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마태오 20,1-16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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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경희 | 작성일2006-08-24 | 조회수504 | 추천수0 | 신고 |
이 특례 비유는 하늘나라의 비유이다. 곧 하느님의 처신을 밝히는 이야기이다. 공덕에 정비례하여 보상하시는 하느님이실 뿐 아니라, 공덕에 상관없이 은혜를 베푸시는 하느님이시다. 비교적 시원한 오후 다섯시부터 여섯시까지 한 시간 남짓 일한 사람에게 놀랍게도 하루 품삯을 쳐주는 주인 같은 하느님이시다. 잠시 일한 일꾼에게, 새벽 여섯시부터 오후 여섯시까지 온종일 뙤약볕 아래서 고생한 일꾼의 품삯과 똑같은 품삯을 쳐주는 주인마냥 너그럽기 그지없는 하느님이시다. 그럼 예수께서는 오늘의 신학자들처럼 신론을 논의하셨을까? 아니다. 그분은 초연한 사변가가 아니고 민중과 함께 어울려 사신 분이다. 곧, 율법을 알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지키지 못하는 천민들(암 하아레츠), 예를 들면 세관원들 및 죄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기를 즐기신 분이시다(마태 11,19 = 루카 7,34; 마르 2,15-17; 루카 15,1-2). 그러니 부지런히 율법을 배우고 꼬박꼬박 지키는 바리사이들과 율사들 같은 선민들이 예수님을 헐뜯을 밖에. 저들의 비난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선한 포도원 주인의 비유요, 잃은 아들을 되찾고 기뻐하는 아버지의 비유(루카 15,11-32)이겠다. 하느님의 선하신 처신을 본받아 예수 당신도 천민들을 끌어안는다는 것, 그러니 바리사이들과 율사들도 공덕과 보상만 생각하지 말고 천민들을 반겨 마땅하다는 것이다(마태 20,12-15 = 루카 15,29-32).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신약성서 1, "마태오 복음서" , 정양모 역주, 분도출판사, 170-171쪽 각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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