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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성경, 하느님의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로마 13,14)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4-11-19 조회수74 추천수0

[성경, 하느님의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로마 13,14)

 

 

니사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Nyssenus, 335-395 추정)를 위시한 여러 교부(敎父)들에 따르면, 아담은 원래 자기가 입고 있던 자비와 은총의 옷을 상실했다고 합니다. 알몸이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던(창세 2,25 참조) 아담과 하와에게 걸쳐져 있던 옷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느님께서는 지극히 깨끗하고 투명한 옷으로 그들을 항시 입혀 주셨습니다. 그 옷은 공기와도 같은, 늘 있어서 귀한 줄 모르는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지어진 옷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느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써 알몸을 인식하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으니,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입혀주셨던 옷을 스스로 벗어 던진 꼴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첫 인간은 자비와 은총의 옷을 상실하고 그에 비해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죄의 결과인 가죽옷을 입게 됩니다. 거기다 무상으로 누리던 모든 것들을 상실하고 고생하여 땅을 부쳐 살아남아야만 하는 처지로 전락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이미 입혀 주신 옷이 아니라 하느님을 참칭(僭稱)하는 옷, 자기 눈에 탐스럽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옷을 입으려 한 결과입니다.

 

하느님께서 입혀 주신 옷을 벗어 던진 인간에게 새로운 환복의 역사가 주어졌으니,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환복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의 신적인 영광과 위엄을 간직한 옷은 주님 변모 사건 때 드러났습니다: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마르 9,3) 주님께서 이 옷을 남김없이 벗으셨음을 보여주는 사건이 십자가 상 제사입니다. 이 제사를 향해 가시는 도정에서 옷 벗김 당하시고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입히려 드는 옷을, 이미 피에 물들어 겉으로 보기에 투명함과 고결함을 상실한 옷을 입으시게 됩니다.(마태 27,28; 마르 15,16-20; 요한 19,23-24 참조) 마치 은총과 자비의 흰옷을 가죽옷으로 환복한 아담의 형상이 재현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내적으로 벌어진 현실은 달랐습니다. 십자가 상 제사를 성취하신 주님께서 부활이라는 사건으로 다시금 영광과 위엄을 간직한 옷을 입으셨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입혀 주신 옷을 벗음으로 해서 죄를 짓는 인간에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옷을 벗으심으로써 용서와 구원의 선사라는 역전을 이루어 내십니다.

 

이 길 위에서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부활의 빛을 간직한 당신의 옷을 입혀 주십니다. 마치 첫 인간에게 하느님께서 은총과 자비의 옷을 입혀주셨던 그 시절이 회복되는 것 같습니다. 이 시절을 요한 묵시록은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묵시 7,14) 이와 같은 환복의 역사를 바오로 사도는 또 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로마 13,12-14);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콜로 3,12-14)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으로서의 위엄과 영광을 간직한 옷마저도 벗어 던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따르려면, 비록 자기 눈에 매력적으로 보이는 옷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주님께서 입혀주시는 옷이 아니라면 마땅히 배제해야 할 것이며, 이미 껴입고 있는 부수적인 옷들이 있다면 그것 또한 과감하게 벗어 던질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부끄럽게 드러날 따름인 우리 알몸을 당신의 옷으로 덮어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늘 입혀 주시는 은총과 자비의 옷을 끊임없이 찾아 입어야 하겠습니다.

 

[2024년 11월 17일(나해)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가톨릭마산 8면, 조우현 십자가의 요한 신부(광주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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