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889] 위령기도와 위령미사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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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시몬 | 작성일2003-08-08 | 조회수11,929 | 추천수0 | 신고 |
주님의 평화!
양 지모 라우렌시오 형제님 어서 오십시오. 20일 전에 상처를 하셨다니, "안녕하십니까?" 라는 의례적인 인삿말이 결례가 될 것 같아서 여기에 오셨으니 "어서 오십시오"라고 인사를 드렸사오니 양해 바랍니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나신 형제님의 부인께서 주님처럼 부활하시어 영원한 삶을 보장하는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시기를 저의 기도로 함께 합니다.
따님과 함께 매일 위령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하셨는데 잘 하고 계십니다. 위령기도를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바치는 것이 좋은지를 질문하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위령기도도 우리가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위령기도도 우리의 다른 기도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정성이 강조되지요. 누구든지 완벽한 삶을 산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인간이 지닌 나약함과 부족함, 결점과 결함을 안고 삽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는 죽은 모든 이들이 그 부족함과 나약함으로 지은 죄를 기워 갚고 정화하는 단련의 시기, 곧 연옥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연옥은 정화되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바로 그곳에서 정화되고 단련 받고 있는 영혼들을 위해 우리는 기도합니다. 기도로서 서로의 공을 나눌 수 있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음을 우리는 사도신경의 ’성인의 통공’을 통해 고백합니다. 아무도 완벽하게 살 수 없고 인간이 지닌 허물과 약함을 가지고 한 세상을 살고 죽음으로 하느님 나라에 어울리는 순결함을 지니기 위해서 정화와 단련의 시간을 거쳐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형제님께서 질의하신 내용에 대하여 추가로 몇가지 참고적인 말씀을 드리고 신부님들께서 발표하신 내용도 아래에 함께 올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우리 레지오 단원의 수첩에 나타나 있는 사항을 보게되면, 장례 후에 연도를 함에 있어서, 그 기준되는 날짜는 사망일로부터 3일, 7일, 30일, 49일,100일과 기일 제사날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님께서 매일 매일 연도를 바치기를 원하시면 49일까지 하시고, 그 다음부터는 100일째 되는 날에 바치신 후에, 기일 제사가 돌아오는 날에 바치는 것을 권하여 드리고 싶습니다.
아래에 두 분 신부님들의 글을 읽어 보시면 이해하시겠지만, 위령기도는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연미사이므로, 이러한 연미사 신청은 위의 기준으로 하시되 첫 기일 제사까지는 매달 한번씩 하는 것이 좋겠으며 위의 날짜가 겹치는 달에는 레지오 수첩에서 정한 상기한 날자에 연미사를 드리도록 권하고 싶습니다.
형제님께서는 그 전에 저가 올려 드린 이 완희 신부님의 위령기도(연도)에 관한 글을 보셨다고 하셨기에, 이번에는 이 완희 신부님께서 쓰신 위령미사와, 허 윤석 신부님 (서울 대교구 연령회 지도 신부님)이 쓰신 내용을 아래에 올려 드리오니 가톨릭의 위령미사 및 연도에 관한 역사적 고찰과 더불어 우리 가톨릭 신앙인이 망인을 위하여 어떻게 기도를 바치는 것이 좋으지에 대하여 함께 공부하는 자료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쓴이: 이 완희 신부님 글 제목: 위령미사(연미사)란?
1. 들어가는 말
죽은 이들을 위해 봉헌하는 미사를 위령미사라고 한다. 교회가 죽은 이를 위하여 미사를 봉헌하는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는 모든 지체들이 상호간에 영신적인 도움을 주며 다른 지체들에게도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이다(미사경본 총지침 335항). 따라서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는 교회가 죽은 이를 위하여 하느님께 바치는 미사성제가 위령미사이다.
