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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최초의 순교? 카테고리 | 천주교
작성자이수근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07 조회수468 추천수0 신고

+ 신앙은 시작이요 사랑은 마침입니다.

 

 

* 천주교 탄압사건

1784년 에서 1785년 겨울,신생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한성 명례방 장악원앞(지금의 중구 명동1가) 김범우의

집에서 종교집회를 갖고있었다.

 

이때 추조의 금리들이 지나가다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술 마시며 노름판을 벌이는 것으로 의심하여

급습하였다.

 

그들은 천주교 서적과 성화,성물들을 압수하고

신자들을 형조로 끌고 왔다.

형조판서 김화진은 체포된 이들이 대부분 양반집 자제임을 알고 훈계 방면하였고 ,

중인 계급인 김범우만 구속하였다.

 

김범우는 배교를 거절하여 혹독한 고문끝에 충청도

단양으로 유배되었고, 1786년 가을 유배지에서 사망하여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조선 정부의 문헌에서는 이 사건을 '을사추조적발'사건으로

기록하였다.

 

한국천주교회사 ....에서.

 

 

김범우 [, ?~1786]

조선 후기의 역관(), 천주교 순교자.

세례명 토마스. 역관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1784년(정조 8) 이벽()의 권고로 천주교에 입교,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두 동생을 입교시키고, 자신의 집에서 천주교 집회를

자주 가지는 등 열렬한 신자가 되었다.

1785년 이벽 ·이승훈 ·정약전() ·정약용() ·정약종()

·권일신() 등 남인() 학자 수십 명이

그의 집에 모여 예배를 보다 당국에 발각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양반 ·명문 출신이었므로 성명을 밝히지 않은 채

방면되었으나, 중인()인 그는 혹독한 고문을 받고

단양()으로 유배되었다.

이 사건이 1785년에 일어난 을사추조적발사건()이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1년 만에 죽음으로써

조선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가 되었다.

이때부터 천주교가 사학()으로 규정되어, 금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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