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개신교 신자에게 답변을 해주고 싶은데....????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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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병고 | 작성일1999-09-27 | 조회수514 | 추천수1 | 신고 |
글이 좀 많습니다. 글의 내용을 간추릴 수 가 없어서요. 끝까지 자세히 읽으시고 답변 부탁 드립니다.
이런 질문들을 받으면 어떻게 답변을 해야하죠?
개신교 신자분께서 제가 게시판에 올린 ’박도식 신부님의 천주교와 개신교’를 읽으시고 아래의 질문을 올리 셨더군요.
다음 글은 천주교의 최다니엘님에게 보낸 메일 내용입니다. 다행히 김다니엘님 역시 동일한 글을 올렸기에 그 내요을 다시 한번 올립니다. 시간 나면 답장해주시기를 빕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현재 대학원에 다니는 형제입니다. 먼저 세계 종교자료실에서 김다니엘님이 올리신 글을 잘 보았습니다. 여전히 타락한 세상에서 한명이라도 더 구원하여 이땅에서 주님의 몸을 건축하고자 노력하시는 형제님의 분투에 분명 주님은 그날에 마땅한 상급을 내리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저 역시 카톨릭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일하게 마리아에 대한 존경과 숭배(표현이 적절한가요?)에 대해 떨쳐버릴수 없는 의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형제님이 올리신 글을 통해서 어느 정도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한 것을 느낍니다.
첫째, 형제님은 마리아의 존경에 대해서 그분은 주 예수님의 어머니이므로 당연히 존경과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분명히 성경에 근거할 때 마리아는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이십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분을 잉태하시는 과정부터 그 출산까지 성경은 마리아가 하나님께 매우 충실한 종이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밝혀 둘 것은 성경에서 하나님은 마리아에게 그런 존경과 경의를 표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존경과 경의를 표할 수는 있지요.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 인간적인 관점에서 생각된 것입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읽지 못하십니까? 형제님이 예로 드신 박신부님의 어머니는 박신부님으로 인해 존경과 경의를 받는다고 하셨는데 너무 사람의 생각 아닙니까? 그렇다고 하면 왜,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들에게는 존경과 경의를 표하지 않습니까? 성경에서 그들에 관한 특별한 내용이 없으니까 그런 것입니까?
둘째, 마리아상앞에서 기도하는 것에 대한 형제님의 예화는 너무나 수준이 낮을 뿐 아니라 유치합니다. 성모송이라는 카톨릭의 기도문을 예로 드셨더군요. 더군다나 마리아께 기도하면 그 효과가 커진다고요? 말도 안돼는 소리입니다. 이 얼마나 비성경적인 것입니까? 형제님이 예로 드신 성경구절(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사건)은 적절하지 못합니다. 사도행전을 보십시오. 베드로와 바울을 보십시오. 언제 그들이 마리아께 기도했습니까? 초대교회에서 언제 그들이 마리아를 찾았습니까? 오순절 성령의 운행하실 그 때에 모인 200여명의 그들이 그리스도를 찾았습니까? 서신서들을 보십시오. 바울의 편지에 언제 마리아가 언급되었으며, 처음과 시작 축복과 평강을 비는 구절에 마리아가 있습니까? 베드로 서신을 보십시오. 요한 서신을 보십시오. 적어도 제가 알기로는 마리아는 기껏해야 사도행전까지 밖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성경전체에서 그녀는 과연 몇회나 등장합니까? 그리고 얼마나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까?
