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답변] 아래 개신교 자매님의 글에 대해 - 대화의 가능성 | 카테고리 | 천주교 | ||
---|---|---|---|---|
작성자오성훈 | 작성일1999-11-20 | 조회수1,209 | 추천수7 | 신고 |
안젤로입니다.
임진숙님의 글 잘 보았습니다. 아래 님의 글 가운데 상당 부분은 공감 할 수 있는 부분이 보이더군요. 그것은 긍정적인 것이기에 수긍이 간다 고 해야겠지요. 그러나 아직도 님의 글에서 보여지는 개신교 특유의 우월감을 보면서 못내 씁쓸하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래도 자매님의 글 가운데 보여지는 일말의 긍정적인 면들이 저를 절망에 빠뜨리지는 않았음을 위안삼아야겠지요.
님의 글은 기독교 동호회에서도 이미 보아왔고 플라자 란에 올린 토론 방의 글에서도 익히 보아왔던 터라 님의 인식에 대해 뭐라 왈가 왈부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습니다. 아래 이야기하는 글도 안 쓰고 넘어갈려고 하 다 자매님의 이야기 중 사실에 어긋나 있는 부분이 있기에 잠깐만 이야기 하고 끝내기로 하겠습니다.
제가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을 이야기했다 해서 그것을 전체 개신교인으 로 일반화시키지 말라고 하신 것은 설득력을 갖기 힘듭니다. 개신교 신 자들의 한결같은 일관된 주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의 일관된 교리 해석에 비해 개신교의 말을 들어보면 언제나 같 은 대상에 대해 보는 관점이 다르고 해석이 다르고 말하는 것 역시 다 릅니다. 종교 빼고 논리적으로만 접근해 보지요. 일관된 한 가지 주장 에 대한 그 외 다른 여러 가지 잡다한 견해의 통일성이 없음은 그 주 장들이 단순한 개인의 사적 견해일 뿐이라는 반증입니다. 이에 이의를 또 다신다면 그거야 자매님의 사견일 뿐이지요.
개신교 자체가 원래 어머니 교회인 가톨릭의 부패와 타락을 개혁하겠 다고 뛰쳐나온 것을 이제 와서 다시 또 무엇을 개혁한다는 말인가요? 저로서는 참으로 이해 안 되는 말입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이 문제 가 있으면 또 개혁을 해서 그럼 개신교에서 뛰쳐나가 새로운 개신교를 만들면 모든 것이 해결이란 말씀인가요? 그 다음에는 또 인간적인 실 수로 부패하고 타락된 모습의 교회가 되면 또 개혁해서 새 개신교회를 만들고 이게 자매님의 생각인가요?
제가 물리를 전공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매님의 그 이야기를 들으 면서 양자 역학 문제를 풀기 위해 쓰는 어림 방법- 즉 해(解)를 정확히 구할 수 없기에 쓰는- iteration(반복 계산법)이 생각나는 군요. 적분 한 값을 원래 식에 또 대입해서 또 적분하고 원래 식에 대입해서 또 적 분하고 이러한 짓을 몇 번이고 반복하여 얻어진 값을 근사값이라 하지요. 물론 계산도 너무 귀찮고 힘들어 사람 손으로는 거의 불가능하고 멍청 하고 느려터진 계산기인 수퍼 컴퓨터를 돌리는 게 일반적이지요. 그런 데 그렇게 나온 값을 참값이라고 하지는 않는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고요? 글쎄요 자매님의 말씀처럼 개신교회를 또 개 혁해서 또 새로운 교회를 만들고 하는 게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는 진정한 방법일까요? 앞서 소개한 iteration은 정확한 해(解)를 구 하는 방법을 안다면 사용할 필요가 없을 그런 방법입니다. 정확하게 계 산하는 방법이 없기에 아니 엄밀히 말해 알지 못하기에 사용하는 그야 말로 궁여지책이라는 말입니다.
