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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데살로니카서의 종말론 [Re:757]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김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2-12-02 조회수2,437 추천수0 신고

+ 찬미 예수님 !!!

 

 

   "예수님 재림"에 관해 궁금하신 점이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종말론에 관한 것인지(왜냐하면 예수님 재림은 곧 종말 사건이며 또 종말사건의 한 과정이기 때문에, 둘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범위를 더 축소시켜서 단순히 예수님 재림에 관한 바울로의 견해에 국한된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로 해설서들에 나와있는 종말론에 관한 내용을 요약 정리하여 실어드립니다.  이 내용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구체적 내용들은 성서의 본문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바울로의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감사 부분에서는 두 편지들의 핵심 주제인 종말론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바울로의 다른 어떤 편지들에서보다 종말론이 훨씬 더 비중있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첫째 편지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둘째 편지는 집필 동기 자체가 종말에 관한 문제 때문이라고 여길 정도로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첫째 편지와 둘째 편지에서 다소간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첫째 편지의 특징(둘째 편지와의 비교)

 

   1) 종말에 대한 교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에 관한 신앙고백에 근거하고 있습니다(1데살4-5장).

 

   2) 종말의 기간이나 시기에 관한 것들이 "밤", "낮", "도둑" 등의 구상어들과 함께 표현되고 있습니다(1데살5,1-11).

 

   3) 예수님 재림이 종말사건의 전체인 것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1데살4,13 이하).  구약성서에서는 종말을 일컬어 "주님의 날" 혹은 "야훼의 날"로 표현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날"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4) 그리스도교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고, 이 재림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신자생활의 방향을 설정한다고  합니다.  즉 재림에 대한 희망은 신앙 생활의 한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2. 둘째 편지의 특징(첫째 편지와의 비교)

 

   1) 종말에 관한 교리가 예수님의 죽름과 부활에 관한 신앙고백보다는 구약성서의 인용(이사66,15; 예레10,25; 출애3,2; 다니11,36; 에제28,2; 시편33,6)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2) 첫째 편지에서보다 종말론이 더 첨가되어 발전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특히 둘째 편지의 2장 1-10절의 내용이 첫째 편지와 일치하면서도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즉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하지는 않았고, 재림 전에 우선 신앙의 타락이 선행되고 교회의 반대자들이 나타나고 난 다음에야 종말이 온다는 것 등이 첫째 편지보다 추가된 내용입니다.

 

   3) 예수님 재림은 종말의 전체사건이 아니라, 종말사건의 연속적 과정 안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하나의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보다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4)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예수님 재림에 대한 희망은 더 이상 신앙의 한 부분이 아니고, 단지 심판에 대한 기다림의 의미만 있다고 합니다.

 

 

 

3.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의 종말에 대한 묘사 방식

 

   대체로 구약의 예언서와 유다 묵시문학의 사상을 원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

 

   - 역사의 말기에는 악의 세력이 떨쳐 극심한 혼란과 박해가 일어난다.

   - 오직 하느님 혹은 그분의 대리자만이 미구에 하늘로부터 나타나 극적으로 세상을 구원하실 수 있다.

   - 세말의 광경을 묘사할 때 "대천사의 소리", "하느님의 나팔소리"(1데살4,16), "불꽃"(2데살1,8), "구름을 타고 오는 심판자"(1데살4,17) 등의 소재를 즐겨 사용하였다.

 

 

 

4. 바울로의 종말론의 내용

 

   바울로는 종말론을 언급하는데 있어서 묵시문학적 표현과 사상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다르다는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써 이미 종말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바울로의 믿음 때문에 묵시문학에서의 종말론과는 그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주님이 되시고 아버지와 함께 계시며, 그분은 다시 오셔서 악인들을 멸망시키고(1데살5,3; 2데살1,9; 2,10-12) 믿는 이들을 구원하여(1데살5,9) 당신의 영광에 참여케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2) 바울로는 초대 교회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곧 주님의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1데살4,15).  그렇다고 몇 년 안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가르친 것은 아니고, 그는 다만 자신이 죽기 전에 재림하신 그리스도를 다시 뵙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바울로 자신도 차츰 예수님의 재림을 보지 못하고 죽을 각오를 하게 되며(1고린15,31-32; 2고린5,1-8; 필립11,20-24), 둘째 편지에서는 이러한 종말의 임박성은 상대적으로 지연되고 있습니다.

 

   3) 종말은 갑자기 예고 없이 닥쳐 올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안일하게 지내다가 느닷없이 멸망에 직면할 것이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깨어 있으면서 주님을 기다려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바울로는 한 번도 종말이 곧 온다거나 또는 아직 시간이 충분하다는 식으로 그 시기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도둑처럼"과 "갑자기"라는 표현(1데살5,2-3)이 종말이 "곧" 온다는 뜻은 아니며, "이미 왔다는 말에 당황하여 속지 말라"(2데살2,2-3)고 하는 표현이 종말이 아직 멀었으니 안심하라는 말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5. 바울로의 묵시문학을 원용한 종말의 전조 사건의 과정

 

   1) 사탄은 이미 이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 활동으로 신자들은 박해를 당하며, 이 세상에서 믿는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이 서로 대립하게 되고, 죄악은 점점 심해져서 거짓과 불의가 널리 만연하게 된다고 합니다.  특히 거짓을 참으로, 불의를 정의로 오인케 하는 속임수로 말미암은 인간의 착각이 위험하다고 합니다(2데살2,9-12).

 

   2) 배교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악한자"("무법자", "불법의 사람")라는 인물이 등장할 것이라고 합니다(2데살2,3-12).  배교의 개념은 묵시문학(다니11,32; 1마카1,46-52; 2,15-16; 2마카6,1 이하)뿐 아니라 복음서에도 나타나는데(루가18,8; 마태24,10-12), 바울로는 배교를 악한자의 활동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3) 反그리스도가 나타난 다음에야 주님이 재림하셔서 그를 멸하실 것이라고 합니다(2데살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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