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묻고답하기

제목 Re:연옥은 있다. 카테고리 | 천주교
작성자조정제 쪽지 캡슐 작성일2004-12-23 조회수539 추천수0 신고

간혹

많은 분들 특히 개신교라던지 개신교에서도 한참 더 가는 이단 종파들의 사람들은

특하면 사람이 만들어내 교리 운운함을 볼수 가 있습니다.

 

사람이 만들지 않은 성서라던자 성서 번역이라던지 교리가 있는지 오히려 저는 묻고 싶습니다.

 

하느님의 힘에 의하여 사람들이 만듭니다.

이는 주님께서 보내주시겠다 하신 "협조자 성령"의 인도로 인하여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여 어떤 교리(혹은 교리의 용어)는 주님 시대부터 존속하여왔고

어떤 것은 주님과 사도들이 남긴 문헌(신약성서 등)을 통해서 그동안 교회안에서 믿어 온 것을 명확하게 정리하여 선포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예수님은 구세주이시다 라는 것은 사도들시대부터 확정된 교리이지만

하느님이 삼위일체라는 교리는 그렇게 믿어 오다가

삼위일체라는 용어와 그 내용이 명확하게 결정된 것은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부터 451년 칼케톤 공의회에 이르기까지 장구한 세월을 성경과 사도신앙하에서

이단들의 공격에 대하여 슬기롭게 고찰하고 논의된 후 오늘날과 같은 용어인 <삼위일체 하느님>이라는 표현으로 확정 된 것이며 이 신앙은 가톨릭신앙의 결정체이기도 합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삼위일체를 믿는다고 하는 말씀보존학회 출신들이 가톨릭을 공격할 때

어떤 교리들은 중세기 몇년도에 와서 누구에 의해서 교리가 만들어 졌느니 하며

하여 그 교리는 사람들이 만들었다 라며

가톨릭교회를 비방하기에 예를 들어 보인 것입니다.

 

성서 어느곳에서도 삼위일체에  대하여 명확하게 진술하는 곳은 없습니다.

삼위일체란 말 자체는 신약성서 어느 곳에서도 없구요.

신약성서 전반을 고찰하고 숙고하며 하느님의 영감을 얻어 혹은 하느님께서 사람들(교황 혹은 공의회 교부들)을 통하여 결정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삼위일체라는 교리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오늘날과 같은 표현으로 결정된 것은 것은 최종적으로 451년도에 확인된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와 칼케톤 신조>에 의해서 입니다.

 

그런데도

삼위일체를 고백하는 반 가톨릭이단 출신들은 자기들이 믿어서 그런지 몰라도

삼위일체 교리는 451년도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 진 교리라는 비방을 하는 것은 없드라구요^^

즉 아전인수라는 겁니다.

 

아래 연옥이란 교리가 몇년도에 만들어진것이라고 자신있게 진술하지만

위에서 본 삼위일체 교리와 같은 진향을 거친 것입니다.

 

연옥이란 용어가 결정되고 연옥 역시 "확고한 그리스도교의 교리이다"라고 결정한 것은

1274년도의 리용 공의회였습니다.

그러면 그때까지 연옥에 대한 교리는 없었던가???

아닙니다.

삼위일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이전에도

기독교 신앙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으로 사람으로" 믿었듯

연옥이란 교리가 명확하게 교리로 확정되기 이전부터 즉 초대교회때부터 믿어온 것이었습니다.

 

특히 말씀보존학회라는 성경 침례교 이단들은 수많은 헬라어 사본 중 하나를 사용한다 하여

같은 헬라어(그리스어) 사본들을 성경으로 대역해서 읽는  

정교회에 대해서는 그다지 비방을 하지 않습니다만~~

정교회 역시

연옥이란 용어는 사용하지 않아도 가톨릭의 연옥 개념과 비슷한 교리를 초대교회부터 믿어 왔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일때문에 교회가 동서로 분열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까요.

 

가톨릭교회의 연옥을 설명한 후에

개신교나 성공회 그리고  정교회의 가르침을 간략히 소개합니다.

 

(((연옥에 대하여)))

 

연옥을 이해하기 전 죽은이들의 부활과 영원한 안식을 위한 기도에 대해서 우선 염두에 두는 것이 신약성서와 교부들의 신앙을 이해할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개의 개신교에서는 죽은이들을 위한 기도는 비성서적이거나 우상숭배적이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선 죽은이들을 위한 기도라 하니까 죽은이들을 기도를 받는 대상으로 오해하여 우상숭배적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죽은이들을 위한 기도는 성서에 없으므로 비성서적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리스도교는 성서에 근거를 찾아 교회 초기부터 죽은이들의 부활과 영원한 안식을 위하여 죽은이를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를 드려왔습니다.

