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 주님의 뜻대로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와 교황'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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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성훈 | 작성일1999-08-29 | 조회수592 | 추천수1 | 신고 |
[2] 주님의 뜻대로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와 교황’
■ 주님의 뜻대로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와 교황’
얼마 전에 교수들과 환담하는 자리에서 교황의 방한 이야기가 나오고, 그러면서 로마 베드로 대성당과 그 광장의 웅장한 이야기까지 나왔다.
이때 한 교수가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신부님, 베드로 광장에서 오벨리스크를 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필자는 그 교수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즉시 알아들었다. 오벨리스크를 옮겨 오고 세우기에 이른 어떤 정복자의 좋지 않은 모습을 상상하 고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이 질문에 필자는 뭔가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불 쑥 이렇게 응답했다. "원래 천주교회는 돌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돌과 인연이 깊 고, 그래서 돌 수집을 좋아한답니다."
이 대답이 그 교수에게 만족을 주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쨌든 가톨릭 교회 가 큰 돌, 즉 반석 위에 세워짐으로써 돌에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돌에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은 결코 가톨릭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미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돌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오늘에 전해지는 무수한 비석, 오벨리스크, 피라밋, 돌멘, 선돌 등이 그것을 증 명해주고 있다. 그것들은 기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채 어떤 신성함을 나타내고 있 다.
우리 나라의 고인돌 같은 것과 무덤과 연결되어 일종의 성성(聖性)을 지니고 있 다고 말할 수 있다.
성서의 백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우상숭배에 대한 투쟁의 일 환으로 높은 곳에 세워진 제단을 파괴하여 마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야훼만 을 참된 바위로 믿었기 때문이다.
"내 바위시여, 내 성채시여, 내 피난처이신 우리 야훼님, 당신이 아니고서는 누가 내 바위오니까... 내 몸을 막아주는 큰 바위, 나를 살리는 굳은 성채되 소서. 내 바위 내 성채는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시편18,27,30,70,77,80,93).
신약시대에 와서 나자렛의 예수는 구약에서 오직 야훼에게 주어졌던 특권을 자신의 것으로 주장하게 되었다. 베드로 사도는 유태인 법원에서 의원들에게 "예수는 집짓는 사람들, 곧 여러분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 신 분입니다"(사도4,11)고 하며 그들의 죄를 정면으로 공격했다. 실제로 신약은 구약의 완성이다. 이집트에서 나와 약속된 복지로 가는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물이 없다고 불평했을 때 모세는 지팡이로 바위를 쳐서 물을 강물처럼 흐르게 했었다. 바울로 사도는 이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그들은 그들의 동반자인 영적 바위에서 나오는 물을 마셨다는 말입니다. 그 바위는 곧 그리스도였습니다" (1고린10,4).
이런 근거에서 그리스도는 시몬에게 "너는 베드로(반석)이다. 나는 이 반석 위 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을 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리스도는 자신이 바위였 기 때문에 바위로서의 모퉁이 돌의 특성을 시몬에게 부여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베드로에게 주어진 이 권한은 결코 베드로의 덕행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약하고 죄인인 베드로를 지탱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힘임을 명백 히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스도의 수난 때 세 번이나 배신한 베드로에게 그리스도 는 벌을 주기는 고사하고 그의 허약에도 불구하고 그가 맡은 임무를 이행할 수 있 도록 그에게 도움을 줄 것을 약속했다.
이제 용서받은 베드로는 진정한 참회자로서 겸허하게 이행할 수 있었다.
로마의 베드로 대성전을 참배하는 사람은 대성전 안의 소위 베드로의 무덤 위 둥 근 지붕 밑의 처마에 라틴어 대문자로 새겨진 비문같은 것을 쉽게 발견할 것이다.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이것은 마태오 복음 16장 18절의 인용이었다.
이로써 베드로에게 특별한 직책이 위임되었다. 그후 복음의 이 구절은 가톨릭 교황 신자들의 확신의 근거가 되었고 오늘에 있어서도 그것은 가톨릭 교회를 위 해 근본적으로 기초적인 복음으로 남는다.
베드로에게 위임된 직책은 그의 후계자들에게 이어져 오늘에 이른다. 이리하여 베드로란 이름은 고유명사인 동시에 보통명사가 되어 버렸다. 고(故) 교황 바 오로 6세는 1969년 6월 10일 제네바의 세계교회 협의회 본부를 방문했을 때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나는 바오로라고 불리우며 이름은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로부터 카롤 보이티야에 이르는 2천년의 교황직의 역사는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는 묵상의 대상이 되고 역사가에게는 숙고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교 황직은 세계사에서 가장 오랜 제도이다. 이러한 지속성은 가톨릭 교회와 교황 직을 반대하는 사람에게까지 놀라운 역사적 사실로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위정자들이 그것을 본보기로 삼으려 했다는 우스운 이야기가 전 해진다. 히틀러는 교회와 교황의 제도에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자신의 후계자를 위해 그와 비슷한 제도를 구상했었다고 한다. 무솔리니도 그의 파시즘 정권을 지속시키기 위해 가톨릭 교회와 교황직을 모델로 삼으려 했다는 것이다. 그들 은 필히 교황직이 인간이 만든 제도로 잘못 알았고, 하느님의 도움에 의해 그 와 같은 기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바로 이 점이 중대한 것이고 그래서 신앙인에게 묵상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신앙인에게 감명을 주는 것은 시간 안에 뿌려진 영원한 싹의 동일한 발전이다.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지옥문도 쳐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간 반대나 방해가 끊이지 않았다. 교회 밖에서 뿐만 아니라 교 회 안에서도 반박이 있었다. 때로는 크고 작은 스캔들도 있었다. 그러나 2천년의 영고성쇠를 거치면서 교황직은 베드로에 대한 그리스도의 약속을 확신하는 신도들 의 신뢰를 배신한 적이 없다. 이런 확신을 암브로시오 성인은 이렇게 간결하게 표현했다. "베드로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 그렇다. 교황은 동시에 교회로 불 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변천하는 동안 십자가는 여전히 서 있다." 이것은 박해시대에 유래하는 값진 격언이다. 베드로 대성전 광장의 오벨리스크는 바로 이 격언을 상징하고자 서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단순한 오벨리스크가 아니다. 왜냐하면 오벨리스크 위에 십자가가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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