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삼위일체에 대하여 궁금해서 묻습니다.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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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두석 | 작성일2009-01-03 | 조회수557 | 추천수2 | 신고 |
이하 김영준 형제님의 질문 사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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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교리가 약해서 그런것 같습니다만, 모른다고 탓하지 마시고 알려 주십시요.
일전에 다른 모 성당에 들려서 강론을 듣기를 잘못 들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삼위일체 다신이라 들어서 질문 힙니다.
제가 그때 듣기로는 우리는 유일신 야훼가 아닌 삼위일체신인 성부신 성자신 성령신의 다신이며 삼위일체신이라 하여 아리송 해서 어떻게 알아 들어야 하는지를 알고 싶어 합니다.
또 유태인들의 야훼신과 삼위일체와는 다른 개념을 갖고 생각 해야 하는지와, 알라신과 야훼신과의 차이는 완전히 다른 각자마다의 유일신을 주장 하는것인지 하나이신 유일신을 두고서 하는 뜻인지도 알려 주십시요.
저는 지금까지 야훼 유일신 안에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라고 알고 있었는데 잘못된 것인지가 궁금 해서 묻습니다.
그때 잘못 알아 들은 말인지 모르지만, 가만히 어떻게 생각 해보면 사실적으로 왜 구약 성서 에서는 이와 같은 삼위일체성을 암시하는 내용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유일하게 요한서에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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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김영준 형제님의 질문에 대해 나눔 차원에서 다음과 같이 제 견해를 적어 봅니다.
1.먼저 삼위일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교리서를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2.신부님의 강론은 위격에 있어서의 세 위격을 말씀하셨을 것으로 추정됨.
형제님께 강론하신 신부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신부님께서는 위격(PERSONA)에 관하여 설명하신 것으로 사료됩니다. 즉, 하느님께서는 본체(SUBSTANTIA)로는 한 분이신 하느님이시지만, 서로간의 관계(RELATIO)에 국한하여 세 위격(PERSONA)으로 스스스로를 계시하시는 삼위일체의 하느님이십니다. 다시 말해, 삼위일체라는 말이 다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분이신 유일신을 말하는 용어입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이 세 신(세 분의 하느님)으로 믿으면 다신교 우상숭배자가 되는 것이므로 교리서와 신부님의 가르침을 통해 바른 지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3.삼위일체에 있어 삼신론과 양태론 이단
삼위일체 하느님을 이해함에 있어, 한 분이신 하느님으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세 분의 하느님이 계신다 라고 생각하면 다신교신자가 되어 우상숭배자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에 있어 세 분의 하느님이 계신다 라고 믿는 것을 삼신론 이단이라 합니다. 반면에, 양태론이라는 이단이 있는 데, 이는 구약의 야훼 하느님이 스스로 신약에 들어와 예수 그리스도로 강림하시고 오순절 이후에는 성령하느님이 되시었다 라고 믿는 것으로서 한 분이신 하느님이 구약에는 야훼, 신약에는 33년동안 예수 그리스도로 지금은 성령으로 계신다 는 것입니다.
즉, 야훼로 계실 때에는 성자 성령이 안 계신 것이고, 성자로 계실 때에는 성부 성령이 안 계신 것이고, 성령으로 계실 때에는 성부 성자가 안 계신 것이라는 주장이 양태론인데 이는 이단입니다. 이단인 이유는 성경에 보시면 성부 성자 성령간에 관계가 분명히 계시되어 있고 위격적으로 구별이 되면서 각 각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신비적으로 말하면 하느님은 한 분이시지만 "홀로" 계시지는 않는다 라고 표현함으로써 삼위일체를 설명합니다. 성경에 보시면, 성자께서 성부께 기도드린 내용도 나오고, 성부께서 성자에게 말씀하시는 것도 나오고, 성자에게 성령이 내리시는 것도 나오므로, 혼자서 세 역할을 한다 라고 주장하면 성경이 거짓을 말하는 것이 되므로 양태론이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삼신론과 양태론 모두 이단이지만, 양태론은 유일신 신앙 안에 있으므로 덜 위험합니다. 반면에 삼신론은 다신교 신앙이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이단이라 하겠습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저는 삼위일체를 초기에는 삼신론적으로 받아들였으나 성경 통독 횟수가 늘어가면서 지금은 양태론에 가깝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삼신론에 가깝게 이해하여 다신교 우상숭배자가 되는 것 보다는 양태론에 가깝게 이해하여 유일신 신앙 안에 있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 한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이는 제 개인적인 견해임).