세째, 형제님께서는 마리아가 하나님에 의해서 특별히 간택되고 인류의 귀감으로 복된 분이 되셨다고 하시는데.... 그럼 하나 묻겠습니다. 왜 예수님의 육친의 어머니로 마리아가 선택되었습니까? 믿음이 강한 충실한 하나님의 종이라서요? 물론 그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당시에 마리아의 믿음이 가장 강했을까요? 더 강한 충실된 처녀 종이 없었을까요? 먼저 아실 것은 마리아는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요셉역시 다윗의 자손입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과 또 한명(갑자기 이름이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이 있었죠. 계보를 보십시오. 아담부터 시작하여 쭈욱 하나의 대로 이어져 오다가 이새를 지나 다윗에 이르면 드디어 두 갈래로 나뉘어 집니다. 그리고 솔로몬 후손으로 주욱 가면 결국 마리아가 이르고 솔로몬 형제의 후손으로 주욱 가면 결국은 요셉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 두 후손은 다시 합쳐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아래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하지요. 물론 마리아는 동정녀 상태에서 성령으로 임신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신 후 시작된 인류의 계보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다시 하나가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리아를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로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님과 동시에 믿음이 강한 자매로서 생각할 수는 있지만 결코 오늘날의 카톨릭에서 행해지는 것과는 별개라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외에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로 순서상으로 나열하라면 전 바울을 꼽겠습니다. 바울! 사도행전에 보면 그는 큰 기적을 일으켜 결국 그 지역 주민으로부터 신(god)이라고 경배받을 뻔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을 극구 부인하고 도망하듯이 뛰쳐나왔습니다. 마리아가 교회를 세웠습니까? 마리아는 단순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안배에 의해서 예수님을 출산한 것 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후, 요한복음에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세번 당부하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내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그 양들이 누구입니까? 설마 박신부님은 그 양 중에 한마리가 자신임을 부인하지 않으시겠죠? 그럼 인간적인 논리로 생각할 때 만일 마리아와 베드로가 있다면 우리는 누구를 더 경배해야 합니까? 당연히 베드로 아닙니까? 주님이 우리를 (당시에) 베드로에게 맡겼으니까요. 주님이 언제 마리아에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까? 주님이 죽으실 때 분명 어머니 마리아는 그 앞에서 우셨죠. 그러나 부활 시에 그 어머니 마리아는 어디에 계셨습니까? 무덤으로 달려온 마리아는 다른 마리아입니다. 부활 후 주님이 어머니 마리아를 만났다는 성경구절이 있습니까? 주님은 열두 제자(사실 열한 제자)를 만났죠. 부활 후 이 땅에서 40일간 주님은 결코 마리아를 만나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마리아를 통해서 기도가 더 큰 효력을 발휘한다면 어찌하여 주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마리아를 통해 기도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분명 더 큰 효력을 발휘 할 텐데 말이죠. 주님이 마태복음에서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한 그 기도(소위 주기도문이라고들 하죠)에 왜 마리아가 언급되지 않습니까? 요한복음 17장의 그 긴 장문의 기도에 어이해 주님은 마리아를 언급하지 않았습니까? 그분의 승천 후 사도행전 이후의 계시록까지의 모든 기록을 휁?어 보건데, 열두 사도와 바울 사도는 결코 마리아를 찾지 않았습니다.
박신부님, 아시겠습니까? 마리아는 분명 충성된 그분의 종이며 동시에 주님의 육신의 어머니이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피로 구속받고 그분의 생명으로 거듭난 우리 형제 자매들과 비교할 때 마리아는 결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와 동일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일 뿐입니다. 무의식중으로 마리아를 그리스도의 신격과 동등히 여기지 마십시오. 신부님이야 그렇지 않을지 몰라도 제가 아는 모든 카톨릭인들은 은연중 그리스도보다 마리아를 더 찾습니다. 이것은 분명 두렵고 무섭습니다. 그리고 만일 카톨릭인들이 계속 마리아를 오늘날과 같이 계속 대한다면,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임할 그 큰 화를 카톨릭 신부들은 담당해야 할 것입니다.