2. 위령미사의 역사적 발전과정
미사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요약할 수 있는 파스카 사건의 재현이다. 따라서 초대교회 때부터 부활을 기념하는 미사가 매주일에 거행되었다. 처음에는 주일에만 거행되던 미사가 평일에도 거행되기 시작하였고 여러 가지 다른 성사 및 준성사와도 연결되었다. 죽은 이들을 기억하며 그들을 위해 봉헌하는 미사를 위령미사라고 한다. 위령미사가 이미 2세기부터 봉헌되었다는 흔적을 Aristides의 호교론과 위경인 요한행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이에 대해서는 H.J.M.Milne, A new fragment of the Apology of Aristes, 25호 p.75와 M.J.James, The Apocryphal New Testament, Oxford, 1945 참조). 또한 3세기경에, 떼르뚤리아노(Tertullianus)는 죽은 이를 위한 기일 미사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De Corona PL 2: 79/ De Castitate 11, PL 2: 926). 4세기까지의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일상생활에 있어서 로마의 관습을 따랐다. 상을 당한 로마인들은 죽은 이의 무덤에서 음식을 나누는 음복 잔치(Refrigerium)를 빼놓지 않고 거행하였다. 이 음복은 상을 당한지 3일, 7일, 30일(동방지역에서는 3일, 9일, 40일) 그리고 1년째 되던 날 거행하였는데 이러한 음복이 그리스도교화 되면서 성찬례, 즉 위령미사로 발전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us)는 로마 근교 오스티아에서 있었던 그의 모친 모니카의 장례를 회상하면서 어머니를 묻은 후에 바로 구원의 제사인 미사를 봉헌하였다고 전한다(고백록 9, 12). 또한 4세기 중반까지 소급할 수 있는 문헌인 <사도들의 가르침 (Didaschalia apostolorum F.X.Funk판 1권 p.276)>에서도 묘지에서 행해지는 위령미사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처음에는 음복의 관습과 무덤에서의 미사가 함께 행해지다가 서서히 음복이 사라지고 위령미사만 남게되는 것이다. 위령미사를 위한 기도문은 6세기 이전에 만들어졌으며 이미 레오 성사집(Sacramentarium Leonianum)에 5개, 젤라시오 성사집(Sacramentarium Gelasianum)에 13개가 수록되어 있다. 초기 기도문들은 죽음을 파스카 여정의 완성으로 받아들이고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안식(Requiem aeternam)에 도달함을 기쁘게 찬미하였다. 그러나 중세에 이르러 이러한 파스카적 기쁨은 사라지고 심판과 징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찬 기도문으로 변질되었다. 이제 죽는 날은 더 이상 태어나는 날(Dies natalis)이 아니라 심판의 날, 분노의 날(Dies irae)로 받아들여졌다.
위령미사는 중세 때에 일어난 3가지 전례적 신학적 사조와 조우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첫째, 신심미사(Missa votiva)의 등장이다. 미사는 파스카의 재현이라는 초대교회 이래의 미사에 관한 전통적인 생각이 점차 흐려지고 라틴어를 모르는 대중들이 미사집전에서 소외되면서 미사는 일부 성직자나 수도자의 전유물이 되기에 이르렀다. 더 나아가 미사가 공동체의 모든 이를 위한 제사라기보다는 개인의 신심과 청원 등을 위해 바치는 사적인 제사로 여겨지면서 미사라는 의식 자체를 절대화하는 경향도 생겨나게 되었다. 이는 자연히 미사에 대한 미신적이며 주술적인 이해를 초래하였고 이때부터 미사는 개인 또는 소수의 사람을 위해서, 특별한 청원을 하기 위하거나 개인적인 일들을 기념하기 위해서 바치는 사적인 예식으로 전락하였다. 이런 이유로 위령미사는 죽은 이들의 구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크게 성행하였다.
둘째, 연옥(Purgatorium)에 대한 교리가 널리 퍼져나가면서 연옥에서 고통받는 영혼을 위한 미사의 효험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미사를 봉헌함으로서 연옥 영혼의 고통이 감소되고 천국으로 들어올림 받는다는 생각이 일반화되었다. 연옥영혼이 죄를 씻고 빨리 하늘나라에 오를 수 있도록 미사를 더 자주, 더 많이 봉헌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인하여 위령미사는 매우 빈번하게 집전되었다.
셋째, 대사(Indulgentia)에 대한 교회의 교리가 확정됨으로써 연옥영혼을 위한 미사, 위령기도, 자선행위 등이 더욱 강조됨으로 급기야 미사가 지닌 공동체 모두를 위한 구원의 잔치라는 본래의 의미가 결정적으로 훼손되기에 이른다. 살아있는 사람이 위령미사를 한 대 봉헌함으로써 대사를 받고 그 대사만큼의 죽은 이가 연옥에서의 징벌을 경감 받게 된다는 식으로 대사의 효력이 오용되었다. 이로써 위령미사는 연옥영혼을 위한 만병치료제와 같은 효과를 지닌 주술적인 행위로 인식되었고 결국 미사가 지닌 공동체적이며 파스카적인 성격이 흐려지게 되었다. 연옥 영혼을 위해 30일 동안 매일 미사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동일한 지향으로 봉헌해야하는 그레고리안 미사도 이 때 등장하게 되었다. 이 그레고리안 미사는 "어느 죽은 수도자가 미사 30대를 통해서 연옥을 벗어날 수 있었다"는 그레고리오 대교황의 대화(Dialogi 4.55, PL 77, 416-421)에 나오는 예화로부터 그 이름이 생겨났다. 이렇게 신심미사와 기원미사가 발달하면서 더 이상 주기 기념일뿐만 아니라 다른 날에도 연옥영혼을 위하여 위령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전통은 트렌토 공의회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3. 위령미사의 신학
위령기도와 마찬가지로 위령미사의 신학적 근거를 <모든 성인의 통공에 관한 교리>, 그리고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있어서 인간의 협조에 관한 교리>에서 찾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구원의 잔치에 초대받았다. 그러므로 산 이도 죽은 이도 모두 이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삶과 죽음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통하여 산 이와 죽은 이가 이 공동체 안에서 통교를 이룬다. 그러므로 위령미사는 아직 살아 있는 이들이 먼저 죽은 이를 위해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를 그리스도와 함께 봉헌하는 것이다. 미사는 파스카의 잔치이다. 이 파스카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외아들 그리스도를 희생하는 하느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미사를 통해 산 이와 죽은 이를 파스카의 영원성으로 초대하는 분이 하느님이시기에 산 이들이 봉헌하는 위령미사는 죽은 이를 위하여 의미있는 제사가 되는 것이다.
