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창세기 거짓말 아닌가요...?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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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호경 | 작성일2004-07-05 | 조회수1,887 | 추천수0 | 신고 |
+ 찬미 예수님 !!!
어쩌면 21세기를 살고, 현대의 발전된 과학 지식과 문명과 의식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당연히 유치하고 비과학적이고 비역사적인 사실로 비추어질 것입니다. 실제로도 님께서 표현하시는 신화적인 요소들로 가득찬 허구의 책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성서는 아시다시피, 또 식상할 정도로 강조되고 있다시피 역사서나 과학서가 아니라 신앙의 책입니다. 성서를 역사서로 보고 읽으면 전혀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먼 당연한 엉터리 책입니다. 과학서로 여기고 읽으면 그토록 비과학적인 책일 수 없습니다. 아니면 문자만 읽고, 문자적 해석만 하고 그친다면 거짓이 가득 담긴 흥미 위주의 이야기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서는 신앙의 책입니다. 당연히 신앙의 관점에서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 여부나, 과학적 진위 여부는 상관이 없습니다.
성서는 저술 당시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상에서 체험하고 느꼈던 하느님관과 역사 안에 작용하시는 그분의 말씀과 행위를 자신과 자신들의 주변 사람들이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서술한 책이었습니다. 당시 누구든지 알고 있었던 설화나 전설 혹은 역사적 사실,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과학지식, 당시 사람들이 읽고 즐겼던 시가, 자기네 민족의 풍습과 관습, 지리와 기후 조건 등을 소재로 하여 자기네의 화법이나 문학적 기법 등을 이용하여 구전으로 전하고 문자로 작성하였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우리와는 적어도 3000여년 이상의 과거의 사람들이 말입니다.
3000여년 동안의 문명과 과학과 의식의 발전을 지니고 있는 우리들이 우리의 관점으로 성서를 읽을 경우 그들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고 할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성서의 저자들이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였는가를 알려면 그 당시 사람들의 모든 조건들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고대 근동지방 사람들의 삶의 모든 면과 관념들, 또한 설화, 전설 심지어는 지리적 여건이나 기후 조건 같은 사항들까지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성서를 신앙의 눈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항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성서를 역사서나 과학서로 착각하여 읽을 수 밖에 없을 것이고, 당연히 황당한 책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아주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창세기에는 세상이 7일만에 완성됩니다. 현대의 과학적 지식으로는 참으로 거짓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고대 히브리인들의 숫자신학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7"은 완전수로서, 완벽하고 무한하고 영광스러운 개념을 가진 숫자였습니다. 창조의 날 수는 여기에 기초를 두고 서술한 것입니다. 그들도 아마 세상이 결코 7일만에 생겨나지는 않았음을 알았을 것 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7"자가 갖는 의미를 창조주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심에 적용하여 "7일"이라는 창조날 수를 정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주 삼라만상이 7일만에 창조되었다고 해석을 하는 것이 아니라, "7"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를 하느님께 적용시켜서 해석해야 되는 것입니다. 곧 창조 이야기에서 우리는 세상이 7일만에 창조되었다는 거짓된 과학적 지식을 알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느님의 완전성과 충만성과 영광성과 전지전능하심을 읽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7일"을 그대로 우주의 창조날 수로 받아들이는 것은 신앙인이 아니거나, 비록 무늬는 종교인이나 참 신앙의 눈이 없거나, 신앙이 있더라도 근본주의자나 합리주의자들, 그리고 "축자영감설"을 받아들이고 있는 일부 사람들이 하는 해석일 뿐입니다.
참고로 "창조"는 "無에서(ex nihilo) 有"로 생겨난 것이고, "진화"는 "有에서 有"로 발전되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창조"와 "진화"는 근본 개념부터가 같은 지평에서의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다윈의 진화론의 진위성 여부는 현재 논란의 여지가 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과학적 탐구의 결과로 보아서는 꼭 절대적 과학적 진리이다라는 개념이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 길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성서입문에서 매우 많은 분량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문제입니다. 위의 분량으로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부분입니다. 여러 가지 해설서들의 입문편을 공부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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