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사용하는, 되도록 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께서 [가톨릭 신자(성직자, 수도자 포함) 및 개신교 신자 포함] 읽으실 것을 강력하게 권고합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약은 집사의 비유"는 어려운 비유인데, 그 주된 이유가 당시의 팔레스티나 지역의 풍습/관습을 모르는 데에 기인하기 때문으로 파악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설상 가상으로, 루카 복음서 16,2의 그 부분을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청산"(가톨릭측)/"정리"(개신교측)이라는 너무 추상적인 의미를 가진 한자 단어들을 사용한 것 때문에, 독자들이 영 엉뚱한 방향으로 이해를 하게 되어, 국내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지중해 지역의 그리스도교 신자들 보다도 훨씬 더 많이 헷갈리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점이 너무도 안타까워, 이번 글을 마련하였습니다.
특히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여 영어권 및 한국어 자료들/강론들을 살펴보면, 우리말을 사용하는 분들 사이에서 헷갈리고 있는 정도가 너무도 심각하기에, 여러분들이 납득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 자료들을 확보하느라 생각보다도 많은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들 국제화의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1990년대 이후로 당연히 많이 해소되었을 줄로 짐작할 것이나, 그러나 여러분들이 생각하고 계시는 것보다도 훨씬 더, 언어 장벽, 문화 장벽이 여전히 매우 높음을 개인적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약은 집사의 비유"에 대한 이런 저런 헷갈리는 추측들은, 우리말로 된 성경만을 읽고서 이에 근거하여, 비록 앞뒤의 문맥 안에서 그 내용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는 하나, 그러한 추측들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추측을 한 분들의 잘못이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우리들이 바로잡고 또 극복하여야 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