하느님은 스스로 마련하신 인간을 위한 구원계획에서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으신다. 오히려 인간의 협조를 통하여 그 구원계획을 완성하신다. 살아있는 동안 하느님을 믿으며 세례를 통해 새로이 태어났으나 나약함으로 인하여 세례 후에도 여전히 죄에 물든 채 살아가는 신자들이 있다. 비록 이 죄를 씻지 못하고 죽었을 때도 하느님은 여전히 구원의 팔을 펼치시며 모든 이를 구원하시려는 당신의 계획을 변경하지 않으신다. 세상을 떠났기에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연옥 영혼을 위해, 살아있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봉헌하는 것이 위령미사인 것이다.
4. 위령미사의 분류
미사경본의 총지침서에 의하면 위령미사는 3가지 등급으로 구분된다(336-337항). 가장 급이 높은 미사는 장례미사이다. 죽은 이를 하느님께 맡겨드리는 미사이며 교회 공동체가 죽은 이와 송별하는 미사이기 때문이다. 이 장례미사는 의무적 대축일과 대림, 사순, 부활절의 주일이 아니면 어느 날에나 다 드릴 수 있다. 두 번째 등급은 사망 소식을 들은 후 처음 드리는 미사, 또는 장례가 있는 날 다른 곳에서 드리는 미사, 제1주년 기일미사이다. 이러한 위령미사는 주일과 축일, 대축일을 제외하고 재의 수요일과 성주간이 아닌 모든 평일에, 그날이 비록 의무적 기념일이라도 봉헌할 수 있다. 세 번째 등급의 위령미사는 그 외의 모든 위령미사이다. 이 세 번째 등급의 위령미사는 신심미사를 허락하는 날에만 봉헌할 수 있다. 신심미사를 허락하는 날은 원칙적으로는 의무적 기념일이 아닌 연중 평일뿐이지만 본당신부나 집전 사제의 판단에 따라 필요하다면 의무적 기념일과 대림, 성탄, 부활시기의 평일에도 신심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
미사경본에는 위령미사의 기도문(eulogia)을, 장례미사, 주년위령미사, 보통위령미사 3가지로 분류하였고 각각 부활시기와 부활시기가 아닌 때로 나누어 기도문을 수록하는데 이는 기도문 안에 파스카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5. 위령미사와 연미사 (미사예물로 인한 혼동)
위령미사와 연미사는 본래 동일한 말이지만 미사지향(예물)과 관련하여 혼동되기도 한다. 정해진 법에 따라 미사를 봉헌할 때 사제는 미사예물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미사예물이 지향하는 바에 따라 죽은이를 위해 봉헌하는 미사를 통상 연미사라고 부르며 그 밖의 산이를 위한 미사로는 생미사, 가정미사 등이 있다. 앞에서 설명해온 위령미사는 미사 경본에 따로 수록된 위령미사의 기도문과 독서문을 사용하는 미사를 뜻한다. 따라서 미사예물 지향이 죽은 이를 위한 연미사라고 하더라도 그날의 미사가 교회의 축일표에 따른 미사라면 그것은 위령미사가 아닌 것이다. 위령미사는 사제가 흰색 혹은 검은 색 제의를 입고, 축일표에서 제시된 기도문과 독서 대신 죽은 이를 위한 고유의 기도문과 독서 등을 취하여 봉헌하는 미사를 말한다.
6. 합동위령미사
많은 연옥 영혼을 위한 미사 지향을 가지고 위령미사 한 대를 봉헌하는 것을 합동 위령미사라고 한다. 모든 사제는 한 대의 미사를 봉헌 할 때, 한 가지 지향만을 가지고 집전해야한다. 교황청 성직자성에서는 1991년 2월 22일 <합동미사예물에 관한 규정>을 반포하였다. 그 규정 제2조는 "봉헌자들이 사전에 명료하게 알고 있는 상태에서 자기들이 바친 예물이 다른 예물과 하나로 혼합하여 단일 미사를 거행하도록 자유롭게 동의한 경우 ’합동’지향을 적용하여 한 대의 미사로써 그 책무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규정에 입각하여 우리나라의 설날이나 한가위 명절, 그리고 위령의 날처럼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미사를 청하는 경우에 그 미사를 합법적으로 봉헌할 수 있으며 이를 합동위령미사라고 한다.
