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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카테고리 | 천주교
작성자이수근 쪽지 캡슐 작성일2005-03-25 조회수1,205 추천수0 신고
 

 마리아 막달레나

 

 



St Mary Magdalene(detail)-SIMONE MARTINI
1317.Fresco, 97 x 80 cm (size of detail).Cappella di San Martino, Lower Church, San Francesco, Assisi

축일: 7월22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Santa Maria Maddalena (di Magdala)
Sta. Maria Magdalena
갈릴래아.1세기경




Magdalene - DOLCI, Carlo

1660-70.Oil on canvas, 73 x 56 cm.Galleria Palatina (Palazzo Pitti), Florence


성모 마리아를 제외하고 성서 속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보다 더 영광을 입은 여인은 없다.
지금까지도 그녀는 비난받는 수호 성녀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어 드린 무명의 죄많은 여인으로(루가7,38)
교회 안에서 끊임없이 전해 내려온 전설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서 학자들은 마리아 막달레나, 즉 막달라의 마리아를 두 사람으로 혼동케 하는 성서적 논거는 없다고 지적한다.

마리아 막달레나, 즉 막달라의 마리아는 그리스도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내신 바로 그 사람이었다.
최악의 경우 지독한 마귀에 걸렸던 사람, 어쩌면 중병이 들었던 사람임을 암시한다.

도미니코회의 W.J.헤링톤 신부는 "새 가톨릭 주해서"에서 "일곱마귀들"이 마리아가 비도덕적인 생활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라고 서술했다
그녀의 비도덕적인 생활을 언급하는 것은 루가 복음 7장 37절에 나타나는 무명의 여인과 동일하게 여기는 오류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다.

예수회의 에드워드 맬리 신부는 그녀에 대한 후기 서구의 낭만적인 전설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서 주석"에서 그녀는 루가 복음 7장 37절에 나오는 죄 많은 여인과 동일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분수에 지나칠 정도로 예수와 그의 열두 제자들 도와 준 많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예수의 모친과 함께 십자가 옆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예수 부활을 최초로 알게 된,선택받은 "공식적인"목격자 중의 한사람이며 특권을 부여받은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막달레나는 주님이 수난당하실 때 함께 있었다.

주님께서 부활하시던 날 아침 그녀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최초로 뵙는 영광을 얻었다.(마르 16,9)
이 성녀에 대한 신심이 특히 12세기부터 서방 교회에 두루 퍼져나갔다.



Crucifix with Mary, Mary Magdalen and St John the Evangelist-BURGKMAIR, Hans

1519.Oil on wood, 179 x 166 cm.Alte Pinakothek, Munich


루가 복음사가는
’일곱 마귀가 들렸던 막달라 여자라고 하는 마리아’라고 묘사하였고,
요한 사도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에 그 밑에서 계신 부인들 중 한 분으로 지목했으며,
마르코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일요일 이른 아침에 제일 먼저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제자들에게 제일 먼저 알렸던 분으로 묘사하였다.

복음서에는 ’용서받은 죄 많은 여자’ 마리아와
마르타의 동생인 베타니아의 마리아 그리고
글레오바의 아내 마리아가 등장하는데
앞서 말한 ’죄 많은 여자’가 마리아 막달레나인지 아닌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전승에 따르면
서방교회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용서받은 죄 많은 여자’로 보고,
통회와 관상의 이상적인 모델로 공경해 왔다.
성령강림 후, 마리아 막달레나는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 등과 함께
에페소로 가서 선교하다가 그곳에서 선종하여 묻혔다.

"죄가 많은 곳에는 은총도 풍성하게 내렸습니다."(로마서 5,20)

마리아 막달레나의 "그릇된 정체"는 19세기 동안 계속 묵인되었다.
지금은 그녀가 동일인이 아니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 모두는 우리 죄를 무시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하느님의 구원을 필요로 하는 죄인들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그녀와 마찬가지로 예수 부활의 증인들이라는 사실이다.



Scenes from the Life of Mary Magdalen: Noli me tangere-GIOTTO di Bondone
1320s.Fresco.Magdalen Chapel, Lower Church, San Francesco, Assisi



오늘날 복음서(요한20,1-2,11-18)는,
마리아가 예수께서 동산에 서 계신 것을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 비로소 알아보았다는 사실을 전해 주고 있다.

