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묻고답하기

제목 善과 惡의 판단은 우리의 의지입니다.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04 조회수684 추천수0 신고

아닙니다. 선악과에 대한 형제님의 비유에 대한 저의 오해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김동영 요한 형제님이 언급한 마태오 복음 17,24에 ‘성전세’의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시고 전지전능하십니다. 그분을 기리는 모든 사람들이 그분이 이 세상에 왔는데도 그분을 모르는 상황임을 잠시 묵상해 봅시다. 얼마나 그분께서 답답하시겠습니까? 이 복음 내용은 하늘나라의 그분을 믿는 세상 사람들이 그분을 이용하여 자기 이익을 누리는 내용입니다. 그들은 그분을 위해 만든 성전에, 그들의 자녀들에게는 세금을 면제해 주는 편법을 범하는 자들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주인의 주인이시면서도 자기를 기리는 성전에 ‘성전세’를 내셨습니다.

그리고 형제님이 생각하시는 ‘비유’에 관해서도 한번 생각해 봅니다. ‘하늘나라의 신비’는 신비 그 자체입니다. 하늘나라는 하느님의 나라이며 하느님 자신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완전히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듯이 그분의 나라를 완전히 정의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예수님도 이 신비를 여러 사람들에게 설명하시기 위해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비유란 우리의 경험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것 또는 상황을 들어 설명하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이 ‘하늘나라의 신비’를 ‘비유’로 설명하시고, 어떤 비유는 그 비유의 의미까지도 분명하게 설명하시면서, 하늘나라의 신비에 대해 분명하게 가르치시려고 하셨습니다. 요한 형제님께서 언급하신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의 신비에 관련하여 7가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 가라지, 겨자씨, 그물 등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시면서 특히 씨 뿌리는 사람과 가라지의 비유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추가적으로 보충하여 주십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이해시키시기 위해 이렇게 비유를 들어서까지 설명해 주십니다. 그 설명으로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이해하고 믿는 신앙인입니다. 그렇지만 선악과에 대한 김동영 요한 형제님의 설명과 비유는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있습니다. 형제님의 오해 부분이 많이 보입니다.

형제님은 ‘선악과라는 것은 성(性)적 관계입니다.’라는 것을 너무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그 성적 관계를 창세기 3장과 결부시켜 말씀하십니다. 이 창세기 3장은 ‘인간의 죄와 벌’에 관한 내용입니다. 인간은 하느님께서 하지 말라는 것을 하였기에 죄를 지었습니다. 창 2,16의 내용[그리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을 보시면 하느님은 분명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하고 하지 않고의 선택은 우리의 의지입니다. 따 먹고 먹지 않고는 우리 인간의 선택의 몫입니다. 그곳 에덴의 동산에 뱀이 있고 없고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고 하지 않고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자유 의지’입니다. 그러나 여자는 따 먹었고, 뱀이 꾀었다고 그분께 핑계를 대었고, 아담은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라고 하느님께 대어 들기까지 했습니다. 창 2,9에는[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선과 악을 구분할 줄 아는 ‘선악과’와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나무’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선악과의 善과 惡은 글자 그 의미 이외의 뜻은 없습니다.

하느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이고, 지키지 않는 것이 ‘악’을 행하는 것이라고 저는 저 나름대로 정의합니다. 이 ‘악’의 일부에 성적[性的]관계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님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그 최종의 해석은 형제님의 판단의 몫입니다. 형제님의 자유 의지에 따라 판단할 몫입니다. 하느님 그분은 정말 전지전능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그분의 피조물입니다. 그분만이 아시는 것을 우리 인간이 정확하게 해석을 할려고 한다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분의 뜻은 우리 모두가 ‘그분 사랑과 우리 이웃 사랑’으로 귀결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더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이웃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분의 의지[계명]입니다.

'창세기 3장'은‘하느님의 계명을 어긴[선악과 따 먹음]로 [선과 악을 구별할 줄 아는 사고력의 터득및 출산과 노동의 고통(?)]을 받고, 결국은 에덴의 동산에서 추방된 우리’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성경의 주된 내용입니다.

소생의 답변에 일부 오해가 계시다면 죄송하게 생각하면서 전적으로 이해를 바랄뿐입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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