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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답변1056]세례예식 카테고리 | 천주교
작성자임용학 쪽지 캡슐 작성일2000-11-30 조회수648 추천수0 신고

† 예수님 찬미

 

일반 신자들에게는 좀 관련없는 질문같기도 하지만 논문을 준비중이시라니 어쨌던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로마 성안셀모 전례연구소의 아우제 교수의 저서 Liturgia를 그곳에 계신 장신호 신부님께서 지금 번역을 하고 계십니다.

또 하나는 Battesimo, L’aspetto sponsale del B.로 장신부님께서 공부하신 것을 정리한 것인데 이 자료는 전례학 동호회(http://www.liturgia.org/) 자료실에서 찾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럼 주님의 은총을 빌며

 

 

-그리스도교 입교 예식-

 

그리스도교 입교는 성사적 단계들로 구성된 양성과정이다: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받은 사람들은 전례예식을 통해 예비자기간에 받아진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교 입교의 성사를 통해 암흑의 지배에서 해방되며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묻히고, 함께 부활하여, 그들을 아들로 삼으시는 성령을 받아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하느님의 백성 전체와 함께 기념하고 경축한다".

 세례성사-견진성사-성체성사는 단 하나의 성사적 총체이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입교의 세 가지 성사적 행위를 결합하는 역동성을 상징을 통해 강하게 표현하였다: 여러분은 예비기간의 시작과 함께 "곡식창고에 놓여졌고", 이 기간 전체동안 "단식과 구마예식을 통해 빻아졌고"; "세례수의 샘"으로 인도되어 "물에 적셔졌고"; 그리고 "성령의 불로 구워졌고" 결국 "주님의 빵이 되었으니, 결국 여러분은 여러분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요, 여러분인 것을 여러분은 영하게 될 것입니다". 13세기, 입교성사의 성사적 단일성이 거의 부서졌을 때, 토마스 아퀴나스는, ’세례 받은 아이가 의롭게 되고 성화 되었다면 그것은 언젠가 그 아이를 성찬의 식탁으로 인도하려는 자모이신 교회의 소망votum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성체성사는 세례성사와 견진성사에 의해 시작된 입교를 죽을 때까지 유지하면서 일생동안 반복할 수 있다는 사실로 다른 두 성사와 구별된다. 성체성사는 입교의 성사이며 또한 이미 입교한 이들의 성사이다.

 

 

1. 그리스도교 입교의 역사적 발전

 

 초세기 그리스도교 입교는 단 하나의 전례거행으로 이루어지는 세 성사의 거행을 핵심으로 가지고 점진적으로 완성되었다. 그 결과 다양한 요소들이 세 성사들 사이를 느슨하게 만들었고 심지어는 전례거행의 순서마저 바꾸어 놓는다. 그것은 아주 복잡한 역사이기에, 여기서는 더욱 본질적인 것들만 살핀다.

 

1) 사도시대

 

 신약성서가 그리스도교 입교에 대해 제공하는 정확한 자료는 아주 적다. 참되고 고유한 의미의 입교 예식서를 찾아 볼 수 없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도행전 2장에 묘사된 것으로 다음의 단계를 발견한다: 십자가형에 죽었다가 부활한 예수 안에 주어진 구원의 선포(사도 2, 22-36); 신앙에 눈 뜬 이들 편에서의 질문과 회개하라는 베드로의 답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세례, 성령의 선물의 수령(사도 2, 37-41); 사도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형제적 통교를 나누기 위해, 빵(성체성사)을 나누기 위해, 기도하기 위해 함께 모이는 공동체에 속함(사도 2, 42-48).

 사도들의 설교에 보통 회개와 성사들의 수령이 뒤따른다(참조. 사도 8, 34-38; 10, 34-48; 16, 25-34; 18, 5-8; 19, 4-6). 그리스도교 입교의 이런 구조는 에페소서 1, 13에 종합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복음 곧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어서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확인하는 표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약속하셨던 성령을 주셨습니다."

