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묻고답하기

제목 Re:후손의 저주와 축복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송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07-12-17 조회수583 추천수3 신고

먼저 형제님께서 가지고 계신 의문에 대한 답은 오직 하느님께서만

알고 계신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 신자된 도리라 하겠읍니다.

성경에 보시면 어떤 곳에서는 연좌제(자식이나 부모의 죄 때문에

부모나 자식이 벌을 받음)를 적용하지 말 것을 하느님께서 명하십니다.

신명기 24장 16절의 말씀을 먼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자식 때문에 아버지가 사형을 당해서도 안 되고, 아버지 때문에

자식이 사형을 당해서도 안 된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죄로만

사형을 당해야 한다.”

이 말씀을 읽으신 분들이 갖게 되는 의문은 하느님께서는 분명 개인의

죄는 그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으시는데, 왜 성경의 많은(수십군데 이상에서 발견됨)

구절에서는 개인의 죄를 물어 후손에게 저주가 내려가고

개인의 순종과 선행으로 후손에게 축복을 베푸시는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인용한 성경 말씀의 핵심은 인간공동체 안에서 인간들이 지켜야하는

법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말씀드리면 인간사회의 사형제도를

운영하는데 있어서는 철저하게 개인의 죄는 개인에게만 물어라 라고 인간들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신 이유는 죄보다 형벌이 더 크게

적용되는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 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벌할 때에는 개인의 죄를

개인에게만 적용해야지 연좌제를 적용하면 안된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인의 죄와 순종을 이유로 하느님께서 후손에게 저주도 내리고

복도 주시고 하는 것은 이율배반 아닌가?  라는 의문을 누구라도 가지게

됩니다. 전술한 말씀(신명기24장16절)은 인간의 외적인 죄에 대해 인간사회에서

적용되는 형벌에 있어서 사람들이 지켜야 될 법이지만,후손들이 저주를 받고

축복을 받는 연좌제 성격의 많은 말씀들(구약에 보시면 수도 없이 나옴)은

인간사회에 세운 인간이 지키는 법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 펼치시는 섭리 또는 치리(다스리시는 이치)를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러한 섭리를 베푸시는 데에는 외적으로 드러난 죄 외에도 드러나지

않은 많은 죄, 그리고 인간 내면까지를 성찰하시는 하느님에 의해 우리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섭리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죄에 대해 적용해야할 법을 주셨는데(신명기 24장16절),

이는 사람의 죄를 사람이 물을 때 연좌제를 적용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분명하게 연좌제를 적용하시는데 가장 큰 연좌제는

아담의 불순종 때문에 온 인류가 사망의 멍에에 매이게 하신 것이라

하겠읍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왜 후손에게까지 연좌제를 묻는 섭리를

펼치시는가?  라는 의문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왜 어떤 사람은

축복 속에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저주 속에 태어나는가?

우리 모든 인간이 영적으로 보면 모두 불구이지만 어떤 이들은

정신적 육체적 결함을 탄생으로부터 안고 태어납니다.

개인의 죄를 개인에게만 물으시라는 하느님의 신명기 24장16절의

말씀에 근거하면 태어난지 얼마 안된 아기가 무슨 죄로 그런

결함을 갖고 태어나는가? 라는 의문에 봉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유사한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복음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요한복음 9장 2절과 3절 인용)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위와 같이 말씀하신 이유를 누구도 정확히 헤아리지

못하겠지만 감히  헤아려보면  "죄에 대한 벌을 주시는

하느님으로 접근하지 말고 구원하시기 위한  하느님의 치리적

섭리로 받아들일 때 너희가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고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라는 말씀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즉, 저주로 보이는 그것일지라도 본질에 있어서는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심오한 섭리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시적 행 불행은 다만 스쳐 지나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통과해 지나가는 나그네(순례자)인 것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통과해가는 정류장이지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류장에는 행 불행, 아니면 축복 저주와 같은 이원적 이중 예정 섭리가

펼쳐집니다. 그러나 그러한 섭리는 오직 목적지까지의 도착을 위함입니다.

이정표가 없이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세상(순종/불순종, 행/불행, 축복/저주, 영생/ 멸망)의 이원적(이중적) 예정 섭리는

시공간에서만 펼쳐지는 종말론적 성격의 하느님의 섭리에 불과하고, 하느님의 궁극적이고

온전하시고  영원하신 뜻(예정섭리)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새창조라 하겠읍니다. 이러한 새창조는 이원론적 접근이 불가능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느님께 대한 아멘(순종.일원론)이라 할 수 있읍니다.