형제님의 답장을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또 아래의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마리아를 존경하는 문제 마리아가 특별한 인물이라는 것은 성경에도 나옵니다. 루가 복음에 보면 은총이 가득하신 마라아여....... 모든 여인 중에 복되신 여인이여........ 마리아를 존경하는 문제는 모든 사람들의 어머니와 같습니다. Watchman 님께서도 어머니가 계시지 않습니까? 마리아는 예수를 낳아준 하나의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면 모든 어머니는 아기를 낳는 기계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아담과 하와 같이 흙으로 빚어서 만드는 방법이 있었는데 굳이 마리아를 택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문제 Watchman 님께서는 마리아께 직접 기도하는 것으로 아시고 계시는 것 같네요. 하지만 마리아에게 직접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고 마리아께 우리의 기도를 예수님께 말해달라고 부탁 드리는 것입니다. Watchman 님께서 말씀 하셨듯이 마리아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직접 들어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 기도 할 때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하고 기도를 하지만 마리아께 부탁을 청하는 기도는 "마리아여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라고 기도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아래의 질문을 개시판에 올렸더군요.
최다니엘님 보십시오. 형제님의 즉각적인 응답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현재 여기서 논의하는 것이 무엇이든간에 이러한 논의에 주님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다니엘형제님이 올리신 글 잘 보았습니다. 형제님의 글을 읽으면서 형제님은 제가 올린 글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답변을 얻지 못한 것 같아서 다시 한번 글을 올립니다.
형제님은 크게 두 가지면에서 답변하셨습니다. "첫째는 마리아는 존경스러운, 그리고 존경받을 만한 여인이다. 둘째는 마리아에게 직접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를 통해서 (마리아의 도움으로) 주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저는 마리아를 존경스럽지 않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이기 전에 그 믿음생활과 경건함으로 인해 충분히 존경을 받을 만한 여인이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대로 루가복음 (The Gospel written by Luke)에 보면 마리아의 깊은 신앙심에 대해 자세히 나옵니다. 그러나 형제님, 단지 그것뿐입니다. 성경에서 하느님께 크게 쓰임받은 인물 중 과연 존경스럽지 않은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물론 주 예수님은 마리아의 아들입니다. (또한 분명 하느님의 아들이고요) 그러나 그것이 도대체 어쨌다는 것입니까? 아시잖습니까. 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후 생명주는 영(Life-giving Spirit ; 1 Corinth 15:45)이 되었습니다. 그 분은 이제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분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John’s Gospel 20:22)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Receive the Holy Spirit)"이라고 말씀하시며 생명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이제 주님과 우리는 단순히 주종(Lord-Slave)만의 관계만이 아니라 형제의 관계(히브리서 2:11-12, Hebrews 2:11-12)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제자들 뿐만 아니라 그 후로 지금까지 주님을 영접한 자들 모두 (우리를 포함해서) 형제(자매)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높은 자나 낮은 자가 없습니다. 모두 다 한 분깃(One portion)만을 가지고 있는 모두 동일한 자입니다. 여기에는 바울의 높음도 없고 베드로의 높음도 없습니다. 창녀였다가 후에 자매가 된 자의 낮음도 없습니다. 동일하게 마리아의 높음도 없습니다. 마리아는 분명 주님의 어머니 였지만 현재 그녀는 우리와 동일한 주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한 명의 지체인 자매일 뿐입니다. 마리아 역시 주님의 뜻을 잘 알고 계신 분이었므로 자신이 카톨릭 신자들에 의해서 그렇게 높혀져 존경받고 있음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둘째는 형제님이 하신 말씀중 참으로 안타까운 부분에 관한 것입니다. 형제님이 그러셨죠. "하느님이 예수님을 아담과 하와와 같이 흙으로 빚을 수 있었을텐데 왜 마리아에게서 나게 하셨나"라구요. 저는 형제님이 카톨릭 사제인지 혹은 신부님인지 모릅니다. 아니면 단순한 신자일 수도 있구요. 한가지 묻겠습니다. 예수님이 누굽니까? 물론 마리아의 아들입니다. 또한 물론 하느님의 아들이죠. 그러나 또한 하느님 자신입니다. 만일 형제님이 예수님이 하느님 자신임을 부인한다면 더 이상 형제님과 교제할 필요는 없습니다. 누구든지 주 예수님이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부인한다면 그는 분명한 이단이니까요. 