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여름 과일 성경에는 “여름 과일”이라는 낯선 명칭이 등장하곤 합니다. 하지만 명칭만 그럴 뿐, 우리가 다 아는 무화과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무화과는 5-6월에 첫 열매를 맺지만, 8월 중순 이후 많은 양을 수확하므로 “여름 과일”이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신명 8,8에서는 무화과를 가나안의 일곱 토산물 가운데 하나로 소개하는데, 이렇듯 이스라엘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열매입니다. 성경에 자주 등장하고, 주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의 신탁이나 환시에도 종종 나오는데요, 기원전 8세기 북왕국에서 활동한 예언자 아모스가 본 환시가 일례입니다: “주 하느님께서 나에게 이러한 것을 보여 주셨다. 그것은 여름 과일 한 바구니였다. 그분께서 ‘아모스야,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시기에, 내가 ‘여름 과일 한 바구니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종말이 다가왔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을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으리라’”(아모 8,1-2). 환시에 여름 과일 한 바구니가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역설이 있습니다. 수확의 기쁨을 상징하는 무화과 바구니가 재앙의 상징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이는 아마도 “여름 과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이쯔]가 “종말”을 뜻하는 히브리어 [케쯔]와 철자와 발음이 비슷해, 북왕국 심판이 가까웠음을 알리는 구실을 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말하자면, 수확의 모티프를 농사의 기쁨이 아닌 심판의 의미로 쓴 것으로, 이는 수확의 상징인 타작마당을 평생의 선과 악을 헤아려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는 심판의 자리로 제시한 마태 3,12과 같은 맥락입니다. 하지만 무화과에는 심판의 의미만 있지 않습니다. 무화과는 에덴 동산에서 자라던 것(창세 3,7)으로 낙원의 기쁨을 상징하는 열매이기도 합니다. 유다교에는 무화과가 선악과라는 전승도 있는데요, 원조들이 죄를 지은 뒤 무화과 잎으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기 때문입니다. 곧 선악과를 먹고 죄책감을 느끼자, 다른 나무에서 몸을 가릴 만한 잎을 딴 것이 아니라 곧장 선악과 잎으로 옷을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그에 비해 그리스도교에서는 사과를 선악과로 보았는데, 이는 사과를 뜻하는 라틴어 [말룸]이 사악함을 뜻하는 라틴어와 철자가 같아 생긴 전승입니다. 무화과가 지닌 이런 상징성 때문에 옛 이스라엘에서는 경건한 유다인들이 무화과나무 아래를 즐겨 찾아 기도했습니다. 요한 1,47-48에 나오는 나타나엘이 그 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을 보자마자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칭찬하셨는데요, 그 실마리가 바로 무화과나무입니다: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48절). 그는 선악과로 여겨진 나무 밑에 앉아 기도하고 율법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화과가 선악과이든 아니든, 이것이 에덴 동산에서 자란 과실수임을 생각하면, 우리가 무화과를 먹을 때도 낙원의 열매를 먹는 셈이니 흥미롭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 구약학 교수, 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서 「에제키엘서」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 [2024년 11월 17일(나해)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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