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에 나타나는 단체적인 사람.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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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두석 | 작성일2008-04-03 | 조회수3,890 | 추천수8 | 신고 | ||||
성경에 나타나는 인물들에 있어서 어떤 경우에는 그 이름이
단체적인 사람을 뜻하기도 합니다.
먼저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아담"이라 하겠읍니다.
아담은 인류의 원조이자 최초의 인간 피조물입니다.
아담을 단체적인 사람으로 표현하는 경우는 원죄와 관련될 때입니다.
다음 성경구절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코린토 1서 15장 22절)
상기한 성경말씀 안에서 아담은 개인적 아담 안에 "아담의 모든 후손이 단체적으로
들어있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고려해야할 성경적 진리는,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들었고 아담과 하와로부터 모든 인류가
태어났으므로 아담이 바로 육신을 지닌 모든 단체적인 사람의 조상일 뿐만 아니라
육신을 지닌 모든 인간 자체라는 것입니다.
즉, 아담이 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범죄를 저지를 당시에 우리 모두가 아담 안에서 함께
범죄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담에게서 나왔으므로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범죄할 당시에
아담 안에 어떠한 형태(원소?)로 있었다고 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있는 성경적 근거는 히브리서 7장 10절의 말씀입니다.(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레위가
아브라함 안에 있었다 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음)
히브리서의 저자가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그리스도의 대사제직이 레위(정확하게 말하면 제사장직은 아론의 후손임)지파에게 위임된 대사제직에 선행하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잇는 것임을 증거하기 위해 위와 같은 성경말씀을 계시진리로 쓰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듯이 멜기세덱(하느님의 대사제를 상징)이 아브라함을 축복했을 당시에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레위지파의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몸속에 존재하여 멜기세덱으로부터 아브라함과 함께 축복을 받았다고
하느님의 계시를 통해 히브리서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 사람이 단체적인 사람을 의미함을 바오로 사도께서 여러 성경말씀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통해 깨달음을 얻으시고 성령의 감도 하에 서신서를 기록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32장에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시는데 이때 "이스라엘"은 야곱의 몸에 있는
야곱의 후손들, 즉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를 의미합니다. 다시말해 이스라엘은 단체적인 사람(이스라엘 민족)을
의미한다고 보실 수 있겠읍니다. 반면에 유다는 유다(야곱의 아들)에게 왕통이 있음을 의미하는 정통성을
상징한다라고 볼 수 있겠읍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과 모든 후손이 이스라엘이고
그 중에서도 유다 지파에게 왕통(왕홀)이 있으므로 유다는 이스라엘 안에서도
왕통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역사서에서도 보시면 남유다 왕국(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에
이스라엘 12지파의 정통성이 있는 것으로 기술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유다지파에서 출생하심을 예언서에서 말하고 있음과 다윗(유다의 후손) 가문으로 왕통이 내려옴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할 수 있겠읍니다.
참고로 야곱의 열두아들 중에서 출생으로 보면 르우벤이 장자이고
상속으로 보면 두 몫을 받은 요셉이 장자이고, 맏배로 봉헌되어 주님을
섬긴 것으로 보면 레위가 장자이며, 마지막으로 왕통을 놓고보면 유다가
장자가 된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읍니다.
성경의 이름은 개인을 뜻하기도 하지만 단체를 뜻하기도 합니다.
야곱은 개인이라서 개인적 삶이 끝났을 때, 무대에서 사라졌지만
야곱의 몸에서 나온 열두아들들이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이라는 단체적 사람인
이스라엘로 불리우고 있는 것을 보면 성경의 말씀이 얼마나 오묘한지 깨닫게 되고
다만 한 분이신 하느님을 찬미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 너의 이름은 이제 더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라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야곱의 몸에 있던 모든 후손(야곱=야곱의 몸에서 난 모든 후손)이
지금 이스라엘로 불리고 있지 않읍니까?