갑자기 주님께 대한 그녀의 사랑이 넘쳐흐른다.(이 축일의 제1독서 아가 3,1-4에"나는 놓칠세라 임을 붙잡고"라고 되어있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붙잡지 말고 어서 내 형제들을 찾아가거라."라고 하셨다.
아마도 완전히 새로운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분이 살아 계실 때에 가능했던 관계보다 더욱더 깊은 신앙 속에 머무르게 하는 관계이다.

성요한은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는 예수의 승천이 부활의 완성임을 강조할지도 모른다.
처음에 사도들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부활에 대한 그들의 증언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Scenes from the Life of Magdalene-GIOVANNI DA
MILANO.1365.Fresco.Rinuccini Chapel, Santa Croce, Florence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오랫동안 교회 전통 안에서 ’창녀’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어야 했다.
예수께 향유를 부은 여인이 죄 많은 여자, 곧 창녀로 여겨졌고, 그가 바로 예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셨고
후에 부활을 증거한 마리아 막달레나와 동일 인물이라는 오해로 인해 마리아는 항상 그 꼬리표를 달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성서 연구는 수세기 동안 이어져 내려온 그러한 생각이 잘못 되었음을 보여 주었다.
마태와 마르코 복음에 의하면,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익명의 어떤 여자가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다(마태 26,6 이하; 마르 14,3 이하).
이야기가 달라진 루가 복음에서는, 어떤 바리사이파 집에서 그 마을의 행실 나쁜 여자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는다(7,36 이하).
그런데 요한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발에 라자로의 동생 마리아가 향유를 붓는다(21,1 이하).

교회 전통에서는 이 모든 기사를 역사비평을 하지 않은 채 혼합시켜서,

예수께 향유를 부은 여자를 창녀라고 낙인하고, 그를 일곱 마귀 들렸던 마리아 막달레나와 동일 인물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마리아는 참 억울한 꼬리표를 달아야 했던 희생자였다.


우리도 "너는 항상 어떠어떠하다."라는 식의 꼬리표를 달고 있을 수 있다. 이때 우리도 똑같은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왔든지 간에 우리의 참된 모습이 어떤 것이지 찾아보아야 한다.
(꼰벤뚜알프란치스코회홈에서www.ofmconv.or.kr)



St Mary Magdalene-GRECO, El

1580-85.Oil on canvas, 108 x 87 cm.Nelson-Atkins Museum of Art, Kansas City


성 대 그레그리오 교황의 복음서에 대한 강론에서
(Hom. 25,1-2.4-5: PL 76,1189-1193)


막달레나는 누가 치워 버렸다고 생각한 그리스도를 애타게 찾았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에 가서 주님의 성시를 찾아내지 못했을 때
그 성시를 누가 치워 버렸다고 생각하고는 제자들에게 말해 주려고 갔습니다.
제자들은 와서 보고 그 일이 막달레나가 자기들에게 말해 준 대로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복음서의 기록은 다음과 같이 계속됩니다.  

"제자들은 자기 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어서 "마리아는 무덤 밖에서 울고 있었다."라고 덧붙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이 여인의 마음속에 있는 열렬한 사랑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제자들이 가버린 후에도 주님의 무덤을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찾아내지 못한 것을 계속 찾았습니다. 또 찾는 동안에 울고 있었습니다.

사랑으로 불타올라 누가 치워 버렸다고 생각한 그리스도를 애타게 찾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뒤에 남아서 혼자 찾고 있었기에 자기 혼자만 그분을 뵙게 되었습니다.
선업에 따라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항구심이기 때문입니다.


진리 자체이신 그분은 "끝까지 참는 자는 구원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찾았지만 처음에는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찾았기에 찾아냈습니다
찾고 있는 동안 그녀의 애타는 소망이 이루어지지 못하자 소망이 더욱 강렬해져
마침내 그것이 이루어졌습니다.