글 쓴이: 허 윤석 신부님 글 제목: 천주교의 장례예식과 유교의 예식비교- 토착화 요소중심
천주교 성교예규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내용상 크게 2권으로 편집되었다. 1권은 임종자를 위한 기도와 선종자를 위한 기도와 예식, 2권은 임종 후 상장 규칙과 임종과 초상등의 각 절차 때의 기도, 그리고 어린이 장사예절과 상례문답으로 구성된다. 천주교의 장례예식은 천주성교예규(1864년)의 상장규구의 총 23항과 상례문답의 56항의 세칙에 의해 이루어진다. 다음은 유교의 전통예식과 천주교의 장례 두 예식의 비교이다.
가. 영혼이 육신을 떠나면 바로 종후축문이란 기도를 받친다. 임종하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가 무릎을 꿇고 조용히 기도를 한다. "성인들이여 천사들이여 오셔서 이 교우를 하느님께 바쳐 주십시오. 주님,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십시오." 하고 간절한 애원의 기도를 올린다. 이후 연도를 바친다.
연도는 크게 5가지로 구성된다.
1. 죄의 용서와 자비를 구하는 2편의 시편을 교대로 합송한다. (시편 129, 50편 2. 성인 호칭기도를 통하여 성인들의 통공을 간구한다. 3. 자녀들의 기도 -상주(喪主)가 죽은 부모를 위해 기도를 받친다. 1988년 이후 주교회에 상정한 상장례 예식서에는 위령기도는 신앙공동체의 기도이므로 자녀가 없이 임종한 이를 위해 친구나 이웃이 임종자의 구원을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일반기도(문상객의 기도),자녀의 기도, 친구의 기도를 첨가하였다. 4. 찬미기도- 하느님의 구원사업의 내용과 의미를 담고 있는 교리이며, 함축적인 노래로 교송으로 부른다. 이 기도는 연도를 바치는 믿는 이들에게는 교리 교육적이며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선교의 시간이 될 수 있다. 5. 주님의 기도 6. 마침기도 - 성부를 향한 기도이며 성자의 수난 공로와 성인들의 통공을 통하여 임종자가 영원한 안식과 기쁨을 누리길 간구하며 살아있는 모든 신앙인들을 위한 기도를 바친다.
연도는 세례를 받지 않은 비신자을 위해서도 바칠 수 있다. 유교에서는 임종자의 코에 햇솜을 대보아 움직이지 않으면 운명했다고 일단 보고서 가슴을 치며 우나, 이런 물리적 판단으로는 죽음을 단정하지 않고 사자(死者)를 소생시키기 위해 다시 하늘에 비는 종교적 의식을 행하는 데 이것이 복(復)이다. 복은 죽은 사람이 평소에 입던 웃옷을 가지고 지붕 가운데 올라가서 왼손으로 목을 잡고 오른손으로 허리를 잡고 북쪽을 바라보고 "아무개 돌아오라."고 3번 외치는 초혼복백(招魂復魄)의 의식이다. 유교에서는 사람의 죽음을 혼과 백의 갈림으로 생각하는데 죽은 후 혼(魂)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魄)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본다. 그래서 복은 떠난 혼을 불러들여 백에 복귀하도록 기원하는 행위이다.
연도를 받치기 전에 교우는 상가에 와 시신에 성수를 뿌리며 "망자 평안함에 쉬어지이다. 아멘"하고 기도한다. 여기서 죽음관이 다름을 볼 수가 있다. 장례의 시작이 유교에서는 다시 혼을 부르는 소생에 대한 염원의 표현으로, 천주교에서는 영혼의 안식을 기리는 정화의 의미로 시작된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에서도 입관 전에는 망자(亡者) 입관 이후에는 연령(煉靈)으로 시신을 구분하는데 망자(亡者)라는 단어에는 시신에 대한 애석함이 담겨져 있기에 이 단어를 천주교에서 수용하므로써 죽음에 대한 애석함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유교의 시신에 대한 입장이 죽은 부모의 혼과 백이 분리되어 자연으로 돌아간 부모의 것으로 인식하지만 천주교에서는 시신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시신은 하느님께 은총을 받은 몸이며, 성체를 영한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성령의 궁전이며 세말에는 부활의 영광을 얻어 영혼과 한가지로 영복을 누릴 소중한 것이다.
즉 유교에서는 부모의 시신은 효의 대상이지만 천주교의 시신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성령의 궁전인 구원의 대상으로서의 육신이다. 천주교에서는 유교의 문상접대와는 달리 "장사식장에서는 술과 음식을 많이 벌리지 않음이 아름답고 다행한 일이다"고 말한다.
