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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426>부활에 관하여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오기환 쪽지 캡슐 작성일2000-12-16 조회수2,286 추천수0 신고

오랜만에 들렀는데 많은 분들이 성서와 교리에 관해 관심이 많으시네요.

부활에 관해 마침 제가 이번 학기에 수업을 받았기에 부족하지만 답변을 드리고자 합니다.

교회의 가르침은 죽으면 그 영혼은 바로 하느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됩니다. 육신의 부활은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육신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지금 가지고 있는 육신 그대로 부활한다면 곰보인 사람은 부활 후에도 곰보여야 하고,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은 그대로 장애를 안고 살아야 된다는 얘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최후의 심판 때 육신의 부활은 새로운 몸, 영적인 육신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우리 부활의 표상이신 예수님은 그 분을 따른지 3년이나 되는 제자들도 한 번에 알아보지 못하지 않나요? 그것은 예전에 인간의 육체와는 다른 영적인 몸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영적인 것이라면 예수님은 제자들과 같이 식사하지 못하셨을 겁니다. 즉 육을 가지되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불완전한 육신이 아닌 완전한 육신을 소유하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태생 소경의 비유는 제자들이 그 때까지 갖고 있던 유대 관념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즉 당시 유대 사람들은 태생 장애자의 경우 부모의 죄, 또는 그 자신의 죄로 인해 벌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나 장애는 복음에도 나와있듯이 죄로 인한 벌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장애이며, 많은 이들의 죄를 대신 속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현대 의학적으로도 많은 태생 장애가 부모가 임신을 하면서 태교를 잘 하지 않고 과다 약물 복용이나 심리적 쇼크 등의 이유로 인해 발생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가톨릭의 교리상 환생은 없습니다. 사람은 각기 수정이 되는 그 때부터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생명을 소유하고, 생명의 주인으로서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의 본분을 다해서 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 즉 하느님을 스스로 거부하고 살아가는 것이 곧 지옥입니다. 지옥은 상태의 개념이지 장소의 개념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거부하는 상태 자체가 바로 지옥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부터 지옥을 살고 있다고 봐야 하지요. 하느님은 자비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용서의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거부하느냐 따르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자유의지에 달린 셈이지요. 옛 교부들은 악마들 마저도 하느님께선 구원의 기회를 허락하신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계셨답니다. 종말은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요한 복음을 많이 인용하셨던데, 요한의 종말관은 지금 이 세상에서 종말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이 천국이라면 공동체 안에서 그 천국의 삶을 지금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죽음은 현세에서의 삶의 끝이겠지만, 우리 모두는 종말을 지금 살아감으로써 사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답니다. 이런 정신 안에서 살았던 초기 교회 신자들을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구요, 그동안 잊고 지냈던 이웃들에 대한 관심을 다시 가져 보세요. 우리가 공동체의 의미를 바로 알고 살아갈 때 우리는 이미 천국에서 살고 있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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