자매님의 말씀대로 그리스도교의 일치를 위하는 마음이라면 생각이 앞선다고 행동을 마음대로 해서는 안됩니다. 그 결과를 지금 자매님이 나 저나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겪고 있는 이 현실을 보고서도 모 르시겠습니까?
그리고 또 저보고 근본주의자의 행태만 보고 전체 개신교의 모습으로 일반화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건 상당히 어폐가 있는 말인 거 같네요. 제가 올린 여러 편의 글들을 다시 한번 잘 보시지요.
제가 개신교 근본주의의 경향이 일부 개신교에 있는 현상이라고 쓴 글 을 보고 어느 개신교 신자분이 해 주신 친절한 말씀 가운데 개신교 거의 대부분이 그런 경향을 띠고 있다고 이야기를 해 주시기에 그렇게 이야 기하는 개신교 신자도 있고 반대로 생각하는 경우의 신자도 있음을 모 두 알고 있다는 뜻에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모두 안다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하실 것 같아 말씀드리면 저는 유 치원부터 개신교에 죽 몸담았던 골수 프로테스탄트였습니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순복음 교회, 성공회 등등, 한국의 개신교 각 종파의 대표들이라 할 교회는 대부분 나름대로 상당 기간 다녔 고 제가 근처에도 전혀 가본 적이 없는 곳이 이슬람 사원 정도이니 님의 신학이니 역사관을 모르겠거니 하고 그런 염려는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런 고로 요즘 이슬람 관련 서적을 읽는데 아주 재미있는 사실이 있더군요.
아무튼 이건 님의 이야기와는 관련이 없으니 접어두고 개신교의 정통 교 리라고 하는 것도 상당히 어폐가 있는 말입니다. 무엇이 정통인가요? 감 리교와 장로교는 그 신학적 관점이 다른데 무엇이 정통이지요? 성공회는 예배가 아니라 미사를 드리는데 성모송이 있고 성모 경당이 있고 묵주 기 도가 있는데 이것이 개신교에서 말하는 정통에 해당되나요?
참으로 아둔한 저는 모르겠습니다. 더 이상 할 말은 많지만 이것도 여 기서 접어두렵니다. 왜냐하면 저도 이제 더 이상의 논쟁으로 비치는 것 도 싫고 님의 견해가 저의 생각과 다른 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니까 요. 이것은 님의 견해가 옳아서가 아니고 가톨릭적 관용의 정신 - 내가 옳은 것을 확신하나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저보고 개신교의 신학이나 역사관에 대해 잘 모를 거라 생 각하시고 말씀하셨는지 이해가 가나 브리태니커 사전의 이야기가 논리 에 안 맞는다고 생각하셨나 보군요. 그럼 그 논리를 찾는 가장 쉬운 길 을 하나 알려 드리지요. 미국 연방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내놓는 통계 자료들이 있습니다. 미국이 워낙에 방대한 나라이고 보니 자연스레 통 계학적인 자료를 많이 요구한 관계로 별걸 다 조사해서 통계 자료로 내 놓곤 하지요. 그런데 미국 연방 정부에서 내놓는 자료 중에 보면 아주 흥미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자료의 명칭은 ’미국 연방 정부 종교 조사서(United states Religi- ous Census)’로서 이 자료는 물론 비가톨릭 측의 대표적 통계자료임을 밝 혀 둡니다. 이 자료에도 역시 브리태니커 사전에서와 마찬가지로 가톨릭 만이 그 창립자가 예수 그리스도이며 창립시기는 서기 33년으로 창립 준 거는 신약 성서로 나와 있군요.
