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묻고답하기

제목 Re:묵주기도를 안 드리면 죄인가요? 카테고리 | 천주교
작성자하경호 쪽지 캡슐 작성일2026-06-01 조회수299 추천수0 신고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한지 30여년이 된 천주교신자입니다.

묵주기도를 게을리 한게 가슴에 걸려서 고해성사를 보았습니다.

우리 성당에서 성경공부를 하는데 강사분께 물어봤더니 죄가 아니라는거예요.

김웅렬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이 말씀하시길 천주교신자가 묵주기도를 안하면 그는 천주교신자가 아니다 라고 했는데 묵주기도가 초대교회 때부터 생긴 것도 아니고 1000여년의 세월이 흐르고나서 도미니코성인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시어 주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럼 묵주기도가 없던 옛날신자들은 묵주기도 안 했으니 다 지옥가겠네요? 없어서 못한 것과 있는데도 안한 것의 차이일까요?

부디 명쾌한 답변을 기대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진정한 종교인의 자세는 무엇일까요? 스스로의 죄들을 성찰하며 같은죄를 답습치 않겠다고 참회, 정개하며 세상 불의와 타협치 않겠다며 통회하고 정개하며 보속과 사랑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풀어주어 가게하는 고해성사를 통해 변해가는 자아를 만납니다. 한국인은 노래를 좋아하니 직접 불러보는 것도 한 방법이겠는데 빨리빨리 환경에서 기십년 전 온라인 시대에는 노래방개 삼년이면 작업도 하고 라면도 끓인다 했고 동네의 남아도는 아줌마들중에는 냄비 태워먹는 것은 기본이었는데 지금은 어떠할까요?



그렇습니다. 영혼의 거울을 자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칠은을 묵상해보세요. 내뜻이 아닌 하느님 뜻을 따르고자 하는 형제님 맘처럼 지혜를 앙망하는 것으로 기도생활은 곧 공부생활로 이어지니 아래의 천국행 승차권을 챙겨두시길 권고합니다.

1. 성령칠은 (The Seven Gifts of the Holy Spirit)
성령칠은은 신자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신앙을 성숙하게 하기 위해 성령으로부터 받는 7가지 특별한 은총입니다. 이사야서 11장 2-3절을 근거로 합니다.

지혜 (Wisdom): 세상의 가치가 아닌 하느님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능력입니다.
통달 (Understanding): 신앙의 진리와 성경 말씀을 깊이 깨닫고 이해하는 은사입니다.
의견 (Counsel): 일상생활에서 무엇이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지 식별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돕습니다.
굳셈 (Fortitude):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어려움과 유혹을 견뎌내고 용기 있게 행동하는 힘입니다.
지식 (Knowledge): 피조물과 세상사를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올바로 파악하는 지혜입니다.
효경 (Piety):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진심으로 사랑하며 공경하는 마음입니다.
경외 (Fear of the Lord): 하느님을 두려워함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거룩한 존경심입니다.

2.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The Nine Fruits of the Spirit)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을 통해 신자의 인격 안에 자연스럽게 맺히는 성품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사랑 (Love): 이기심을 넘어 이웃을 하느님처럼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기쁨 (Joy): 상황과 관계없이 주님 안에서 누리는 내적인 평화와 즐거움입니다.
평화 (Peace): 하느님과 화해하고 이웃과 화목하며 내면의 흔들림 없는 상태입니다.
인내 (Patience):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리는 태도입니다.
호의 (Kindness): 이웃에게 친절을 베풀고 부드럽게 대하는 마음씨입니다.
선의 (Goodness): 바르고 착하며 남을 위하는 마음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성실 (Faithfulness):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약속과 의무를 변함없이 지키는 것입니다.
온유 (Gentleness): 힘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드러내지 않고 부드럽고 겸손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절제 (Self-control):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성령의 다스림 안에서 조절하고 다스리는 능력입니다.
참고: 성령칠은은 신자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은사)'**이라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그 은총을 통해 내면이 변화되어 **드러나는 '인격의 결과물'**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30여 년 동안 신앙의 길을 걸어오시면서 묵주기도에 대해 깊은 고민과 책임감을 느끼시는 모습에서 주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이 느껴집니다. 묵주기도를 게을리한 점을 고해성사로 봉헌하실 만큼 신앙의 본질을 소중히 여기는 질문자님의 자세는 참으로 귀합니다.