 사도시대 동안에 그리고 또한 그후 몇 세기에 걸쳐서 견진성사의 예절은 세례성사의 결론부를 형성하게 되었다. 결국 예식의 차원에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는 오늘날 서로 구별되는 것처럼 그렇게 구별되지는 않았다.

 

2) 제 2-5세기

 

 조직적이고 더욱 복잡한 예식의 형성은 속사도 시대에 시작되어 3세기에 거의 종료되었다.

 [디다케]는 ’두개의 길’에 대한 가르침을 편 후, 세례성사에 대해 말하는 데, 가르침 혹은 예비자교리와 단식에 이어지는 세례 사이의 관련을 볼 수 있다. 세례성사에 이어서 주님의 기도와 성체성사에 대해 다루는 데, 이것은 그리스도교 입교 과정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견진성사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다.

 같은 과정을 유스티노의 [호교론]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거기에 예비자 교리와 세례사이의 관계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유스티노의 묘사에서 이미 예비기간의 얼개를 찾아볼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3세기 전반 로마의 히폴리토의 [사도전승]의 증언이다. 이 문서는 15장과 21장에서 그리스도교 입교의 완전한 예식서를 제공한다. 여기서 다섯 단계를 구별할 수 있다.

 1. ’후보자 소개’와 엄격한 심사를 통한 예비기간에 등록.

 2. ’예비기간’: 통상 교리교육, 기도, 성직자나 평신도 교리교사로부터 행해지는 안수 등으로 구성되는 3년 과정.

 3. ’세례의 가까운 준비’: 찰고를 통과한 순간부터 예비자는 선발된 이electus라 불린다. 매일 거행되는 구마식을 겸한 안수가 이 시기의 특징이다.

 4. ’성사적 입교’는 여러 순간으로 구성된다: 성세성사 3일 전, 파스카 전 목요일, 선발된 이들은 목욕을 한다; 금요일에는 단식을 시작하고; 토요일에는 주교 앞에 모인다. 주교는 구마적 안수를 행하고, 얼굴에 입김을 불고, 이마와 귀와 코에 손가락으로 표시를 한다. 기도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밤을 세운다.

 파스카의 새벽에 참되고 고유한 성세예식이 거행된다. 세례 받을 사람들은 예식을 준비하면서 의복을 벗고, 주교는 기름을 축성한다(구마 성유와 감사 성유, 즉 현재의 예비자 성유와 크리스마 성유). 각 후보는 사탄을 끊어버릴 것을 선언하고, 사제는 구마 성유로 그에게 도유한다. 그리고 나서, 침수 예식으로 세례성사가 이루어지는데, 질문에 따라 삼위일체의 세 위격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면서 세 번에 걸쳐 침수가 행해진다. 세례성사 후에 새 영세자는 사제로부터 감사 성유로 도유된다. 그리고 새 영세자들은 흰옷을 입고 모여있는 공동체에게 나아간다. 거기에서 주교는 견진성사에 해당하는 예식을 거행한다: 즉, 안수, 감사 성유의 도유, 이마에 십자표시, 새 영세자와 평화의 입맞춤 등. 끝으로 새 영세자들은 모든 백성과 함께 기도하고 성체성사에 참여한다. 이 첫 번째 성찬례 참석은 한 가지 특별한 예식으로 특징 지워진다. 즉, 성체와 성혈 이외에 새 영세자들은 우유와 꿀의 혼합액을 받는데, 그것은 새 영세자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곳"(출애 3, 8)에 영구히 살기 위해 노예생활의 이집트를 버렸기 때문이다.

 5. ’신비교육’. 히폴리토는 보충교육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데, 주교는 성체성사를 모시는 모든 이에게 비밀스럽게 이것을 시행할 것이다. ’신비교육’은 바로 방금 거행된 성사나 ’신비에 대한 입문’을 의미한다.

 4-5 세기에 입교예식은 히폴리토의 묘사와 비교해 볼 때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이 시기에 교부들의 교리교육은 그리스도교 입교에 아주 큰 관심을 나타낸다.

