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성령강림 이야기는 신약성경 전체 중에 여기 한 군데만 나온다. 어디에서 루카가 이 이야기를 물려받았는지 알 길이 없다. 어쩌면 루카 자신이 구성하여 이 모든 장면들을 오순절 기간과 연결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빈틈없이 서술된 이야기의 이면에 깔려 있는 성령체험은 부활한 분이 성령을 주시는 내용을 서술한 다른 세 곳에서도(루카 외에도 요한 20,19-23 및 에페 4,7-8 참조) 나타난다.
성령강림 사건의 골격과 동기들은 무엇보다도 구약성경의 관념세계에 뿌리박고 있다. 다음 성경구절들이 이를 확인해 준다.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한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가 불에 타는데도, 그 떨기는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탈출 3,2)
“그것은(구름 기둥) 이집트 군대와 이스라엘 군대 사이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자 그 구름이 한 쪽은 어둡게 하고, 다른 쪽은 밤을 밝혀 주었다. 그래서 밤새도록 아무도 이쪽에서 저쪽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탈출 14,20)
“새벽녘에 주님께서 불기둥과 구름 기둥 사이에서 이집트 군대를 내려다보시고, 이집트 군대를 혼란에 빠뜨리셨다.”(탈출 14,24)
“셋째 날 아침, 우렛소리와 함께 번개가 치고 짙은 구름이 산을 덮은 가운데 뿔 나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자, 진영에 있던 백성이 모두 떨었다. …시나이 산은 온통 연기가 자욱하였다. 주님께서 불 속에서 그 위로 내려오셨기 때문이다. 마치 가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연기가 솟아오르며 산 전체가 심하게 뒤흔들렸다. 뿔 나팔 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모세가 말씀을 아뢰자, 하느님께서 우렛소리로 대답하셨다.”(탈출 19,16-19)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바로 그때에 주님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주님 앞에 있는 바위를 부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람 가운데에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간 뒤에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불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1열왕 19,11-12)
특히 유대인 학자 알렉산드리아의 필로(기원후 40년에 죽음)가 전해주는 다음과 같은 시나이 이야기는 사도행전 연구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불 속으로부터 어떤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이 때 불꽃이 분명한 목소리로 변화하여 모든 이들을 경외심 가득한 두려움으로 채웠다. 이 목소리는 그것을 듣는 이들을 위하여 울려 왔는데, 그 음성이 너무도 명료하게 들려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보고 있다고 믿었다.”(십계명. 11, L.Cohn판 4권, 278-279).
하느님의 성령이 꿰뚫고 들어오는 곳에는 온통 성령으로 충만해진다. 하느님의 영은 인간의 손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그분의 영은 오로지 기도하는 가운데 기다려야 할 뿐이다. 그분은 갑자기 다가와서 마치 돌풍과도 같이 그렇게 모두를 채운다. 영은 결코 건성으로만 들어넘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영은 한 인격체를 사로잡는다. 그래서 성령에 대한 언어는 마치 불(또는 혀)에 대한 것과도 같다. 성령에 사로잡힌 인간은 그 영의 인도에 따라 하느님 현존의 증인 역할을 할 능력을 지니게 된다. 루카는 낯선 언어의 기적을 설명하기 위하여 ‘이상한 언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와 비슷한 현상이 사도들의 다락방 모임(사도 1,13)에서도 가능했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사도 10,45-46; 19,6).
무아의 경지에서 불분명한 어조로 하는 말인 이상한 언어는 다른 많은 종교에서도 발견되는 현상이다. 종교적인 분위기에 온전히 매료된 사람은 거기에 심취된 상태의 소리만을 내뱉을 뿐이며, 따라서 외부인들에게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말하게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언어는 그리스도인들에게서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하나의 종교현상이다. 바오로는 이러한 영의 심취 현상과 이상한 언어를 부정하거나 평가절하하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경향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언급한다(1코린 14장).
루카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영적 언어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의 위업을 선포할 힘을 부여한다(사도 2,11). 따라서 영적 언어는 낯선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기적을 일으키어 복음이 세상 곳곳까지 선포되도록 돕는다. 여기에 열거된 일련의 민족들은 앞으로 루카가 전개하는 사도행전의 내용과 아무런 관련성도 없다. 예루살렘에 있는 열성적인 유대인들은 세상 각지에서 모여온 이들이며(사도 2,5), 군중 속에는 유대인뿐 아니라 개종한 이방인들도 포함되어 있다(사도 2,11).
개종한 사람들이란 태어나면서부터가 아니라 개종을 통하여 유대교 신자가 된 이들을 말한다. 이러한 유대교 개종자들을 통해서 루카는 미리 이방인 선교를 언급한다는 인상을 피하려고 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이방인에 대한 선교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이끄심에 따라서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를 점차적으로 타지역으로 확장시키는 일은 바오로 사도와 그의 동반자들에게 맡겨진 사항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루카는 아직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확고히 머물러 있음을 강조한다. 나머지 예루살렘 시민들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들 역시 다음 차례의 수신인으로 함께 고려되고 있다.
성령강림 사건은 ‘언어 기적’과 더불어 혼란을 야기시킨다. 어떤 이들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 반면 또 다른 이들은 조롱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교의 실재를 놓고 관심을 보이느냐 아니면 거절하느냐 하는 근본적인 자세 표명을 말해주는 동시에 베드로의 설교를 준비시켜 준다. 그의 설교는 이 모든 일에 대하여 바람직한 응답을 전해준다.
성령강림에 대한 설명은, 부활한 분이 자신의 성령으로 인하여 권능을 갖고 누구도 뛰어넘을 수 없는 차원에서 현존해 있다는 신앙체험을 통하여, 교회의 삶과 인도받음 및 성장 또한 하느님의 초월적인 능력인 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가능하게 된다는 신앙체험을 통하여, 살아 있는 이야기로 전승된다.
출처 : http://www.mn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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