즉, 모든 것은 오직 하느님의 궁극적이고 온전하시고

영원하신 뜻(예정)인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의 완성을

위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후손에게까지 연좌제를 적용하시는 것은

오직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심오한 섭리다. 라고

이해하시고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은 피해야 할 것 입니다.

우리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정리를 해봅니다.

" 인간사회에서는 연좌제를  인간인간에게

적용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연좌제를 포함한 심오하신 섭리를 펼치시는데

이는 죄와 형벌의 문제가 아니고 구원을 위한 방편이다."

이상이 제가 이해하는 내용입니다.

 

그 다음에 여호수아기 7장 15절에 보면 아칸의 악한 죄를

물어 가족 모두를 몰살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이 나오는데

이러한 명령이 개인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물으시라는

신명기의 말씀과 총돌하지 않는가?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읍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일반법과

특별법으로 접근하시면 됩니다. 즉 하느님께서 아무 말씀

안하시면 일반법대로 처리하면 됩니다. 그러나 특정한

사건에 대해 특정한 명령을 내리시는게 특별법인데

만일 특별법을 주시면 특별법이 우선합니다.

하느님의 법에는 인간이 인간에게 적용하는 법일지라도

일반법과 특별법이 있읍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섭리에도 일반섭리(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름)와 특수섭리(홍해바다가 갈라짐)가 있읍니다.

또한 일반은총(선인과 악인에게 골고루 햇빛과 비를 내리심)과

특별은총(어떤사람에게는 특별한 선물을 주심)이 있읍니다.

왜 이렇게 누구에게는 더 좋게 해주시는지 우리가 미루어

알 수 있는 방법은 성경을 통해서인데, 하느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그 사람에게는 반드시 특별한 은총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은총을 실제로 체험하게 해주십니다.

 

성경에 드러난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가계(자손)에 흐르는 저주일지라도

개인이 하느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면 분명히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느님이 분명하십니다.  왜냐하면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사망의

저주를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의 축복으로 풀어주셨음으로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하겠읍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께 순종하는 정직하고

정결한 삶을 하느님과 이웃 앞에서 살아서 축복받고 또 이러한 축복을

이웃과 나누며 살아야 하겠읍니다.  이러할 때 하느님께서 축복을 더해

주시리라 믿읍니다.

 

성경을 읽으시며 하느님의 진리를 추구하시는 형제님께

주님께서 땅의 기름진 복과 하늘의 신령한 복으로 축복해

주시기를 빕니다.

 

추신 :   성경 안에 있는 많은 말씀들간에 논리적 충돌이 일어나

            "말이 안된다" 는 생각을 하실 수가 있는데 이럴 때에는

            반드시 주님께 기도해서  왜 그런지 알려달라 하시면

            어떤 말씀이 상위법이고 어떤 말씀이 하위법인지 알려주셔셔

            실제로는 전혀 말씀간에 충돌이  없음을 분별하여 알게 해주십니다.

            (즉시로 모든 것을 알려주시는 경우도 있지만 서서히 조금씩

             알려주심. 안 알려주시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이는 아직

             감당하기 어렵거나 신비로 남겨야 하는 경우임)

             이는 성령께서 빛을 비추어주심으로 가능합니다.

             빛을 비추어주신다 함은 심령에 감동이 와서 갑자기

             뜻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하느님의 계시진리인데 이러한 계시진리를 이해하도록

             성령께서 믿는 이의 심령에 다시 계시를 주실 때에만 온전한

              이해가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해 성경을 읽어야만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게 되는 것 입니다.

            그렇지 않고 지식과 언어논리 만으로 접근할 때

            성경 안에 말도 안되는 내용을 수도 없이 찾아내게

            됩니다. 저는 과거에 그러한 죄인이었읍니다. 제가 주님 앞에

            깊이 참회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주님께 순종하겠다고 고백했을

            때 주님께서 은혜로 눈을 열어주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주셨읍니다. 참고하시라고 제 개인의 체험을 말씀드립니다.

           만일 교회의 공식적 가르침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제가 쓴 내용이

           틀린 것임을 미리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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