위의 자료랑 그리스도교랑은 무관하다구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 다. 위의 자료는 그리스도교가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시작이 언제 누구로부터 비롯했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세 운 참교회는 어디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표지판일 수는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길에 세워져 있는 지도판을 보면서 내가 있는 곳과 가려 는 곳을 보고 구분하고 찾아가는 것은 각자의 능력입니다. 지도판이 하 는 역할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제가 브리태니커 사전에 그리스도교의 정의가 나와 있다고 하지도 않았고 그 사전에 나와 있기를 가톨릭 빼고 모두 다 엉터리라고 이야기한 적도 없 으며 단지 그리스도교 편을 보라고 했을 뿐입니다. 그리스도교 편이라는 것은 그 저자가 여러 개신교 각 종파와 가톨릭을 뭉텅그려 한 그리스도교 로 보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톨릭의 창립자는 예수 그리스도로 창립 시기는 33년으로 창립 준거는 신약 성서로 적어 넣은 것일까요?
오류의 일반화 현상을 아시는지요? 잘못된 것도 계속해서 반복되면 그것을 정설로 인정하게 되는 현상이지요.
예를 들면 개신교에서 말하는 여호와 하나님이란 용어가 그 대표적이 지요. 원칙은 야훼 하느님이 맞는 어휘라고 국어학자들은 말합니다. 가 톨릭이나 개신교 신학자들의 이야기 말고 국어학자들이 어법에 안 맞 는다고 하는 것이니 또 오해 마시기를 바랍니다.
미국, 영국, 독일, 스웨덴, 덴마크, 러시아, 이스라엘, 그리스 그외 여 러 비가톨릭 국가들의 관련 서적이나 정부 조사서를 인용해 보아도 역시 결론은 한가지로 동일합니다. 이런 경우 저는 그 표지판을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주관을 고집하다가는 제 길을 찾아갈 수 없음을 머리가 아닌 경험으로 알고 있는 우둔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자매님이 이야기 하신대로 기본적인 양식이 있는 개신교 신자를 만나 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길 저는 바랍니다. 그리고 참고로 저 는 개신교 신자였을 때나 지금 가톨릭 신자가 되고 나서나 개신교 신 자 각 개인의 인격에 대해 비난하거나 어떠한 편견을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반지를 사러 갔더니 그 보석상이 개신교인이더라 그래서 가 지 말아야겠다. 이런 식의 치졸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며 개신교 인과는 상종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여기지도 않습니다. 전 가톨릭 신자인 것을 자랑스러워하지만 그것이 인간을 대하는 데 있어 편견과 선입견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절친한 개신교인 친구들이 많이 있으며 그 중에는 어렸을때의 아련한 추억을 함께 나눈 좋은 친구들도 많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까지의 시절을 개신교에서 보낸 제 가 보아온 바로는 분명 올바른 개신교인들은 존재하며 그들과의 대화 역시 늘 의미있는 것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개신교인들의 그러한 좋은 면들이 언 제나 그들이 처한 잘못된 사상과 환경에 위협받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올바른 사상과 신조가 중요한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그것이 바로 올바른 행위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불교에서도 말하는 것이며 이슬람에서도 말하는 것이고 가톨릭에서는 더 말할 나 위가 없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개신교는 감정과 정서의 고취를 위해 논리적 이성의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 내부에 가지고 있는 자기 모순을 주체할 수 없기 때문에 건전한 이성과 논리적 지성이 숨쉴 틈을 주지 않습니다.
이것은 근본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미사를 인정하는 성공회, 그리스 정교, 러시아 정교, 곱트파 교회, 에티오피아 교회등에서는 이러 한 경향은 도무지 없기 때문에 그 외의 루터파를 비롯한 개신교 각 파 들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루터파 또한 그 전례가 가톨릭의 미사 랑 비슷하고 성찬에 쓰이는 빵은 가톨릭에서 가져다 쓰고 있는 것을 생각 하면 루터파가 거의 없는 우리 나라의 대부분의 개신교가 이에 해당되지요. 얼마 전 로마 교황청에서 한국의 그리스도교 현실에 대해 평하는 글이 나 와 있어 흥미있게 읽어 봤습니다. 혼돈과 무지, 이것이 한 마디로 표현한 한국 그리스도교(개신교)의 현실입니다.