나. 수시(收屍)를 하여 준다. 시신을 올바르게 수습하여 주는 것을 말한다. 얼굴을 아름답고 화사하게 만들어 준다. 시신을 시상판(屍床板)에 올려 놓아 몸이 곧게 수습하여 준다.
다. 염습과 입관
사망 후, 24시간이 지난 후에 입관 시간이 잡히면 염습을 한다. 죽은 이의 시신을 깨끗이 씻긴 후 정갈한 옷이나 삼베옷을 수의로 입히는 것을 염습(斂襲) 또는 염(斂)이라고 한다. 수의는 벼로 된 옷이나 평상복(한복,양복)이나 특수복(사제, 수도자등)을 입히어 얼굴을 싸메지 않고 관에 넣는다.
염습할 때, 염습 기도문을 바치고, 시신에 성수를 뿌리고 시작한다. 가족은 촛불을 켜들고 있다. 천주교회에서 염습을 중요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입관을 중요시하였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유교의 염습은 죽은자를 살리려고 애쓰면서 죽음을 인정하는 과정으로써 시신의 씻김인 습(襲), 시신을 베로 싸서 묶어 관에 넣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소렴(小殮)과 시신을 베로 싸서 입관하는 대렴(大斂), 유가족들이 상복을 입는 성복(成服) 등을 엄격히 구분되어 정성을 드렸고 의식으로 정하여 엄격히 지켜왔다. 이렇게 입관보다는 염습을 중요시 한 이유는 사람이 죽었어도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살리려는 정신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살리려는 노력은 머리를 동쪽으로 두며 지붕에 올라가 초혼과 고복을 한다든지 손톱, 발톱, 머리카락 등을 5낭(囊)에 모으는 것과 죽은 자를 깨끗이 씻기고 손톱과 발톱을 깍는 것, 사자(死者)의 입에 쌀과 조가비(貝) 또는 구슬(玉)을 넣어주는 의식인 반함(飯含)을 하여 다시 살기를 바라는 복생희구(復生希求)는 죽은 이에 대한 정성과 효의 표시이며 소생을 희망하는 살아있는 자의 심정의 표이다. 이것은 유교가 현세적 종교임을 드러내는 예식이다. 즉 유교에서는 생과 사를 별개의 차원으로 보지 않고 인간의 양면적 측면내지 일통지사(一統之事)로 본다.
반면 한국 천주교의 염습예식은 입관 예식과 분리 되어있지 않다. 한국 천주교회의 염습과 입관예식은 예수의 무덤 안장 사건을 재현하는 권고문과 임종자의 영혼이 하느님의 인도와 자비로 천상낙원으로 인도 되길 바라는 내용의 시편으로 하나로 구성 되어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그 시신에 향료를 바르고 고운베로 싸서 경건하게 무덤에 안장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같은 예를 갖추어 거룩한 성사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 고인을 염하여 입관합니다. 우리는 부활의 희망을 가지고 자애로우신 하느님께 고인을 위하여 기도하며 경건한 예식에 참여합시다.(염습예식 중 주례자의 권고)"
한국 천주교는 예수님의 무덤안장 사건을 염습예식 및 입관 예식으로 재현하므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임종자의 죽음을 동일화하는 동시에 부활의 희망을 가지고 죽음을 부활을 향한 문으로 인식한 신앙교리의 토착화된 예식의 단면을 볼수 있다. 또한 한국 천주교는 반함(飯含)을 하지 않고 생전에 임종자가 사용하던 묵주를 임종자의 손에 쥐게 한다. 이것은 성모마리아의 전구를 간구하는 행위이다. 현행 풍습은 입관후에 문상을 했으나 오늘에 와서는 수시(收屍) 후에 문상을 받는다.
라. 출관(出棺)
출관(出棺)이란 상가에서 운구하여 나오는 것을 말한다. 미사와 고별식을 마치고 묘지로 떠난다. 천주교의 출관 방법은 신자인 경우 발을 앞세우는 데 이는 제단을 향하기 위함이며 하느님의 은총을 구하기 위함이다.
바. 곡(哭)의 의미과 상여소리와 연도
유교에서는 죽은 부모를 애도하는 표현으로 곡(哭)을 하고 천주교에서는 연도를 한다. 천주교에서도 곡을 한다. 하지만 유교의 곡에 비해 매우 자제를 강조한다."체모를 잊지말고 미치게 부르짖는 소리와 원망하는 말을 내지말고, 발을 구르며 가슴을 두드리는 거동을 말지니라." 이는 부활을 희망하는 죽음관 때문이다. "외교인의 죽음은 더 간절히 울음이 마땅하니 대개 이 무리는 죽으며 곧 지옥에 삼킨바 되어 영원한 불의 무한한 벌을 받을 지라 그런고로 마땅히 더욱 서러워하고 아파하려니와 교우의 죽음은 도리어 가히 즐거워하고 경하할 것이라, 어찌 몹시 서러워 통곡하리요? 그러나 만일 본성의 눈물을 금치 못하면 멀리 이별한 연고로 가히 울것이로되, 아주 영원히 잃은 줄로 울진 못할지니 대개 장래에 우리 다시 서로 만나 서로 즐길 바람이 있음일새니라."