창세기의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신 데에는 지금 설명드린 바와 같이
단체적인 사람의 의미(야곱의 몸에서 난 모든 후손)로써 개인인 야곱을 이스라엘이라는
선택받은 한 민족(단체적 사람)으로 세우시는 영적인 의미가 있읍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담 안에 있으면 저주받은 단체적인 사람이 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면 구원받은 단체적인 사람(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서간집에 흐르는 "아담 안에서" 와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씀의 영적인
의미가 참으로 심오한 것은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개인적인 사람으로도 보시지만
단체적인 사람으로도 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가장 귀한 말씀을 저는 "그리스도 안에서" 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개인이 영생을 얻고 단체적인 사람(교회)의 지체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구원이 단체의 구원(그리스도의 몸, 교회)을 이룹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때가 찰 때
종국적이자 단체적인 구원이 이루어짐으로 구원이 최종적으로 완성(주님 재림 후)될 것인데
그 때 비로소 교회가 주님을 머리로 완전한 한 몸(단체적 한 사람)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묵시록에서 신랑이신 어린양(예수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가
결혼식을 올리는 것, 즉 한 몸을 이루는 것(머리이신 그리스도와 몸인 교회가 한 몸이 됨)으로 대미를
장식하게 되는데 바로 어린양의 혼인잔치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계시진리이므로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그대로 이루시기
때문에 의심으로 받으면 저주에 떨어지고 믿음으로 받으면 축복을 받게됩니다. 어떤 사람들(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성경을 이이솝우화, 또는 주몽설화 정도로 여기는
것 같은데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믿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빛비추심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지식이나 노력으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믿을 수 있는게 아니고
주님께서 은혜로 눈을 열어주실 때 우리가 다만 하느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감사하게
받을 수 있읍니다. 성경말씀은 자구를 놓고 고고학적 훈고학적 역사학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하고 의심에 떨어져 믿음에서 떨어져나가 결국 멸망당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한 분이신 하느님의 생명의 말씀을 통해 하느님을 더욱 깊이 깨달아 체험하여 알고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완성을 이루도록
주신 살아계신 하느님의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을 문자로 받으면 죽게된다고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성령의 인도로 읽어야만 성경말씀이 생명의 말씀이
되어 읽는 이를 살리는 것입니다.(코린토2서3장6절)
"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성경말씀에 숨어있는 하느님의 뜻은 하느님의 영(성령) 만이 알고 계시므로
성령이 알려주셔야만 우리가 성경말씀을 깨달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적 지식으로
성경말씀을 아무리 연구해봐야 오히려 의심에 빠져 하느님의 성경말씀을 훼방하는
독성죄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독성죄를 범하게 되는가 하면 자신의 지식을
믿고 하느님의 말씀을 거짓이라고 부정(의심)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알량한 지식이 전능하신
하느님의 성경말씀보다 훌륭하다는 것이지요.
이쯤되면 이런 사람들(하느님과 성경말씀을 믿지않고 자신의 서푼어치도 안되는 지식으로
성경말씀이 앞뒤가 맞지 않고 말도 안된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은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알량한 지식을 믿는 셈이 되어 아담이 지식(선악과) 의 유혹에 넘어가 저주에 빠져
죽게 된 것과 같은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식을 우상숭배하다가 멸망당하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항상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서 남을 비난하며 자신의 알량한
지식을 자랑하고 자신을 높이는 경향을 보여줍니다. 하느님의 성경말씀이 잘못되었음을 자신의
지식으로 찾아냈으므로 자신이 하느님보다 똑똑하다는 것이지요. 자신의 죽은 지식으로 하느님의
생명의 말씀인 성경의 깊은 뜻을 어찌 알 수 있겠읍니까? 교만이 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사람을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글을 읽을 때에는
각별히 조심하는 영적 분별력이 필요하다 하겠읍니다.
창세기에 나와 있듯이 아담과 하와도 동일한 의심으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취함으로써 하느님을 불순종하여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저주를 물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경말씀이 말이 안된다는 주장은 창세기의 뱀(사탄)이 하던 주장으로 오늘날에도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창세기에 나오는 뱀의 후손이라고 보시면
되겠읍니다. 회개하고 올바로 믿으면 그런 사람도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믿고 세례를 받아야만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되는데(마르코 복음 16장 16절), 아직까지
뱀의 후손으로 머물고 계신 분들은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성경에서 이야기하고 있읍니다.
베드로 조차도 주님의 십자가 수난을 훼방하려고 하자, 주님께서 마태오 복음 16장 23절에서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라고 책망하십니다. 베드로 조차도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반박했을 때 사탄이라 책망을 받았음을 기억하고 성경말씀에 대해
맞네 틀리네 하는 뱀의 후손과 같은 주장을 해서는 안되겠읍니다.
뱀의 후손은 또한 거짓의 자식으로서 자신의 거짓을 변호하기 위해 하느님의 참된 생명의
말씀을 부정하게 됩니다. 아비인 뱀이 했던 짓을 자식이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 분들이 올바른 신앙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주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하겠읍니다.
다음의 코린토 1서 2장 11절의 성경말씀이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있는데 성경에 있는
하느님의 생각(성경말씀의 의미, 뜻)은 성령께서 알려주셔야만 우리가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 속에 있는 영이 아니고서야,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자기가 문자로 읽는지 성령의 빛으로 읽는지를 알 수 있는 진단법은 간단한데, 성경을 봉독하며
계속 의심 분심이 들면 문자로 읽고 있는 것이고, 성경을 읽으며 감사함과 감동을 느끼면
성령의 인도하에서 읽고 있는 것입니다.(이상은 제 체험임)
나눔차원으로 말씀드렸고 전기한 내용은 제가 개인적으로 성경공부하며
알게 된 내용입니다만 교회의 가르침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제가 쓴 내용이
틀린 것임을 미리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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