물론 형제님은 그러지 않겠지요. 그러면 도대체 왜 위와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까? 예수님 자신이 하느님인데 어째서 흙으로 빚을 수 있겠습니까? 왜 예수님이 마리아에게서 났느냐구요? 결국 이 말은 "왜 하느님이 마리아의 태속에 들어가셔서 사람으로 나셔야 했느냐?"라는 말과 동격입니다. 하느님이 친히 마리아의 태속에 들어가셔서 사람-예수로 나신 이유는 그분이 영원전부터 (Before eternity) 계획하고 계신 영원한 갈망-경륜을 성취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부분은 너무 길므로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님이 던진 질문은 그 안에 참으로 무서운 관념이 내재해 있습니다. 형제님 자신이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다음은 형제님이 던진 두번째 답변에 관한 것입니다. 마리아의 도움으로 기도한다.... 어떻게 보면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틀린 말입니다. 주 예수님은 하느님입니다. 그분은 전능하시며 어느 곳에나 계시고 시공을 초월하여 계십니다. 그분은 사람의 모든 생각을 읽을 수 있으며 우리가 이미 기도하기 전에 우리가 무엇을 기도할 바를 모두 알고 계시고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생각과 관념 영역 밖에서 이미 우리를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럼 도대체 왜 마리아의 도움이 필요합니까? 우리는 모두 직접적으로 주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요, 또한 우리가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요, 자녀요, 형제요, 사랑스런 배필입니다. 그분은 우리와 매우 친밀하면서 개인적이고 사랑스런 연인과의 관계를 갖고 계십니다. 그분과 믿은 우리들과의 사랑은 달콤한 우주적인 로맨스입니다. 그런데 왜 마리아가 그 틈새에 들어와야 합니까? 도대체 마리아는 현재 어디에 있길래 우리의 기도에 관계해야 합니까? 계시록(John’s Revelation 8:3)에 보면 성도들의 기도가 보좌앞에까지 올라간다고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느님이 앉아 계신 보좌 앞에까지 올라가는데 도대체 마리아의 도움이 왜 필요합니까? 사람의 생각으로는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으로 성경에 나타난 사실을 대치한다면 이 역시 무섭고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의 기도가 마리아의 도움이 아닌 그영(the Spirit)의 간구하심이 필요함을 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26-27을 보면 "이와 같이 성령(원문은 그영)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그 영)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interceding)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그영)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그영)이 하느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Moreover, in like manner the Spirit also joins in to help us in our weakness, for we do not know for what we should pray as is fitting, but the Spirit Himself intercedes for us with groanings which cannot be uttered. But He who searches the hearts know what the mind of the Spirit is, because He intercedes for the saints according to God)
그러므로 형제님이 주장하는 것은 비성경적일뿐만 아니라 극히 인간적인 발상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제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저는 카톨릭에서 왜 마리아에 대해 그러한 견지를 가지고 있는지 그 역사적 근원과 유래를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형제님도 카톨릭의 역사에 대해서 약간의 지식이라도 가지고 계신다면 알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 역사적 근원에 비추어 볼 때 카톨릭에서 행해지고 있는 마리아에 대한 태도는 합당하지 못합니다.
부디 주님이 형제님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합니다. 세상이 망한다해도 당장 우주가 멸망한다해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하느님의 왕국이 있습니다. 이 왕국은 하느님의 "의(righteousness)"에 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의"는 하느님 자신의 감동(호흡)하심으로 쓰신 (2 Timothy 3:16)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즉, 성경에 쓰인 하느님의 말씀은 이 우주를 지탱케 하는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일점일획도 더하거나 빼면 하느님의 재앙들이 미칠 것이며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John’s Revelation 20:18-19).
그러므로 형제님, 다시 한번 간구합니다. 사람의 생각에서 벗어나 성경에 나타난 주님의 뜻을 파악하십시오.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형제님께 있기를 기도합니다.