연도는 이를 바치는 주체가 둘로 나뉘어 한쪽이 부르고 나머지는 ’망자(공의회이후 세례명을)를 위하여 비소서’라는 구절을 반복함으로써 교환창 내지는 선후창의 형식을 지닌다. 이러한 선후창은 우리나라의 상여소리에서도 많이 나타나는 형식으로 연도가 민속적 전통 위에서 창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연도를 구지 소리를 높여 노래함으로 유교적 전통으로는 자칫 즐거워하는 모양같아서 조상의 예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상례문답은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그렇지 아니 하니 이 비록 노래없이 거저 경을 외워도 족하나 경을 노래하여 외움이 그 연고 있으니 하나는 노래하는 소리 더욱 내 생각을 들어 주께로 향케하고 더욱 내마음을 수렴케 하고 더욱 우리 마음의 큰 원을 드러냄이요, 둘은 거룩한 노래의 소리 만일 법대로 하고 정성된 마음으로 하면 능히 마귀를 쫓으니, 대개 마귀 항상 마귀 근심하여 신락의 소리를 듣고 견디지 못함이요, 셋은 장사때에 교우의 하는 소리는 또한 슬퍼하고 근심하는 소리니 그러나 과도히 못할지라, 대개 우리 근심은 바람 없는 무리의 근심과 다르니라." 즉 통공을 통하여 죽은이가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얻기를 바라는 공동체의 원의의 크기를 소리로서 나타내기 때문에 ’소리높여’ 기도하는 것이다. 실제로 연도의 가락은 묵상을 하기 보다는 힘찬 청원기도의 분위기이다.
마. 묘지에서
무덤 축복후 즈가리야의 노래, 유가족을 위한 기도를 봉헌한다.
바. 매장이 아닌 경우- 매장 중심의 천주교회 장묘문화에서 화장과 납골 형태로 확산됨에 따라 화장과 납골과 산골시의 예식이 마련되었다.
사. 장례이후
천주교의 장례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미사이다. 장례와 관련된 미사를 위령미사라고 하는 데 이는 다시 장례미사와 기일미사, 연미사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민속과 관련하여 지적할수 있는 것은 탈상과 관련하여 장례후 절차에서 보이는 연미사의 봉헌시기이다. 가톨릭에서는 장례미사후에 3일,7일,30일 등 죽은 이를 위한 연미사를 봉헌할 것을 권장하는데, 이외 우리의 민속적 전통에 따라 삼우제나 사십구재, 백일재를 대신하여 죽은이를 위한 미사가 봉헌되기도 한다.
삼우제는 유교에서 사십구재와 백일재는 불교에서 유래된 의례이다. 삼우제(三虞祭)란 원래 세 번째 虞祭라는 말로 이는 갓 돌아가신 영혼을 위로하는 제사이다. 여기서 우(虞)는 형체가 땅밑으로 돌아간 이후에, 안정을 찾지 못하고 불안에 싸여 방황하고 있을 혼령을 편안하게 해드린다는 安神을 뜻하며, 돌아가신 당일, 삼일째 지내는 것을 각각 초우제, 재우제, 삼우제라고 한다. 그런데 화장(火葬)을 기본으로 하는 불교식 장례에서는 이 삼우제가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포함되는 것이 보통이다. 장례일로부터 49일, 100일째 되는 날 올리는 사십구재나 백일재도 마찬가지이다. 사십구재는 원래 불교의식이었는데 유교에서도 지낸다. 보통고인이 생전에 다니던 절에서 거행하며,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한다는 뜻을 지닌다. 불교에서 사십구일은 칠칠일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은 후 7일의 7배의 기간으로 사람이 죽어서 49일간은 중유(中有)에 헤매어 아무대로도 전생(轉生)하지 않고 7대왕에게 그 살아서의 행적에 따라 심판을 받고 마지막 염라대왕을 만나는 날이 49일이다. 이때 추선공양을 절에서 해서 명복을 빌어 죽은 사람이 果保를 얻어 성불하도록 초칠일부터 7일마다 공양한다. 7의 7배인 49일로서 그 공양을 마친다. 이 기간을 중음(中陰)이라고 한다. 이렇게 49재나 삼우제는 다른 종교의 다른 신관과 죽음관에 의한 제례이다. 하지만 천주교의 일반신자들은 아직도 삼우제나 사십구재의 연미사라고 미사를 봉헌한다. 이것은 토착화라기 보다는 종교와 제례문화에 대한 혼선이라고 생각한다.
