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참고]프로테스탄트 주요 교파의 분열실상에 대하여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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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성훈 | 작성일1999-05-29 | 조회수638 | 추천수0 | 신고 | |||||||||||||||||||||||||||||||||||||||||||||||||||||||||||||||||||||||||||||||||||||||||||||||||||||||||||||||||||||||||||||||||||||||
- 개신교[프로테스탄트] 주요 교파의 분열상에 대한 고찰 -
말할 나위도 없이 모든 개신교의 교파는 그 기원이 사도 시대에 있지 않다. 이들 개신교 교파는 모두 근대에 사람이 임의로 만든 것(人造)으로서, 역사적 그리스도교 즉 가톨릭의 기본 교리 중 하나 또는 몇 가지를 배척하고 그들이 꾸민 주장을 집어넣었다.
오늘날 한국의 주요 개신교 교파는 루터교회, 감독교회[성공회], 감리교회,장 로 교회, 침례교회 등 100여개가 넘는 교파가 있다.(1985년 자료 근거) 전 세 계에는 약 650여 교파가 있는데 대개 위의 교파에서 분열된 것이다. 여기서 알아둘 것은 각 교파에서 갈라져 나간 분파들은 고려하지 않은 수치이니 만큼 각 분파까지 고려한다면 1인 1교파 상태에까지 이르렀다고 생각하면 옳은 판단일 것이다.
1) 루터교회 - 독일인 루터(1483∼1546년)는 천주교회의 신부이다. 교회에 대 한 개혁주의자로서 정통 교리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주장했다. 1517년에 교황 권을 거부하고, 교회에서 파문된 후 미사, 성체, 성직자와 수도자의 독신생활 을 반대했다. 드디어 1530년 독립된 교파를 이루었다. 루터는 대사(大赦) 논쟁 을 계기로 하여 당시에 교회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질서에 대한 불만을 모두 표현하며 종교개혁을 이끌어 갔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은 순수한 종교적 사건은 아니다. 한국 루터 교회는 1959년 [루터란 아워] 라는 방송 선교를 통해서 시작 했다.
2) 장로 교회 - 프랑스의 종교 개혁자 칼빈(1509∼1564년)이 교회 행정제도는 교황 제도가 아니고, 신도들의 투표로 선출하는 장로회 제도를 주장하였다. 또 한 성경만을 신앙 규범으로 삼고 절대적 예정설을 강조하였다. 녹스가 이를 전 파하여 1560년 스코틀랜드 총회에서 장로 교회를 창립하였다. 이 교회는 스코틀 랜드의 국교회(國敎會)가 되었고, 영국과 미국 장로교회 확산의 중심지가 된다. 우리나라에는 1884년 미국 북 장로회 의사 알렌에 의하여 장로교 선교가 본격 화되었다. 1907년 독립적으로 대한 예수교 장로회가 창설되었으나, 해방후 신앙 및 신학 노선의 갈등과 지방색, 교권 등이 겹쳐 분열 현상이 나타났다. 재건파, 고신파, 조선신학교[기장]파, 예장통합파, 예장합동파 등 약 53개 분파가 있다.
3) 성공회[영국 감독교회] - 1534년 영국 왕 헨리8세가 중혼(重婚) 문제로 가톨릭 에서 이탈하여 교황권까지 거부하고, 국왕이 교회의 최고 통치자가 되는 영국 국 교(國敎)로서 교회를 세웠다. 성공회란 사도신경의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라는 구절을 한자화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1889년에 시작되었고 현재 서울, 부산, 대전교구로 나누어져 있다.
4) 감리교회 - 1739년 영국 성공회의 사제 존 웨슬리(1703∼1791년)가 세웠다. 정 식 명칭은 감리파 에피스코팔리안 교회라는 다소 길고 엉뚱한 이름을 가진 교파이다. 그 후 교회제도와 교리문제로 몇 차례 분열되었다. 미국 감리교회는 1784년 웨슬리 가 파견한 선교사 코크가 세웠다. 남북전쟁으로 남북 감리교로 분열되었다가 다시 합동하여 연합 감리회를 이루었다. 우리나라에는 1884년 미국 북 감리교회의 일본주재 선교사 맥레이가 와서 세웠다.
5) 침례교회 - 1609년 존 스미스가 영국 성공회에서 분리하여 세웠으며, 미국에서 는 1639년 영국에서 이주해 간 로저 윌리엄스가 설립하였다. 이 교는 세례를 행할 때 물 속에 몸을 잠김(浸禮)으로 하는데서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최초의 침 례교회는 1639년 영국에서 이주해 간 침례교인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우리나라는 미국 북침례 교회에서 1894년에 시작했으나, 본격적으로 1949년 미국 남침례교회 에서 선교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6) 제 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안식교] - 침례교에서 파문당한 미국인 밀러(1782∼ 1849년)가 예수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재림교회를 세웠다. 밀러의 재림시기(1844.10. 22)의 예언이 빗나가자, 그 원인 분석의 차이에 따라 6개의 분파가 생겼다. 그 중에 에디슨과 화이트 부부가 1860년 제7일 안식일 교회를 세웠고, 1863년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로 공식 조직을 갖추었다. 이 교는 유대인의 안식일[토요일]을 예배일로 지키며 철저한 금욕과 지상 천년왕국 설을 주장한다.
7) 성결교회 - 한국 성결교회의 모체는 동양선교회인데, 이는 1901년 미국인 카우프 만이 일본에서 창설했다. 감리교 창설자 웨슬레의 정신을 따르며, 선교회로 유지되 다가 1907년 한국 선교를 시작하면서 독립된 교파를 이루었다. 1962년 후 두 교단으 로 분열되었다.