저 역시 자매님의 의견처럼 일부 개신교의 잘못이 전체를 대표하지 않기를 바랍니다만 자매님이 간과하신 것은 전체 중의 일부가 아니라 사실은 거의 대부분의 교회가 그런 경향을 띠고 있으며 이것은 제 의 견이 아니라 얼마전 개신교계 내에서 자체 조사한 결과를 보니 가장 고칠 점이 많은 종교로 개신교를 꼽았더군요. 가장 본받을 만한 종교로 는 천주교를 생각하는 개신교인들이 가장 많더군요. 그러니 그러한 생 각을 가지고 있는 개신교인들의 선의를 의심하지는 않는 것이 당연하 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개신교의 교리의 잘못된 점으로 인해 언제나 피해를 보는 것 은 그 당사자인 개신교 신자들이고 그러한 피해는 그 이웃하고 있는 우리 가톨릭 신자들도 예외는 될 수 없습니다.
이웃이 잘못 되기를 바라는 것이 가톨릭의 심사이겠습니까? 가톨릭은 아무 교회라도 가지 않는 무신론자보다는 차라리 어느 교회에라도 속 해 있는 편을 더 원합니다.
이것이 가톨릭의 어머니다운 따뜻한 생각입니다. 그러나 개신교인들은 너무나 그 어머니의 속을 몰라주고 있습니다.
언제나 하는 말이 사탕발린 겸손으로 어머니 교회에 무언가 흠집을 내볼 려는 못된 심술꾸러기 같은 행동만을 보일 때 어머니는 상처 받은 마음을 내보이지 않고 묵묵히 그 못된 심술꾸러기를 타이릅니다. 이러한 어머니의 마음을 아직도 심술꾸러기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매님이 모태 신앙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계심은 참으로 존경 할 만한 일입니다. 게다가 가톨릭의 신학에 관련된 책까지 본다는 것은 더욱 훌륭한 일입니다. 물론 가톨릭의 가르치는 바가 자매님의 성정(性 情)에는 극우 보수주의로 보일지 아니면 극단의 자유주의 신학 계열로 치부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가톨릭 신자인 저로서도 가톨릭 안의 그 광범위한 신학적 흐름을 아직도 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은 님 을 비롯한 개신교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신학적 사고도 한가지 요, 신자들의 주관도 한가지요, 다양한 의견을 표출시킬 수 없게 독재적 인 강압으로 일관하는 전제 정치의 모델이 아닙니다.
가톨릭 신자의 주관이나 감정, 신학적 흐름의 여러 갈래에 대한 나름 의 생각은 그 폭이 넓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습니다. 가톨릭 안에 는 이런 신학적 개념들도 있고 또 다른 한편의 신학적 사고방식도 존 재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가톨릭이라는 한 어머니 교회의 울타리 안에 존재하는 한 가족의 다양한 성원들의 모습임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가톨릭 안의 그 여러 갈래의 신학적 흐름 가운데 유독 교회로부터 주 의를 받고 경계해야 할 것으로 낙인 찍힌 오캄의 유명론 신학을 들고 나와 새로운 교회를 만든 루터이니 그의 후예들인 자매님을 비롯한 프 로테스탄트를 보는 가톨릭의 시선은 언제나 염려와 안스러움입니다.
자매님이 가톨릭 신학 책을 보든 영성에 관한 헨리 뉴엔 신부님의 책 을 보게 되든 머더 데레사 수녀님의 어록집을 보게 되든 기억할 것은 이렇게 훌륭한 영성의 소유자인 사람들이 왜 가톨릭에서만 나왔는지 하는 점을 종교적 감정의 편린에 좌우되지 말고 냉철한 이성과 지성으 로 찾아가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설사 자매님이 회심하지는 않더라도 편견없는 이성으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면 분명 그렇게 될 것입니다.
편견없고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가 개신교에도 꼭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벙어리와 장님과는 대화할 수 없으며 그것이 하느님의 뜻도 아니
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문을 여는
것은 자신입니다."
자매님이 그 문을 열게 되기를 바라며
갈현동에서
catholic knight |
||||
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