상례문답에서는 이러한 외인의 제례택일과는 다른 기도일을 지정하여 연미사와 연도를 받칠 것을 지시하고 있다. "문(問) :전해진 기약이 어느 날(장례 기도하는 날)이 어느 날이뇨? 답(答): 죽은 후 3일 7일 30일과 주년이요 추사이망 첨례날이니라."(상례문답30항)
"문(問):이날에 망자를 위하여 특별히 송경 기도함이 외인의 택일 사망과 같지 아니하냐? 답(答):그렇지 아니하니 대개 이 몇날은 다 특별한 뜻이 있어 정한 것이요, 연고없이 공연히 정한 것이 아니니, 제3일은 오주 예수 사후(死後) 제3일에 부활하사 무덤에서 나오심을 기억하여, 우리들이 망자 장래에 영광의 부활 얻기를 바라고 구함이요, 7일은 천주 천지를 개벽하실 때에 엿새 안에 만물을 조성하시고 이렛날에는 쉬사 다시 내지 아니심을 기억하며, 망자 일찍 영원히 쉼을 얻기를 바라고 구하는 뜻이요, 한 달만은 고교때에 모이세와 혹은 다른 두목을 위하여 기구하던 기한을 따름이요, 주년을 지킴은 예로부터 만국 풍속을 보건대 혹 대사를 당하면 그 주년을 지키는지라, 사람이 괴로운 세상에 나매 생일을 기억하여 오히려 정하거든 하물며 교우 이 괴로운 세상을 떠나고 영원히 즐길 세상에 나는 날을 어찌 더욱 기억하여 지키지 아니리요? 추사이망날은 특별히 성교회에서 정하여, 공번되게 모든 죽은 교우의 영혼을 위하여 기구하는 날이니 이날에 우리도 마땅히 우리 자모(성교회)를 본받아 우리의 기도를 성교회의 간절한 기도에 합하여 천주께 드려 써 우리 기도를 윤허하심을 얻게 할지니라."(상례문답32항)
글 쓴이: 허 윤석 신부님 글 제목: 신앙의 자유이후의 장례문화 - 연령회
한국 교회는 1886년 한불조약을 계기로 신앙의 자유를 갖게되었다. 이시기에 이르면 교회의 많은 부분이 변화되는데 장례 봉사의 경우도 이전의 환난상구 단계에서 단체화의 단계로 변화가 나타난다. 대구의 로베르 신부는 1886년도 보고서에서 장례사업이 전교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하였고, 전라도는 1891년경 전동본당에 연령회가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었다.또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1894년 이전에 서울과 제물포에도 교회에서 장례사업을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1886년 이후 연령회가 설립되었음을 말해줌과 동시에 박해시대의 연령봉사의 전통이 정식 단체의 설립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10년대에 이르면 연령회는 좀더 다양한 성격을 갖게된다. 즉 이전의 노동력 제공을 주로 하던 단계에서 금전적인 부조를 강조하고, 또 기도와 미사 봉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전에도 이러한 역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만 이전시기가 장례봉사를 위주로 하였다면 이 시기에는 금전적인 부조나 기도 미사 봉헌 등의 활동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 박해 시대와 구한말 과도기를 거치는 가운데 생활 면에서나 신앙적인 측면에서 신자들이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에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1910년 이후에도 존재하였다. 그러나 1910년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되어 1912년에는 ’천주 교중 보험회(天主敎中保險會)라는 단체가 조직되었다. 이것은 오늘날의 보험처럼 회원을 모집하여 회비를 거둔 뒤 회원 가운데 상을 당한 사람에게 금전적으로 보상을 해주는 단체였다. 또 1917년에는 진남포 교회에 상장계(喪葬契)가 조직되어 자선사업과 봉사활동을 수행하였다. 이 상장계는 명칭에서 알수 있듯이 주로 상장과 관련된 자선,봉사활동을 한 것으로 추정되며, 또 계(契)라는 형식을 취했던 것으로 보아 보험회와 비슷한 성격의 단체인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과 함께 기도와 미사 봉헌도 연령회의 주요 목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예를 들면 1914년 로베르 신부의 보고에 따르면, "경상남,북도의 몇몇 본당에 있는 연령회는 ... 해마다 회비를 거둡니다. 회비는 적립하여 그 이자로 각 회원이 죽었을 때 그리고 그 후 매년 기일에는 회원 각자의 몫으로 정해진 횟수의 미사를 드려줍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이르면 연령회는 장례봉사는 물론, 금전적인 부조를 위한 계의 형태의 조직화, 기도 및 미사 봉헌등 오늘날의 연령회의 모습을 모두 갖추게 되는 것이다.
