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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서의 장절 구분의 유래 및 성서 번역의 방법과 특성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장준영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04 조회수1,017 추천수1 신고

너무 길어져서 댓글 대신 따로 설명드리겠습니다^^

 

본래 성서에는 장절이 없었습니다. 방대한 책인 성서를 읽고 찾기 쉽게 적절히 끊어 일종의 눈금을 단 것이죠.

 

신약은 현존 성서 사본들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것들인 4세기의 바티칸 사본, 5세기의 알렉산드리아 사본에 장 구분이 나타나고, 절은 1551년 프랑스의 인쇄업자 스테파누스가 시작했답니다.

 

구약은 1204,5년에 잉글랜드 캔터베리의 대주교 스테판 랭톤이 라틴어 불가타에 처음으로 장 구분을 달았고, 절 구분은 그보다 훨씬 앞서서(신약과는 반대죠) 바빌론 포로기 시절 유다인들이 히브리어 성서를 포로 생활 때문에 히브리어를  모르는 백성들에게 낭독할 때, 구분해서 끊어 읽기 쉽게 단 것에서 유래한다네요(구약성서 느헤미야기에 그런 낭독 장면이 나오죠. 에즈라가 읽는).

 

그런데 문제는, 성서를 원어인 히브리어와 아람어(구약), 그리스어(신약)에서 다른 말로 번역하다 보면 원천언어와 수용언어의 통사론적, 의미론적 차이 때문에(어떤 언어도 1:1 대응은 되지 않습니다) 번역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게다가, 성서는 옛 글로 된 고대 문헌이며 여러 문학 양식이 혼재되어 있으므로 번역할 경우 절의 선후, 끊는 부분 등이 애매해질 경우가 많습니다.

 

또, 예컨대 시편은 어느 부분까지가 한 편의 시인지에 대한 구분도 사본마다, 히브리어  텍스트와 그리스어 칠십인역(히브리어 MT와 그리스어 칠십인역(LXX)의 차이도 많습니다. 성서는 사본밖에 남아있지 않은데, 현존 사본들의 연대는 LXX가 MT보다 훨씬 앞섭니다. 하지만 원본 전승 계보의 정확성은 MT가 더 낫다는 평가입니다. 아주 복잡하죠) 간의 구분 설정이 다른 경우도 있구요. 따라서, 성서 번역은 아주 난해한 종합적 작업이며, 번역자들의 학문적 판단에 따라 차이가 나는 부분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번역이 그렇듯이 성서 역시 직역, 의역, 중용을 취하는 방법 등의 번역 기법이 있습니다. 우리말 번역들 가운데 공동번역은 대표적 의역본이고, 새번역 성경 및 개신교의 개역성경은 직역을 했습니다. 특히 새번역은 가장 최근의 현대 번역이며, 직역하면서도 우리말의 성질과 히브리어, 그리스어 원전의 특성도 잘 살렸습니다.

 

의역은 문자보다는 뜻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두기에 쉽게 뜻을 파악하고 원어민이 원전을 읽는 느낌을 번역본에서 우리말 사용자가 가질 수 있게끔 하는 장점은 있으나, 경우에 따라서 원전의 언어 구조가 훼손되는 부분도 있겠고, 여러 뜻이 있을 경우 한 가지 뜻만 골라서 번역할 수밖에 없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직역은 원전의 문자적 액면에 충실하므로 말씀드린 단점을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으며, 학문적으로도 의역보다는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관용어나 속담 등, 원어의 고유한 표현을 우리말로 옮기면 뜻이 사라지거나 이상하게 되기도 하며, 시나 노래 같은 문학 양식을 온전히 잘 옮기기가 어렵습니다. 때문에, 고 선종완 신부님과 함께 공동번역의 구약 부분을 담당하셨던 고 문익환 목사님은 공동번역 작업을 계기로 해서 시 공부까지 하셔서 시인으로도 일가를 이루셨을 정도지요(윤동주님과 한 고향 동기시고). 새번역 성경의 우리말 윤문 작업에도 국어학자들 뿐만 아니라 이해인 수녀님 등 시인들도 참여했습니다.

 

특히, 성서의 시가 양식과 기도 부분을 번역함에 있어, 전례적 측면을 중요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시와 노래는 구약성서의 4할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큰데, 히브리 시가 양식과 작품의 형태, 특성을 충실하게 살릴 필요가 있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미사 중의 화답송, 성무일도 등 전례에서의 사용에 있어서는 우리말의 맛과 가락이 잘 살아서 입에 착착 붙도록 만들어야 되니, 서로 엇갈리는 길을 가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때문에, 공동번역과 새번역 성경을 공인 번역본으로 사용하는 중에서도 입당송, 화답송, 영성체송 등은 고 최민순 신부님께서 라틴어 불가타에서 번역한 시편을 줄곧 써왔던 것입니다. 비록 히브리어 원전이 아닌 라틴어에서의 중역이지만(물론 히브리어 원전과의 대조는 했습니다) 전례 중에 낭송하기에 이만큼 입에 착착 감기고 경건한 기도의 맛을 풍기는 번역이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성서 번역의 세계적 추세를 볼 때, 교회 안팎의 대중을 위한 선교적 차원에서는 의역을, 학문적이고 교회의 공식 텍스트라는 용도에서는 직역 내지 중용적인 번역을 합니다. 가능한한 문자적 액면에 충실하되, 필요한 경우(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직역할 경우 우리말 번역의 결과의 뜻이 원전과 달라지거나 이상하게 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복음서의 그리스어 원전의 '머리 위에 숯불을 올려놓는다'를 우리말로 그대로 번역하면 아주 끔찍하죠. 하지만, 이것은  당시 예수님 당시 유다 지역의 언어였던 아람어의 관용적 표현으로, 상대방을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부끄럽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식사한다는 뜻에 해당하는 신약성서 그리스어 원전의 직역은 '기대어 눕는다'인데, 고대 유다인들의 식사 자세가 그랬습니다. 이런 문화적으로 판이한 부분까지 곧이곧대로 직역하면 뜻이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바늘눈'이라 된 부분 역시 우리말로는 '바늘귀'로 번역합니다.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우리말의 관용적 표현을 더 존중해야 되는 경우죠. 이같이, 번역이란 단순한 독해가 아니라, 문화적 작업입니다) 의역하는 것이 중용적 번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어 번역들 가운데 미국 천주교회의 공인역인 New American Bible, 미국교회협의회(개신교) 주도의 신구교, 정교회 공동번역인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우리나라 개신교의 표준새번역 등이 그런 예지요.

 

성서 원어를 공부하기는 아주 어렵고, 사목자나 성서학도가 아닌 이상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새번역 성경 등의 직역본, 말씀드린 중용적 번역, 공동번역 등의 의역본들 가운데 권위있는 것들 몇 가지를 대조해서 찾아보고 읽으면 성서 공부에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원전을 참조하는 것에 버금가는 훌륭한 효과를 거둘 수 있고, 실제로 성서학도들도 학문적 연구에 있어 반드시 이러한 번역본 대조를 꼭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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