그러나 영광스럽게 순교를 하신 순교자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하느님의 영광에 곧바로 참여하였다(천국에 들었다)”고 믿었습니다.

 

“죽은 영혼을 위하여 기도를 하였다”라고 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사소하건 중하건 죄 중에 죽었을 경우,

하느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하느님의 영광에 들기를 기원하는 기도였습니다.

초기부터 그리스도교는 이렇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신자일지라도 죄 중에서 회개없이 죽었을 경우, 하느님의 영광에 들기 전에 그 죄를 정화받는다고 믿었습니다.

 

신약성서에 그러한 믿음을 찾을 수 있는 말씀들이 있어 소개해 봅니다.

 

<<디모테오후서1.16-18>>

 

16 주님께서 오네시포로의 집안에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빕니다. 그는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감옥에 갇힌 나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17 그가 로마에 와서는 나를 찾느라고 굉장히 애쓴 끝에 나를 만났습니다.

18 내가 에페소에 있을 때에 그가 얼마나 많은 봉사를 하였는지 그대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16 주님께서 오네시포로의 집안에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빕니다. 그는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감옥에 갇힌 나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17 그가 로마에 와서는 나를 찾느라고 굉장히 애쓴 끝에 나를 만났습니다.

18 내가 에페소에 있을 때에 그가 얼마나 많은 봉사를 하였는지 그대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빕니다.>>

 

"죽은“ 오네시포로를 위하여, 디모테오후서 1.18절에 바울로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빕니다.>라고 기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원은 천국에서 지복직관에 들은 영혼에게는 합당하지 않은 기원입니다.

이는 신약성서에서 보여지는 유일한 <위령기도>입니다.

 

<<베엘제불과 성령( 마태 12.22-32)

 

"그러므로 잘 들어 두어라 --- 사람의 아들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성령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이 본문에서,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한다라고 나옵니다. 이 말은 논리적으로 추론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가 됩니다.

내세에서도 (죄에 대한 벌을) 용서받을 수 있는 곳을 연옥이라 추론 할수 있어 보입니다.

(참고 : 연옥은 죄를 용서받는 곳이 아니라 죄에대한 벌을 받는 곳 즉 정화를 의미하는 개념입니다.)

 

<<마태오 5장 21-26 (성내지 말라)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 구원받은 영혼이라도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못하고 성내고 욕하고 미워하고 했으면, 이러한 죄벌을 한 푼까지라도 다 갚을 때까지 나오지 못할 곳에 대해서도 

우리는 연옥을 추론해 볼수 있습니다.

" 역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를 논리적으로 추론하면, -"다 갚으면 풀려나올 것이다"가 됩니다.-^^

 

역시 연옥이라고 말하기 싫으면 주님 말씀대로 " 우리 죄를, 마지막 한푼까지 다 갚을 때까지 나오지 못할 곳" 이라고 길게 이야기해도 됩니다.

 

<<베드로 1. 17

" 여러분은 <<각자의 업적에 따라서 공정하게 판단하시는 분>>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으니 ---- 두려운 마음으로 지내십시요.">>

 

<<고린토1, 3.13-15

" 이제 심판의 날이 오면 ----심판의 날은 불을 몰고 오겠고, --- 그 불은 각자의 업적을 심판하여 그 진가를 밝혀 줄 것입니다.--- 그 불속에서 살아나오는 사람같이 구원을 받습니다.">>

 

베드로는 <업적에 따라 공정하게 판단>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연옥의 개념은 <각각의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들의 업적에 의해서 공정하게 판단되어 잠벌과 정화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바울로는 <심판의 불속에서 살아나오는 사람같이 구원을 받습니다>라고 합니다.

 

연옥의 정화를 교회는 예로부터 <불의 정화>라고 하였습니다.

이 불은 고통을 주는 불이라기 보다 순금처럼 사람을 정화시키는 <성령의 불>일 것입니다.

 

이제 교회에서 말하는 연옥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톨릭교회교리서를 통해서 보려고 합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030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하늘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기 위하여 죽은 다음에 정화를 거쳐야 한다.