즉 한국 교회의 연령회는 어려울 때 서로 돕는 환난상구의 단계에서 1886년을 전후한 시기에 단체로 성립되었다. 또 성격면에서는 장례봉사를 주로 하던 단계에서 1910년을 전후하여 경제적인 측면이 강조된 사실과 기도, 미사봉헌이 연령회의 주요 목적으로 편입되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물론 연령회의 활동 범위에는 금전적인 부조, 노동력 제공, 기도 및 미사봉헌이 모두 포함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박해 시대 이래 한국 교회의 연령회 또는 장례봉사 속에는 이러한 성격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고 생각한다. 다만 시기별로 강조되는 역할에 차이가 있다가 점차 시간이 경과하면서 이러한 기능들이 균형 있게 수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오늘날의 연령회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1910년대에 그 모습이 형성된 것이다.
1952년 목포의 현하롤드 주교는 한국에 레지오 마리애라는 평신도 사도직 단체를 설립한다. 6.25직후 많은 사상자를 낸 전쟁의 상황 속에서 상가 봉사와 연도 받치기는 레지오의 설립과 더불어 한국 레지오의 중추적 활동으로 자리 매김되었는데 외국의 레지오 마리애 활동에서는 이러한 활동을 찾아볼 수 없다. 한국 레지오의 커다란 성장 요인중 일순위는 바로 이러한 상가봉사와 연도 받치기에 있다. 이것은 바로 6.25 전쟁이라는 레지오 도입당시의 사회적 상황과 한국인의 장례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발전요인이 된 것이다. 레지오의 빠른 성장과 함께 연도는 각 본당에서 더 많은 이들과 함께 봉헌할 수 있는 기도로 전파된다.
1970년 이후 1864년에 번역된 천주성교예규는 성서의 번역본들이 나옴에 따라 일부 가사가 바뀌게 되어 지방별로 각기 다른 가사의 연도가 되었다.
예: 깊은 구렁 속에서, 혹은 주여 나 깊고 그윽한 곳에서.....
1998년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에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81조 "장례식은 크리스찬 죽음의 빠스카적 성격을 더욱 명백히 표시할 것이며 각지방의 환경과 전통에도 밀접히 적용시켜야 한다."와 장례예식서 지침과 해설2항 " 죽은이들에 대한 그 시대와 그 지역 사람들의 정신과 풍습을 무시해서는 안되겠다. 그러므로 가문의 전통이나 지역적 풍습이나 장례위원회등에서 좋은 점이 있다면 다 받아들이도록 하고..."의 정신을 실행하기 위해 그동안 전례적 요소를 모두 갖춘 토착화된 신심행위로서 시행되던 연도와 한국천주교회의 상장 예식을 현대의 상황에 맞게 보완하여 한국의 전례예식서의 시안으로 상정하였으며 현재 이를 검토중이다.
다음의 조항들에 비추어서 연도는 이미 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에 부합할 수 있는 토착화된 전례적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1.교회는 망인들을 위한 예식으로써 고통을 표현하며 동시에 신뢰심을 북돋아 주기 위하여 시편의 기도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사목자들을 잘 교육하여 장례식에 사용되는 시편들 가운데서 적어도 몇 가지만은 이행할 수 있도록 잘 가르쳐야한다. (지침과 해설 12항)
-이미 연도의 기도는 많은 시편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2. 전례헌장 63조에 의하여 각국 주교회의는 로마 예식서에 준하여 지역적 필요를 감안하여 예식서를 만들 수 있고, ...민족의 특성과 전통에서 어떤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것인지 신중히 검토하고 ... 다음 적응을 도입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거기에 알맞는 곡조를 붙이고 (지침과 해설21항) 전례상의 전통에 따라 행렬때의 노래와 기도에 관해서는 선택의 자유가 더욱 큰 것이다.(24항), 미사 없는 장례식은 ...사목상 필요성으로 인해 각 주교회의는 성좌의 허가를 받아 평신도에게도 장례식 집전을 맡길 수 있다. 특히 밤샘기도는 평신도들에게 권장하는 바이다.-연도의 가락은 약 15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토착화되었다. 또한 연도는 망인의 집에서 사제의 주례없이 밤새워 봉헌하는 토착화된 기도이다.
제2차바티칸공의회 이전에는 각 지역 교회의 고유한 장례예식서를 만들 수 없었다. 전례란 성직자의 주례아래 교황청이 인준한 예식서에 의해 거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도 및 현재 거행되고 있는 천주교의 상장례예식은 바티칸공의회의 전례의 지침과 정신에 매우 부합되는 전례적 요소와 역사성을 갖고 있기에 한국 교회는 연도 및 성교예규를 통한 상장례예식를 우리 한국 교회의 고유한 전례로서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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