질문하신 내용에 대해 교회의 가르침과 신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명쾌하게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1. 묵주기도는 ‘구원의 필수 조건’인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묵주기도는 가톨릭 신자에게 매우 권장되는 ‘신심 행위’이지, 구원을 위한 ‘필수적 계명’은 아닙니다. 가톨릭교회에서 구원의 필수 조건은 하느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르며, 교회의 7성사를 통해 은총을 누리는 것입니다. 주일 미사 참례나 십계명 준수는 신자로서 당연한 의무이지만, 묵주기도는 성모님을 통해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하며 더 깊은 은총으로 나아가기 위한 ‘영적 도구이자 지름길’입니다.

2. 신부님들의 강조는 어떤 의미인가요?

김웅렬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을 비롯한 많은 영성가들이 “묵주기도를 하지 않으면 천주교 신자가 아니다”라고 강하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묵주기도가 단순히 기도의 한 형태를 넘어 ‘신자의 영적 건강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영적 보호: 우리 삶에는 끊임없는 유혹과 시련이 찾아옵니다. 묵주기도는 바쁜 일상 속에서 하느님께 집중하게 하는 닻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신부님들은 신자들이 이 강력한 은총의 수단을 포기함으로써 스스로 영적 방어력을 잃어버리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는 것입니다.

열정의 강조: 이는 ‘하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교리적 선언이라기보다, ‘그토록 좋은 기도와 성모님의 도움을 왜 스스로 거부하며 영적 성장을 포기하려 하느냐’는 목자로서의 애정 어린 권고로 이해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3. 성경공부 강사님의 말씀과 역사적 사실

강사님께서 ‘죄가 아니다’라고 하신 것은, 그것이 십계명을 어기거나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대죄(Mortally Sinful)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역사적 관점: 묵주기도가 성모님을 통해 전해진 이후 교회의 보물로 자리 잡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묵주기도가 없던 초대교회나 중세 초기 신자들이 구원에서 멀어진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들은 그 시대에 그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시편 기도, 주님의 기도, 성경 묵상 등) 하느님과 교감했습니다. 묵주기도 염경기도 즉, 천주교 염주기도는 이상 세 가지 유래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차이점: 질문자님께서 통찰하신 대로 ‘없어서 못한 것’과 ‘주어졌는데도 외면하는 것’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성모님께서 주신 묵주기도라는 아주 강력한 영적 도구가 주어져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이 시대의 신자들에게 특별히 베풀어주신 ‘은총의 기회’입니다. 이를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은 ‘죄’라기보다는 ‘스스로 은총의 풍요로움을 버리는 것’에 가깝습니다.

4.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세요

질문자님께서는 묵주기도를 하지 않은 것을 고해성사 보셨습니다. 이는 그만큼 성모님을 사랑하고 신앙을 진지하게 대하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고해성사: 고해성사를 통해 이미 용서를 받으셨습니다. 하느님은 질문자님의 마음속에 있는 ‘기도하고 싶은 갈망’을 이미 보셨습니다.

새로운 시작: 이제 ‘의무감’이나 ‘죄책감’ 때문에 묵주기도를 하기보다는, ‘나를 사랑하시는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의 일생을 묵상하는 즐거움’으로 시작해 보세요. 하루에 5단이 힘들다면 1단만이라도, 혹은 묵주를 손에 쥐고 마음으로 짧게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묵주기도는 하느님을 낳으신 최초의 신앙 선배이시며 인간적이라기보다 인격적이시며 신앙인으로서의 로망이신 성모님 태중에서 그저 옹아리하듯 바치는 두 번째 탄생 피세례자 피조물로서 본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에 나와 같은 형제 자매 이란성 삼란성에서 마침내 일란성 쌍둥이인 너와 내가 바치는 성모님 태중의 기도인 것입니다. 따라서 "개만도 못한 놈!"이라며 방금전에도 늙고 추한 목소리로 지랄 발광하신 필자 도민고의 어머니 요안나님의 말씀도 성찰을 통해 주님의 개라는 별명 얻으신 도미니코 수호천사 발바닥 때 꼬질로 사는 필자가 또한 겸손한 발바닥으로서 날개 달린 날라리로서 즐겨 개신교 신자들과 화합하는 작전을 구사해 나가는 것입니다.