 

3) 6세기-10세기

 

 로마 전례에 한하여 볼 때, 그리스도교 입교의 전체변천에 있어서 예식의 단계에서 또 본문의 단계에서 기초를 이루는 두 개의 중요한 문서를 만나게 된다. 이들은 550년 - 700년의 전례 실천을 반영하는 [옛 젤라시오 성사집]과 이 성사집과 밀접한 관계에 있고 7세기말의 것으로 보이는 [로마 예식서] 제 11번이다. 이 문서들에 따르면, 입교는 단 하나의 전례거행 속에 이루어지는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의 연속으로 구성된다. 세례성사는 삼위일체의 세 위격에 대한 신앙을 묻고나서 세 번의 침수예식과 함께 거행되고; 견진성사는 성령의 일곱 선물을 표현하는 기도문과 함께 행해지는 안수 그리고 도유로 거행되고; 성찬례의 거행으로 모든 것은 종결된다.

 후대의 문서들은 몇몇 첨가와 변화를 증언하면서도 대체로 반복하고 있으며, 그들의 관심이 그리스도 입교의 초기구조로부터 입교기간 전체를 단 하나의 전례거행으로 거행하는 것으로 넘어감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어른 세례성사의 점진적인 소멸과 동시에 유아 세례성사의 보편화에 따른 것이다.

 

4) 10세기부터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여기서 더욱 의미 있는 자료들만 언급하기로 하자. 이 시간의 초기부터 세례성사는 파스카와 더 이상 결부되지 않기 시작한다. 유아세례가 유일한 세례성사의 실행이 된 12 세기 이후, ’축적된’ 예식은 비록 세례예식서에 남겨졌지만, 존재 이유가 없어진 예비자기간은 소멸되었다. 14세기부터 침수예식에 의한 세례는 드물게 되었고, 물 붓는 예식에 의한 세례가 일반화되었다. 견진성사는 일반적으로 세례와 분리되었고, 그로 인하여 그 참된 중요성을 이해하는 것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여기 저기의 지역 교회에서 소수의 예외들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견진성사 예식은, 안수와 십자표지를 도유에 합한 단 하나의 예식consigmatio을 토대로 굳혀지며, 예식을 종결하던 평화의 입맞춤은 의미상으로도 성격상으로도 불분명한 - 뺨을 때리는 것으로도 뺨을 쓰다듬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 예식으로 바뀐다.

 트렌토 공의회 후 1614년 바오로 5세 교황으로부터 공포된 [로마예식서Rituale romanum]는 ’어린이 세례 예식Ordo baptismi parvulorum’(사실 이것은 어린이들을 위한 참된 예식이 아니라 어른 예식서의 축소판임)과 이어서 ’어른 세례 예식Ordo baptismi adultorum’을 제공하는데, 각각은 단 하나의 예식으로 구성되었고, 이 예식 안에 (예비기간의) 각 단계는 단지 상징으로만 - 예를 들어 ’끝에서 두 번 째 구마식 앞에 세례후보자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것’과 ’세례전 예비자 도유를 마치고 사제의 제의를 보라색에서 흰색으로 바꾸는 것’ 등 - 남겨지게 되었다. 서로 다른 종류의 요소들이 이 예식서 안에서 서로 불분명하게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스도교 입교가 그 정점으로 삼고 있는 성체성사에 대하여, 1215년 제 4차 라테라노 공의회는 "이성을 사용할 연령"에 도달한 후부터 모든 신자는 최소한 한 번 파스카시기에 영성체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 공의회 조문에 근거하여 유아들에 대한 영성체가 금지되었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교 입교의 성사들은 결정적으로 분리된다. 이것이 나중에 전통적 순서를 뒤집어, 견진성사가 고백성사와 성체성사 후에 거행되게 하는 원인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초세기 교회는, 그리스도교 입교 및 교회와 하나 됨의 절정인 그리스도의 성사적 몸에 대한 참여가 아직 성령의 도유로 날인되지 않은 이들에게 허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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