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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답변489] 용서입니다: 고백성사 카테고리 | 천주교
작성자임용학 쪽지 캡슐 작성일1999-10-23 조회수594 추천수1 신고

† 그리스도 우리의 희망

 

고백성사!!!!   계속되는 질문과 답변이기도 합니다만 솔직히 부담스럽죠?

그래요 무슨 재판받는 기분이 돼가지고서야 이거 살맛나겠습니까?

 

하지만 헤엄을 칠 줄 모르는 애인에게 수영의 기쁜 맛을 아무리 애써 전달하려 해도 두렵기는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 믿고 풍덩 물에 뛰어 들어도 저절로 헤엄치는 사람도 있는데 말이지요.

 

첫 고백성사 보러 가실 때의 심정을 이렇게 바꾸어 보십시오 "오늘은 처음으로 그녀가 입을 맞추어도 좋다고 허락한 날이다" 아니면 "오늘은 기필코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지" 하는 기쁜 마음을 가지십시오, 또는 처음 성당을 찾았을 때의 설레는 마음으로, 아니면 처음 세례성사를 받을 때의 묘한 부-웅 뜬 것 같은 기분으로 고백성사에 임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왜냐하면 이 또한 은총의 시간이고 하느님께서 교회를 통해 구원을 약속하시는 해방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마음이 드는 것은 탈출전의 긴장감이라고나 할까요?

 

개신교에 다니셨고 또 성세성사를 받으셨으니까 고백성사에 대해서도 배우셨으리라 짐작합니다.  

성사란 본래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구원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구체적으로 ’지금,여기에’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사가 이러한 해방의 기쁨을 주지 못하고, 고백성사를 보러 임하는 신자가 기쁜 일을 눈앞에 두고 성큼성큼 나아가지 못하고, 재판장에 억지로 나가는 피고의 자세가 된다면 고백성사에 대한 이해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고백성사에 대해 짐스럽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죄책감이지 결코 신부님을 무슨 판사로 여김은 아닙니다.

 

성사는 구체적인 사건이므로 성사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항시 체험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합니다. 즉 아무리 머리로 성사의 의미를 폭넓고 깊게 이해한다 하여도 자신의 생활속에서 체험으로써 새로운 이해를 검증하지 않으면 진정한 성사의 이해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가 생활로써 구원과 해방으로서의 성사를 실제로 받아들이고 살 때 진실로 그 뜻도 알 수 있을 것이고 또 기쁨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고백성사는 용서입니다. 교회의 용서를 통한 하느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교회가 행하는 용서를 당신의 용서로서 인정하셨습니다."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려 있을 것이다"(마태 16,19;18,18) 그러나 그것이 하느님의 신비의 가치를 떨으뜨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누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가를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그것은 그리스도의 신비,하느님의 신비입니다) 역사 중에 죄의 용서가 실질적으로 구현되도록 하기 위해 교회 안에 살고 있는 우리들을 위한 성사라는 것으로 한정됩니다. 즉 교회를 통한 성사적인 화해의 장으로서 고백이 필요한 것입니다.

 

제 말씀이 좀 딱딱해져 버렸는데 사실은 이런 질문이 있을 때 기존의 신자분 (수도자,성직자를 포함)께서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해 줌으로써 은총의 길로 나아가려는 분들에게 커텐너머 은총이 잔뜩있다고 격려와 박수를 보내는 열린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참고로 아돌프 니콜라스신부 지음 "고백성사-용서"-가톨릭출판사-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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