거룩한 열망은 그 성취가 지체될 때 더욱 커집니다.
열망이 지체되어 시든다면 그것은 참된 열망이 아니었다는 표시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진리에 도달하게 되면 이는 그가 진리를 불타는 사랑으로 갈망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내 영혼, 생명의 하느님을 애타게 그리건만, 그 하느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오리까."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아가에서 "나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상처를 입었도다."라고 말하고,
다시 "내 영혼이 녹아 버렸노라."고 말합니다. >

"여인아,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고 있느냐?"
마리아의 열망이 더욱더 커지도록 주님은 그에게 슬픔의 원인에 대해 물어 보시는 것입니다.
자기가 찾고 있는 분의 이름을 말할 때 그분께 대한 한층 더 큰 사랑으로 불타 오르게 하기 위해 물어 보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마리아야!’라고 부르셨다"
주님이 먼저 마리아를 "여인"이라고 모든 여성에 공통되는 명칭으로 부르셨을 때
그녀는 그분을 알아뵙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주님은 그녀의 이름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너를 알아보는 분을 이제 깨달아라.
나는 너를 다른 사람들처럼 일반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고 특별히 알고있다."
라고 명백히 말씀하시려는 듯이 그의 본이름으로 부르십니다.


마리아는 본이름으로 불리우자 자기를 부르는 분을 알아뵙고 곧장 "라뽀니" 즉 "선생님이여"라고 외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외적으로 마리아가 찾고 있었던 대상이었지만,

내적으로는 그에게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신 분이었습니다.




Scenes from the Life of Mary Magdalen: Raising of Lazarus-GIOTTO di Bondone
1320s.Fresco.Magdalen Chapel, Lower Church, San Francesco, Assisi



성서에 나타난 성녀 중 성모 마리아를 제외하고는 마리아 막달레나 만큼 우리의 관심을 끄는 성녀는 없다.
그러면 그녀의 사적(事跡)은 어떠한가?
상세한 것은 역시 알 수 없으나 이 성녀에 대한 성서의 몇 구절을 읽어보아도 그녀가 얼마나 주님께 대해 열렬한 애정을 가졌었는가,
또 자기 죄악을 얼마나 침통하게 후회했는가를 알 수 있고, 아울러 위대한 성녀라는 것을 저절로 느끼게 된다.

막달레나에 대한 기사는 루가 복음에 있다.
"악령이나 질병으로 시달리다가 나은 여자들도 따라 다녔는데 그들 중에는 일곱 마귀가 나간 막달라 여자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신하 쿠자의 아내인 요안나, 그리고 수산나라는 여자를 비롯하여 다른 여자들도 여럿있었다.
그들은 자기네 재산을 바쳐 예수의 일행을 돕고 있었다"(루가 8, 2-3)고 실려져 있다.
여기에도 있는 바와 같이 막달레나는 주님의 힘으로 악마의 손에서 구원을 받은 이래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힘을 다해 도와 드렸다.



초대 교회에서부터 내려오는 전승에 의하면,막달레나는 라자로와 마르타의 동생이요,
어렸을 때 양친을 잃고 유산의 분배를 받아 갈릴레아 지방인 막달라읍에 가서 호화로운 타락의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 외에 별다른 죄악은 없지만 주님의 허락하심에 의해 잠시 악마의 손에 인도되었는가에 대해 상세한 것은 알 길이 없다.
다만 예수의 도움으로 모든 죄를 통회하고 난 후로는 잠시도 주님께 대한 열렬한 사랑이 식은 바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성모의 순결 무구한 주님께 대한 사랑이 백합화에 비할 수 있다면,
마리아 막달레나의 통회의 피눈물로 모든 죄를 씻은 사랑은 진홍빛 장미에 비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주님께서 가시는 곳은 어디든지 그림자와 같이 따라다녔다. 갈릴레아의 광야를 헤맬 때도, 사마리아에서 기적을 행하실 때도 그 곁에 있었다.
이는 힘 닿는데까지 주님을 도와드리기 위함이었고 또 한 가지는 그의 가르치심을 잘 듣고 깨달아 실행하기 위함이었다.
예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를 칭찬하신 것도 이런 점에서였다.



예수께서 베다니아에 있는 그녀의 오빠 라자로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마르타는 주님의 입맛에 맞는 좋은 음식을 장만해 드리려고 부엌에서 분주히 서둘며 일을 했다.
그런데 이런 점에 조금도 유의치 못한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의 발아래 쪼그리고 앉아서 그 이야기하시는 말씀에만 정신이 팔려서 듣고 있었다.
이것을 본 마르타는 좀 불쾌했던지 노골적으로 불평을 터뜨려 놓았다.