8) 여호와의 증인 - 1872년 미국에서 러셀이 만국 성서 연구회를 발족하였는데 1931 년 2대 교주 러더포드가 여호와의 증인(이사 43,10 인용)으로 불렀다. 기존 교회와 사회 질서를 철저히 부정하며 가톨릭을 공격, 비방하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거부하며 그리스도를 미카엘 천사처럼 본다. 왕국회관 집 회소를 중심으로 전도한다. 문서를 통한 전도를 강조하며 파수대(Watch Tower), 깨어 라(A Wake)등 간행물을 발행한다. 주로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소외되고 불만이 많은 계층을 대상으로 전교한다. 우리나라는 1912년에 전도가 시작되었고 만국 성서 연구 회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조직을 했다. 1957년 워치타워 성서 책자 협회를 설치하여,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병역기피, 수혈 거부, 학교 교육 거부 등으로 사회적으로 많은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9) 모든 개신교파의 공통점은 성서 유일 규범주의와 성서 자유 해석주의를 원칙 으로 한다.
20세기에 있어서도 5세기 때나 마찬가지로 줄기를 떠난 가지는 시들어 죽는다. 개신교가 자모(慈母)이신 성교회를 배반한 이후 그들 내부에서 쉴 새 없이 분 열을 거듭하고 있는 꼴은 제도가 시들어 감이요 신조가 죽어가는 과정일 따 름이다. 개신교를 창설한 자들이 이제 부활한다면 자신들이 세운 신조도, 자기 의 후손도 지금의 세상에서는 찾아 얻을 자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아래의 표는 비가톨릭 측, 주로 ’미국 정부 종교 조사서(United States Religious Census)’와 ’브리태니커 백과 사전’에 나타난 모모한 개신교의 창설자 이름과 창설 된 장소와 날짜의 열람표이다.
이처럼 프로테스탄트의 모든 교파는 모두 1500년 이후에 창립되었다.
그러므로 사도 전래의 교회가 되려면 천 6백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다.16세기 이전에는 장로 교회도 없었고, 안식 교회도 성결교회도 구세군도 없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비록 가견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았 으나 불가견적으로 각 시대를 통하여 존재하였다."라고 한다. 이는 문자 그대로 공허한 억지이다. 이들은 아무 말이나 늘어 놓기만 하면 ’역사’로 인정되는 줄 아는 듯하다.
그 뿐 아니라 주께서 에언하시기를 교회는 산 위에 있는 마을처럼 항상 모든 이가 다 함께 볼 것이며, 그 성직자들은 구원의 진리를 밝은 데에서 설교하여 모든 이가 다 함께 들으리라고 하셨다.(마태 5,14-15:10,27 참조)
"또 여러 시대를 걸쳐 가톨릭 교회에서 갈려 나간 여러 교파는 신앙으로 연결 되어 있었다"라고 강변하여도 그것은 아무 유리한 말이 못 된다. 참된 교회는 반드시 신조가 일치해야 하는데 갈려 나간 교파들은 상반되는 이설(異說)을 제 각기 주창하였을 뿐 아니라,도덕에 어긋나는 사설(邪說)까지 퍼뜨렸다. 이런 종 파에 자기 파를 연계시킴은 오히려 불명예스러운 졸책임을 깨달아야 한다.
가톨릭 교회는 사도로부터 직접 전래한 교회이므로 가톨릭 교회의 어떤 주교 나 신부든 그 서품된 계보를 사도에게까지 쉽게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각 세기를 통하여 정연한 계보를 밟아 올라가면 최후에는 그리스도의 대리 자요, 최초의 교황인 베드로 사도에게 도달한다. 베드로 사도는 통치권을 직접 주 예수께로부터 받았다.
4,5세기에 이미 벌써 이단이 생겼으므로 그때의 교부들은 다만 그의 ’사도 전 래 여부’로 그 진가를 규정하여야 한다고 말하였다. 성 이레네오와 테르툴리아 노와 성 아우구스티누스 등은 그때까지 계승한 로마 주교의 연대순 (열명표)을 만들어 가톨릭교회의 정통을 표시하였다.
테르툴리아노는 이단파에 대하여 말하기를 "저들로 하여금 교회의 기원을 밝 히게 하라. 또 저들로 하여금 주교의 교권을 받은 내력을 명백히 하여 주교들이 사도들에게서나 혹은 그 계승자들에게서 서품 임명된 사실이 있는가를 증명하 게 하라" 라고 하였다.( Lib. de Praescrip.,c.32)
5세기 교부들은 그때까지 계승된 50여 위의 교황 역대표로 갈라져 나간 교파 에 대한 유력한 논박의 무기를 삼았다. 하물며 오늘날 그 다섯배 이상의 수에 이르는 일련의 교황 전승을 보는 우리에게 있어서의 놀라운 사실이 그 얼마나 유력한 무기가 되겠는가.
우리는 가톨릭 교회에서 갈라져 나간 모든 프로테스탄트 형제들에게 성 아우 구스티누스(354-430)가 일찍이 ’도나티스트’ 이단에게 한 말을 되풀이함으로써 글을 맺으려 한다.
"형제들아, 원 줄기에 붙기를 원하거든 우리에게로 오라. 우리는 형제들이 원 줄기에서 잘려 나간 것을 보기가 안타깝다.교부들이 편성한 이 계보에서 성 베 드로 (제 1대 교황)로부터 계승된 교황의 수를 세어보고 또 어떻게 그들이 계승 되었는가를 상세히 고찰하라. 이것이 곧 오만 횡포한 지옥문도 쳐이기지 못하는 반석이다."(Psal. contra part Donati).
갈현동에서
catholic knight 안젤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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