------------포항에서 Wachman 형제가.
그래서 저는 아래의 글을 올렸습니다.
그럼 성모님의 기적은 아시는지요? 나주성모님의 기적을 아시는지 모르겠군요? 나주성모님의 기적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외국에서도 신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교황성화 께서도 찾아 오셨었구요. 성모님게서는 윤율리아에게 매세지를 주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한국 나주에서 율리아 자매를 통하여 1985년 7월 18일부터 1999년 5월 8일까지 147회에 걸쳐 사랑의 메시지 말씀을 주셨는데 메시지 주요 내용은 주로 세계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치라는 말씀과 병든 가정이 서로 사랑하여 성가정을 이루라는 말씀, 그리고 ’낙태는 살인이다,’ 낙태로 인한 인간 존엄성을 박탈시킨 무자비한 그 잔인함에 대한 말씀, 고해성사와 성체의 중요성, 모령성체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능욕과 모독, 배은망덕을 기워 갚기 위하여 성시간을 지킬 것과 성체 조배를 자주 하여 주님을 위로해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 주신 말씀에 따라서 생활 개선을 하지 못하고 마귀와 함께 할 때 다가올 하느님의 징벌에 대하여 경고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자녀들아! 하늘의 불이 너희들 위에 떨어져서야 되겠느냐? 기도하고 또 기도하여라. 지금 이 시기는 온 인류에게 아주 중대하다. 그 많은 재난에 대한 구제책을 강구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 세상 죄악의 정도가 극도에 달했기에 회개하지 않으면 안된다. 내가 주는 사랑의 메시지에 응답하여 온전히 나를 따를 때 초토 위에서라도 새싹이 돋아날 것이며, 또 그 폐허 위에 내 사랑은 불타오를 것이고, 하느님의 진노의 잔 대신에 축복의 잔이 내려지리라."
(1991년 3월 10일 성모님 메시지 중에서)
성모님이 말씀하신다.
"슬프다. 나의 피땀과 눈물을 보고도 물방울이라 하며 못 믿는다. 너희들이 전하여라." "내 아들 예수의 찢어진 심장을 아느냐?" 인간의 죄악이 점점 많아져 혼란스러울 때 심장은 계속 찢기고 있다. 너희들이 기워드려라." "전쟁을 막고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장미 향기를 온 세상에 풍기도록 하여라. 그것은 바로 무기이다." "무절제한 산아제한으로 나의 가슴은 몹시 아프다. 낙태수술을 막고 그들(낙태를 자행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 하여라." "나의 성심에서 타오르는 사랑의 불꽃을 전하여라. 사랑의 불꽃을..."
"너희들이 행복하기를 원한다.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고 너희들을 짝지어 주었건만 서로 불신하고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함으로써 내 아들의 마음을 몹시 아프게 하고 있다. 서로 서로 사랑하여라.
가장 가까운 이웃이 누구냐? 가정 안에서의 사랑도 못하면서 어찌 나를 사랑한다고 하며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여 가정성화를 이루도록 하여라. 바로 그것이 내 아들 예수가 갈급하게 원하는 것이다." "봉사자들의 일치를 이루도록 하여라. 그래서 희생제물이 되어다오. 나와 예수를 위하여 일하는 모든 자녀들이 흩어져 있구나. 성부, 성자, 성신이 하나인 것처럼 너희도 하나가 되어 겸손하게 일치하여 모범이 되도록 하여라."
(1985년 7월 18일 성모님 메시지 중에서)
아래의 홈 페이지는 나주성모님의 기적에 대해서 나온 것들 입니다. http://user.chollian.net/~najumary/intro.html http://sh.hanarotel.co.kr/~naju/ http://myhome.netsgo.com/hanpat/default.htm
한번 찾아가 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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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분이 이런 글을 올렸어요.