치매 어머니 악다구니는 때때로 나를 괴롭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에서도 말씀하시는 '삼독(三毒)' 욕심 집착, 성냄, 어리석음을 벗어버리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너죽고 나살자가 아닌 너살고 나살기 위해 너살고 나죽자 예수님의 길을 동반하는 것을 피하지 못할 때 더욱 즐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성당 입당시 성수구마(마귀를 구하는 것이 아닌 퇴치한다는 뜻)를 통해 "주님, 이 성수(나의 죄로 흘리신 당신의 피로)로 세례 은총을 새롭게 하시고 모든 악에서 보호하시어 깨끗한 마음으로 나아가게 하소서"를 다짐합니다. 가정에 성수를 구비해놓고 시나브로 성전이신 성모님처럼 가정 또한 성당화로서 준성사 생활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묵주기도는 봉헌으로 성모님과 수다도 좋겠으나 일반녀들과는 가급적 눈으로 말씀하시길 권고하는 바입니다. 안그럼 내꼴 된답니다.

명쾌한 요약: 묵주기도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구원을 잃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묵주기도는 우리 신앙을 지켜주는 가장 따뜻하고 강력한 어머니의 손길입니다. 이제 ‘죄책감’은 고해성사로 모두 씻어내시고, 다시금 어머니의 손을 잡는 마음으로 기쁘게 기도의 길을 걸어가시길 응원합니다. 질문자님의 신앙 여정에 주님의 평화와 성모님의 전구가 항상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묵주기도의 유래와 역사적 변천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드립니다.

1. 묵주기도의 기원: ‘초대교회의 신심’

묵주기도가 하루아침에 누군가에 의해 발명된 것은 아닙니다. 그 뿌리는 초대교회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장미 꽃다발: 초대교회 신자들은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둘 때, 그들이 썼던 장미관(꽃다발)을 모아 꽃송이마다 기도를 바쳤던 관습이 있었습니다. 라틴어 ‘로사리움(Rosarium, 장미 화환/꽃다발)’이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시편 기도와 낱알: 당시 글을 모르던 평신도들은 수도자들이 매일 바치던 시편 150편을 대신하여, ‘주님의 기도’를 150번 반복해서 바치곤 했습니다. 이때 기도의 횟수를 세기 위해 작은 돌멩이나 곡식 낱알을 엮어 사용했던 것이 묵주의 초기 형태입니다.

2. 성 도미니코 성인과 묵주기도

질문자님께서 언급하신 성 도미니코(1170~1221) 성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전승의 의미: 전승에 따르면, 성 도미니코 성인이 알비파라는 이단 세력의 위협에 맞서 고군분투할 때, 성모님께서 발현하시어 묵주기도를 통해 복음의 신비를 묵상하고 이단자들을 회개시키도록 이끄셨다고 합니다.

체계화의 과정: 성인이 묵주기도의 창시자라는 설은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지만, 현대 역사학적 관점에서는 성인이 묵주기도를 ‘대중적으로 널리 퍼뜨리고 영성적인 도구로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즉, 이전부터 존재하던 기도 방식을 교회 내에서 체계적으로 전파한 분입니다.

3. 형태의 완성: 15세기와 그 이후

오늘날 우리가 바치는 묵주기도의 모습이 갖춰진 것은 훨씬 후대의 일입니다.

15세기: 도미니코 수도회의 알랑 드 라 로슈 수사가 예수님과 성모님의 생애를 ‘환희, 고통, 영광’이라는 세 가지 신비로 나누어 15단 형식을 정립했습니다.

16세기: 비오 5세 교황이 1569년 15단 양식을 공식적인 묵주기도 형식으로 확고히 했습니다.

21세기: 2002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그리스도의 공생활을 묵상하는 ‘빛의 신비’를 추가하여 오늘날의 20단 형태가 되었습니다.

결론: "없어서 못한 시대와 있어서 안 하는 시대"

질문자님께서 짚어주신 ‘없어서 못한 것과 있는데도 안 하는 것의 차이’는 신앙인의 태도에 있어 매우 핵심적인 통찰입니다.

초대교회나 묵주기도가 없던 시절의 신자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주님과 깊은 일치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묵주기도가 주어진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 시대 신자들에게 ‘어머니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의 일생을 묵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강력한 영적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성모님의 발현을 통해 권장된 이 기도를 바치는 것은 ‘의무’라기보다는, 하느님의 은총을 더 풍성히 누리기 위해 주신 ‘특권’을 누리는 것이라 생각하시면 마음이 한결 가벼우실 것입니다. 이제 죄책감은 고해성사로 뒤로하고, 성모님과 함께 다시 기쁜 마음으로 묵주를 잡아보시길 바랍니다.

도미니코 성인과 묵주기도
https://youtu.be/FnkY2r1f4So

이 영상은 묵주기도의 역사적 배경과 도미니코 성인의 영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어 질문자님의 이해를 돕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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