 이들도 있으니, 그것을 방어하기 위한 긴장과 통제가 요구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시기 위해 벌이신 전투는 무엇일까요? 당신께서 수행하신 십자가 상 제사입니다. 당신의 몸과 피로 온 인류의 죗값을 지불하신 사건, 그로써 우리 모두를 당신의 몸으로 사들이시고 당신 것으로 삼아주시는 성체성사입니다. 비록 오천 명을 먹이시는 자리에서 십자가 사건이 곧이곧대로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이 기적 자체가 후에 이뤄질 주님의 제사를 가리키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성경은 ‘아이’가 기적의 단초인 보리 빵과 물고기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사람이 어른이 되며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잃게 되는 순수한 모습을 간직한 아이는 하느님께서 이루실 인류의 정화를 가늠케 합니다. 더 나아가, 아이는 오천 명에 달하는 장정에 비해서 지극히 미소한 존재로서 작은이를 상징합니다. 이 작은이가 지닌 5개의 빵과 2마리의 물고기로 주님께서 기적을 완수하심은 1차적으로 하느님이시지만 섬기는 이로서 작은이가 되셨고 그러한 당신 몸을 희생 제물로 바치시어 이루신 구원의 제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또 한편으로, 작은이의 존재는 사람들 가운데 작은이들, 게다가 작은이들 가운데 작은이인 죄인조차도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구원을 희망하게 합니다.(5+2=7 세상 창조가 이루어진 날 수) 오천 명이 먹고 나서 남은 것을 모으니 열 두 광주리를 채웠다는 이야기도 주님의 십자가 상 제사의 구원 효과를 기대하게 합니다. 하느님 백성 이스라엘이 열 두 지파로 세워졌듯이, 온 인류는 주님의 성체성사의 신비 하에 버려지는 것 없이 모아들여져 주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창조될 수 있는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주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 상 제사로 당신을 따르는 이들을 사들이십니다. 주님께서 사들이신 그리스도인들은, 아이가 지닌 빵과 물고기가 무한히 늘어나 사람들에게 주어졌듯이, 온 세상을 향해 나누어지게 됩니다. 이 은총이 매일의 성찬례를 통해 주어지고 있습니다. 성찬례에서 당신 몸과 피로 성변화된 빵과 포도주를 받아먹음으로써 우리는 주님과 한 몸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주님과 한 몸을 이루게 된 우리는 세상에 파견되어 주님께서 또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사들이시기 위한 양식으로 활용됩니다. 이천년 전에 벌어진 십자가 상 제사에 우리 역시 참여하기를 초대받고 있는 셈입니다.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사들이시기 위해 십자가 상에서 당신 몸값을 치르시는 전투를 치르셨단 믿음 안에서 반성해봅니다. 내 나름의 전투로 벌어들인 내 삶의 귀중한 것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다른 이들과 나누고 있는지요? 언제나 무상으로, 은총으로 주어지고 있는 주님 전투의 공로에 감사하며 우리 역시 성체성사의 신비를 뒤따르는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24년 9월 15일(나해) 연중 제24주일 가톨릭마산 8면, 조우현 십자가의 요한 신부(광주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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