 

1031 교회는 선택된 이들이 거치는 이러한 정화를 '연옥'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단죄받은 이들이 받는 벌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것이다. 교회는 연옥에 관한 신앙 교리를 특히 피렌체 공의회)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확정하였다. 교회의 전승은 성서의 어떤 대목들을(1고린 3,15;1베드 1,7.) 참고로 해서 정화하는 불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이 성령을 거슬러 모독하는 말을 했다면 그 사람은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641)이라고 진리이신 분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가벼운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심판하기 전에 정화하는 불이 있다는 것을은 믿어야 합니다. 이 구절로 보아 우리는 어떤 죄들은 현세에서 용서받을 수 있지만 다른 어떤 죄들은 내세에서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 12,32>>

 

 

 

<가톨릭교회교리서>의 내용을 조금 설명을 해 볼 것 같으면,

 

사람은 죽으면 육신은 땅에 묻히지만 마지막날의 부활을 고대할 것이고,

영혼은 심판을 받아 천국이나 지옥으로 갈 것입니다.(이를 사심판이라고 합니다.)

연옥은 대개 다른 분들이 말하는 것처럼

죽은 후에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절대 아닙니다.

연옥은 이승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들(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회 혹은 의인이 되어 하느님의 백성이 된 자들)이 평소의 자신의 죄들을 회개하지 못하고 죽었을 경우 정화되는 곳 혹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지극히 순수하신 하느님의 신성에 참여(천국에 들음)하는 영혼이 죄의 허물로 얼룩져 있다면 그 죄의 허물을 씻어야 할 것입니다. 신성에 들기 전에 죄의 허물을 정화하는 것을 연옥 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연옥은 지옥과는 전혀 다른 곳입니다.

지옥은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이 차지하는 곳으로서 영원하지만,

연옥은 구원받은 영혼들이 영혼 정화를 위한 잠정적입니다.

더욱이 연옥은 공심판(마지막 날의 최후의 심판) 이후에는 그 존재가 소멸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날 이후에는 부활과 함께 새하늘과 새 땅이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지옥과 함께^^)

 

천국과 연옥은 선택받은 자들(구원받은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천국은, 죽은 뒤 곧바로 하느님의 신성에 참여함을 의미하고, 연옥은 <죄의 허물이 있으면 그 허물을 잠시 정화한 후> 하느님의 신성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옥에서 정화하는 영혼들은,

이승에 있는 사람들이 기도를 하였다고 하여 <죽을 운명에서 새롭게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지상의 사람들이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함은 <정화되어 천국영광에 속히 들게 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며, 또한 정화되는 고통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경감되게 해 주시기를 하느님께 간청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연옥에 있는 영혼이 얼마나 오래 정화되는지는 모릅니다.

순간적일 수도 혹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연옥이라고 함은 영원히 지속되는 어떤 특정의 제 3의 장소로 이해한다거나

또한 천국과 지옥의 중간장소라는 개념도 옳지 않아 보입니다.

 

연옥은 구원받은 영혼들이 하느님의 신성에 참여하기 위하여 정화를 받는 장소 혹은 상태를 의미하며 그 존재성은 잠정적이며 마지막날에는 존재성을 상실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옥은 오히려 정화를 받는 곳이므로, 천국의 “외연”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리라는 게 제 견해입니다.^^

 

연옥은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성서에 기초를 둔 것입니다.

 

개신교에서는 연옥에 대하여 명확한 것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하여 <연옥이 없다>라고 하기보다,

<연옥에 대해서는 모른다>라고 합니다.

 

이제는 죽은이들을 위한 기도에 대하여 교부들의 견해를 아래에 실어 봅니다.

 

<<<"2세기에 이르러 죽은 이들의 무덤 위에 자리한 비문 등에서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의 흔적이 발견됩니다.

떼르뚤리아노(Tertullianus)의 211년경의 작품(CCL 2: 1243)에서는 공적으로 바치는 위령기도가 발견되었고.

여기서 떼르뚤리아노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죽은 이들의 주년 기념일에 드리는 기도문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이러한 기도가 오랜 전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히뽈리또(Hippolytus)는 죽은 이를 위한 미사 중에 사용되던 3세기에 사용되던 기도문을 소개합니다.(Canones Hippolyti 33.1.169). 

3세기 후반의 아르노비우스(Arnobius)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모임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산이와 죽은이들을 위한 평화와 용서를 청하는 기도문을 전하고 있습니다(CSEL 4:171).

 

4세기에 사용되던 위령기도에 관한 증언들은 많이 발견됩니다.

교회사가 에우세비오(Eusebius)의 증언에 따르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죽은 뒤 시신을 제대 앞에 모시고 신자들이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했음을 알 수 있다(콘스탄티노의 생애 4.71).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Cyrillus)도 당시 사용하던 미사 기도문 중에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부분이 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Cathechesi mistagogiche 23, 9-10: 348년).

성 치릴로는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죄를 대신해서 그리스도가 희생됨으로서 하느님의 자비가 드러났음을 이 위령기도 안에서 상기시킵니다.

 

성 에피파니오(Epiphanius)도 또한 죽은이들을 위한 기도의 유익함에 대해서 역설하고 있습니다(Panarion 75.7.1-5).