답변;
다니엘님 보십시오. 형제님이 올리신 글 잘 보았습니다.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주님의 이름이 입안에서 맴돕니다. 그러나 이제 형제님과 좀 더 깊은 부분에서 교통(fellowship)해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형제님의 올리신 글을 읽으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형제님의 글은 제가 올렸던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의 논의가 주로 ’마리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은 사실입니다. 즉, 형제님과 저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마리아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저를 저 세상에 퍼져있는 어리석은 기독교인들 중의 하나라고 보지 마시길 부탁합니다. 마틴 루터에 의해 개혁된 우리의 교회가 다시 타락과 하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기독교의 정체됨과, 비성경적인 행위들, 그리고 세상과의 연합으로 말미암음인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제가 여기서 무엇인가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기독교 옹호론이 아닌 무엇이 참된 교회인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형제님은 교회보다 성당이란 말을 사용하는 줄 알고 있으나 그 역시 주님은 교회를 세웠지 결코 성당을 세우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만일 성당이 교회와 같은 개념이라면 카톨릭 역시 제가 비판하는 범주에서 결코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물론 그 문제는 본 범주에서 벗어나므로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본 문제에 돌아가서, 저는 전에 마리아의 존경과 우리을 위해서 빌어줌이 왜 그릇되었는지 성경에 입각해서 형제님께 글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형제님은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는 답변을 하셨습니다. 형제님 역시, 성경에 입각해서 마리아가 왜 그렇게도 우리 믿는이들 사이에서 관심과 초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를 제시했어야 했습니다.
이런 안타까움을 전제로 하여 형제님이 올리신 글에 답변코저 합니다.
첫째, 마리아의 현현이라는 사실로 인해 형제님은 마리아의 중요성을 입증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호흡으로 말씀하신 성경에 비추어 볼때 신약안에 사는 우리에게 무슨 영적존재가 나타나 계시를 준다는 것은 그렇게 사실적이지 못합니다. 물론 예외적인 존재가 있을수도 있겠지요. (예를 들면 신약에서 사도바울이 사울일 때 다메섹 (다마스쿠스)에 가는 길에서 주님이 직접 하늘에서 나타나신 점 등).
주로 구약에서는 하나님(하느님) 자신이 인간에게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많은 성경적 예가 있습니다. 굳이 아담, 에노스, 에녹 시대를 제외하고서라도, 아브라함 때, 하나님은 직접 사람으로 오셔 아브라함과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또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함락할 때도 하나님이 천사로 나타나셨습니다. 참, 모세 때도 하나님이 광야에서 가시나무떨기에서 타오르는 불로 나타나셨죠. 이 밖에도 많습니다.
이런 하나님이 신약에 가서는 다른 방식을 택했습니다. 자신이 직접 사람이 되신 것이죠. 성경과 우리는 그를 예수라 부릅니다. 그는 비록 사람이었지만 또한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는 완전한 하나님이요 온전한 사람 (Complete God and perfect man)이었습니다. 그분은 33년반의 인생을 사시고 죽고 부활하셔서 생명주는 영(Life-giving Spirit)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단지 사람안에 계신 하나님만이 아니라 생명주는, 공기같은 영(Pnuematic Spirit) 이 되어서 믿는이들의 영(spirit)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에서는 누구든지 ’주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 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제 주 그리스도는 우리안에 각각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안에 내적 기름부음을 통해서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안에서부터 말씀하십니다.