"주님, 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떠맡기는데 이것을 보시고도 가만 두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거들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했다.


예수의 대답은 어떠했을까? "마르타,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된다"(루가 10, 40-42)하셨다.
이는 물론 기도와 묵상생활을 소홀히 하고 외부적 활동에만 정신을 쓰는 자들을 경계하시는 말씀인 동시에 막달레나의 구도(求道)에의 열성을 칭찬하시는 말씀이다.



이보다도 더 칭찬을 받은 일이 있다. 이는 바로 예수의 수난 6일 전의 일이다.
역시 베다니아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와 그 제자들을 초청하여 만찬회를 베풀었다.
마르타가 시중들고 있는 동안 마리아는 고귀한 나르드 향유 한 근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이는 단지 예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함이었는데 이것을 본 제자들 중에는
"이 향유를 팔았더라면 삼백 데나리온은 받았을 것이고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었을 터인데 이게 무슨 짓인가?"하고 투덜거렸다.
그때 마리아의 사랑을 아신 예수께서는 그들을 책망하며, "참견하지 마시오. 왜 이 여자를 괴롭힙니까? 이 여자는 내게 아름다운 일을 해 주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당신들 주변에 있을 터이니 하려고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들과 언제나 함께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여자는 자기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내 장래를 위해 미리 내 몸에 향유를 부어준 것입니다.
나는 분명히 말합니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하고 말씀하셨다.
이때 막달레나의 기쁨은 얼마나 컸을까? 이러니 그녀는 더욱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더욱 주님과 일치하게 된 것이다.



예수의 수난이 시작되자 수년간 그의 슬하에서 그의 교육을 받은 제자들도 적이 두려워 도망치거나 숨었다. 그러나 막달레나만은 그런 비겁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성모와 같이 갈바리아 산위에까지 그의 뒤를 따라갔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때는 그 밑에 쓰러져 십자가를 힘껏 부둥켜안았다.

십자가에 계신 주님의 피와 땀은 끊임없이 흘러내려 그녀의 부드러운 눈시울에서 뜨겁게 솟아나는 눈물과 합류되었다.
주님의 고통은 곧 그녀의 뼈에 사무쳤고 온통 부어오른 그녀의 두 눈에는 주님의 최후가 비치었다.
그녀는 슬퍼하는 부인들과 더불어 장례식까지 참여했고, 제일 마지막까지 성모의 곁을 떠나지 않고 위로해 드렸다.



그 후 삼일 째 되는 날, 즉 안식일이 끝나는 일요일 아침 일찍이 그녀는 주님의 시신에 향유를 발라 드리기 위해 무덤에 갔다.
그런데 주님의 시신은 없었다. 그녀는 어떤 사람이 주님의 시체를 훔쳐간 것인 줄 알고 매우 놀라며 사도들에게 급히 전하고 그 주위를 눈물을 흘리며 찾아 다녔다.
요한 복음서에는,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고 있느냐?"라고 기록되어 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그분이 동산지기인 줄 알고 "여보세요. 당신이 그분을 옮겨갔거는 어디에다 모셨는지 알려주세요. 내가 모셔 가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러자 "마리아!" 하고 부르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돌아본 막달레나의 앞에는 그리웠던 주님께서 서 계셨다.
주님께서는 미리 말씀하신대로 부활하신 것이다. 막달레나는 너무 기뻐서 "라뽀니(선생님이여)!" 하며 땅에 엎드렸다.
그리고 그녀는 주님께서 분부하신대로 뛰어가서 제자들에게 이런 기쁜 소식을 전했다."나는 주님을 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라고.



그 후 막달레나에 대한 더 세밀한 것은 알 수 없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녀는 오빠인 라자로와 같이 남 프랑스 지방에 귀양가서 여생을 은수 생활을 하며 지냈다는 말도 있고,
예루살렘의 총주교 모데스토나 투르의 주교 성 그레고리오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성모와 성 요한과 같이 에페소에서 일생을 마쳤다는 설도 있다.



St Mary Magdalen-DONATELLO

c. 1457.Wood, height: 188 cm.Museo dell’Opera del Duomo, Flo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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