 

밀라노의 주교 성 암브로시오는 그의 형제의 사망 주기를 맞이하여 장엄하게 미사를 집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PL 16:1315-1316, 379년).

 

4세기 말경에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Johannes Chrisostomus)는 죽은 이를 위한 미사, 위령기도와 죽은 이를 위한 자선행위 등은 하느님의 자비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Homilia 3).

 

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us)는 5세기 초엽의 전통을 확인시켜줍니다.

죽은 이를 위한 기도의 효용을 강조하기 위하여 아우구스티노는 마카베오 12,43을 인용하면서 당시 교회에서 행해지고 있던 위령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1274년 제2차 리용 공의회에서 위령기도의 유익함을 "공식적"으로 전교회에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회의 공적인 선언은 피렌체공의회(1439)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되었습니다(DS 1304).

 

또한 대사(Indulgentia)에 대한 교의의 발전으로 인해 위령기도는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었습니다.

1476년에 교황 식스토(Sixtus) 4세는 위령기도를 통해서 연옥 영혼에게 대사의 은혜를 전달할 수 있음을 선포하였습니다(DS.1398).

더 나아가 이 대사를 통하여 연옥 영혼들이 더 높은 곳으로 올려질 수 있다고 선포하였습니다(DS 1407).

대사에 관한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트리엔트(Trento) 공의회는 연옥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였다.

 

이렇게 죽음에 대한 사후 세계^^에 대하여 그리고 연옥과 연옥영혼에 대하여 성서와 교부들의 견해와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을 살펴보았습니다.

 

<<<참고>>>,

 

“연옥이 있다 없다”를 가지고 서로 이단 단죄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이 대체로 인정되는 기준입니다.

 

왜냐하면 연옥이라 함은 위에서 설명하였듯,

평소 죄를 회개 않고 죽은 구원받았지만 죄 있는 영혼이, 천국에 들기 전 그 죄의 정화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연옥의 존재성은 공심판(최후의 심판) 이후에는  그 의의를 상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연옥은 하느님안에서 구원을 받은 영혼의 정화를 의미하기에,

하느님과의 완전 단절을 의미하는 지옥과는 전혀 다른 것이며,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과 신성에 참여하는 천국의 개념과 비슷합니다.

 

개신교에서는 완전 성화론을 말합니다.

완전성화란 

지상에서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완전하 닮지 못하지만 죽은 후에는 완전히 닮을 것이라 믿습니다.

다만 그 완전 성화되는 시점은 어떤 종파는 "죽는 즉시"^^라고도 하며

다른 종파에서는 아예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연옥의 개념도 유심히 보면 개신교 식으로 말하면 영혼의 온전한 정화를 의미하기에

완전성화론의 개념과 비교해 볼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화를 주장하는 개신교에서 연옥을 부장한다고 함은 오히려 자기네 교리인 완전성화론을 부정하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저는 봅니다.^^)

 

성공회에서는 가톨릭적인 연옥이란 명칭은 없다고 부정하지만, 연옥의 개념과 비슷한 “음간”이라는 개념이 있다고 합니다.

정교회의 교리서를 보면 연옥이란 말은 사용하지 않지만 연옥과 거의 같은 교리문답이 있어 직접 소개합니다.

 

 

 10. 그리스도인이면서 회개를 하지 않고 죽은 이들을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을 위하여 추도식과 기도 그리고 특별히 성찬예배때 그들을 위하여 봉헌물을 바치며 또한 그들의 영혼을 위한 자선 등으로 도울 수 있다고 믿고있다.

 

11. 이러한 가르침은 어디를 근거로 하는 것인가?

마카베오 하 12, 43절을 근거로 교회의 전통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 절을 보면 유다 마카베오가 죽은 병사들의 죄를 위하여 제물을 바친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유다는 각 사람에게서 모금을 하여 은 이천 드라크마를 모아 그것을 속죄의 제사를 위한 비용으로 써 달라고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그가 이와같이 숭고한 일을 한 것은 부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루살렘의 성 끼릴로스는 성찬예배에서 죽은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그들의 영혼을 매우 이롭게 만든다고 말한다. 죽은 자들을 위한 자선에 대하여는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하여 그들의 이름으로 자선을 베풀라는 사도들의 규범에서 찿아볼 수가 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톰는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을 위하여 자선하는 것이며 만약 그가 죄인이었다면 그의 죄를 위로할 것이고 의로운 사람이었 다면 그를 더욱 의롭게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천국과 지옥>을 부정함은, <그리스도교의 궁극적인 상벌 개념을 부정하는 종말관>이기에 이단으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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