제가 이렇게 장황하게 나열하는 것은 혹 형제님이 잘 모르실까 하는 점이고 혹, 아시더라도 환기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에서는 어떤 영적 존재가 직접 나타나 우리에게 계시를 주는 방법이 아닌, 믿는이들 개개인의 안에서부터 말씀하시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신약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마리아가 나주에서 나타난 것은 신약의 원칙에 위배되는 일입니다. 혹, 마리아가 아닌 주님이 직접 나타나셨다면 그래도 한번 생각해보겠으나 역시 원칙에 위배되는 일입니다. 주님이 직접 세우신 원칙을 그분자신이 폐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형제님이 들으시면 내심 화가 날지 모르지만 이제 우리의 논의를 점점 결론으로 가져가기 위해서 말합니다. 점점 주님의 재림의 날이 가까와 지고 있음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바요, 또한 간절히 기다리는 바입니다. (Oh, Come Lord Jesus!) 비록 그 날과 그 시간은 알지 못하나 점점 그 시간이 임박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럴 때 사도요한(John)은 적그리스도(anti-christ)를 말하면서 그 날이 가까울수록 권능을 행할 수 있고, 귀신을 부릴 수 있는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적그리스도의 행위하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신약에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구약의 방식으로 어떤 영적 존재가 나타난다는 것은 신약의 원칙(성육신의 원칙)에 위배된다. 따라서 그런 영적존재의 출현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안에서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한1서 2장 20절>
2. 그리고 만일 실제로 나타났다면 주님 자신이어야 할 것이지 왜 마리아인가? 성경 신구약을 통털어서 하나님만이 나타나셨다. 아버지 하나님은 모두 구약에서, 아들 하나님은 신약의 사도행전에서, 영 하나님은 신약에서 나타나셨다. 물론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난 적은 있지만 이는 하나님이 영원전에 창조하신 피조물일 따름이다. 이렇듯, 신구약을 통털어서 마리아가 나타났다는 예는 어디에도 없다. 그럼, 도대체 왜 카톨릭은 ’마리아’, ’마리아’인가? 카톨릭 신자들의 주변에는 항상 마리아다. 주 예수님보다 그들은 마리아를 찾는다. 그들은 이것을 반박하지만, 이미 그들의 안에서는 이것을 시인한다.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요한1서 2장 23절>
3. 마리아는 나타나서 과연 무슨 말을 했는가?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고, 낙태를 하지 말며...... 도대체 마리아는 그렇게까지 세상을 들썩이며 나타나더니 고작 한다는 이야기가 겨우 이런 것들인가? 세상에 평화는 이미 깨어졌다. 마태복음에 보면 주님이 우리에게 온 것은 화평을 준 것이 아니라 분쟁을 주기 위함이다. 주님은 세상의 평화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을 왜 모른는가? 세상의 평화는 결국 카톨릭의 관심이지 않는가! 나 역시 세상의 평화는 관심도 없을 뿐더러 불가능하다고 본다. 세상은 이미 사탄이 점유한 곳인데 (사탄-세상의 임금; 마태복음) 어떻게 평화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참 평화는 오직 사탄을 제거해야만이 가능하고 이것은 주님의 다시오심으로 말이암아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의 평화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다시오심에 관심이 있고, 그분의 다시오심을 가져오는 그분의 표현된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에 관심이 있다. 또한 마리아는 낙태를 이야기했다고 한다. 겨우 낙태문제인가? 최근 낙태에 관해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곳은 미국과 카톨릭이 아닌가? 미국과 카톨릭의 낙태 문제 분쟁은 이미 오래된 가십거리이다. 이는 결국 카톨릭의 필요에 의해 낙태 문제를 마리아가 언급했다는 점을 우리에게 명백히 제시한다.
4. 나는 개인적으로 성경에서 그 역할이 거의 미비한 마리아가 어떻게 오늘날 처럼 카톨릭에서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근원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더 마리아라는 존재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깊은 회의를 가지고 있다. 카톨릭이 형성되면서부터 카톨릭은 여러 세상적 문화를 흡수했다. 그 중, 카톨릭은 각 나라와 민족 종교들 가운데 상당부분에 여자신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카톨릭은 마리아란 존재를 부각시켰다. 예컨대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은 카톨릭의 고유 모습이 아니라 다른 이방국가들의 민족신의 모습과 동일한 것이다.
5. 계시록에서 카톨릭은 분명 계시되고 있다. 이는 너무 민감한 문제이므로 생략한다.
저는 이럴 때 어떻게 답변을 해주어야 합니까? 도저히 어떻게 말을 할 수 가 없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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