4.분리되지 아니하시는 한 분이신 하느님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느님이 한 분이신 이유는, 위격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을 지니심에도 분리되지 아니하시는 한 분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위격적으로 구별만 되시지 본체인 천주성에 있어서는 분리되지 아니하시는 한 분 하느님이심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위격적으로 구별할 때에도, 위격들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만 구별하셔야 합니다. 즉, 성부는 성자를 "낳은 관계"에 있어서 성부가 되시는 것이고, 성자는 성부로 부터 "영원으로부터 낳음을 입은 관계"에 있어서 성자가 되시는 것이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 부터 "발출되는 관계"로 인해 성령이 되시는 것입니다.
즉, 위에 설명드린 대로 세 위격에 있어 상호간의 관계에 있어서만 구별이 되시는 것이지 별도로 분리되시는 세 분의 하느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분리되지 아니 하심은 서로 간에 상호 내재하심에 의해서 입니다. 성부 안에는 성자와 성령이 계시고, 성자 안에는 성부와 성령이 계시는 것이며, 성령 안에는 성부와 성자가 계시는 것입니다.(성경에 이와 같이 계시됨. 바오로 사도의 서간문에 보시면,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우리 안에 성령과 성자 성부가 계시게 됩니다. 즉, 성령께서 우리 안에 생명으로 살아 계실 때, 삼위일체의 분리되지 아니하심에 의해 성부와 성자도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으로 우리 안에 살게 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께서 그리스도께서 바오로 사도 안에 살고 계신다 라고 표현하시는 것입니다.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시어 어좌 우편에서 중재기도하시는 것으로 성경에 나오지만 하느님의 무소부재하신 속성과 삼위의 분리되지 아니하심의 원칙에 의해 성령이 계시면 성자도 계시는 것입니다.)
5.구원의 경륜을 위해 삼위로 스스로를 계시하십니다.
구원을 계획하신 성부하느님, 강생하시어 십자가 구속공로를 세우신 구세주 성자하느님, 오순절에 강림하시어 이러한 구원은총을 우리에게 전달하여 주시고 우리 안에 생명으로 계시며 우리를 성화시켜주시는 성령하느님으로 성경에 계시되시는데, 이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구원의 경륜에 있어서의 삼위이신 것이지 본체(천주성)에 있어서는 한 분이신 하느님이심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구원의 경륜에서 보면, 성부는 창조주이시고, 성자는 구속주이시며, 성령은 성화주가 되십니다.
그렇지만 분리되지 아니 하시는 한 분이신 하느님이신 것입니다.
6.본원적 순서와 체험적 순서는 정반대입니다.
삼위께서는 성부께서 영원으로부터 성자를 낳으심으로 성자가 성부에게서 출생하시므로 성부 다음에 성자가 있으신 것이고, 성부와 성자로 부터 성령께서 발출하심으로 성령을 성부와 성자 다음에 순서를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기도문에 항상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본원적인 순서로 우리가 삼위 하느님을 호칭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삼위일체 하느님을 체험함에 있어서는 먼저 성령께서 은총으로 역사하시어야만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속주(구세주)로 믿게되고, 이러한 믿음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의 화해가 일어나 성부(구약의 야훼 하느님)에 대한 체험과 깨달음이 있게 됩니다. 성령의 은총으로 성자를 구세주로 알아보게 되고, 이후에 성부에 대한 깨달음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체험하는 순서는 성령--> 성자-->성부의 순서가 되어 삼위의 본원적인 순서와는 정반대로 우리가 하느님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부에 대한 깨달음을 갖게 될 때, 성경의 신구약에 스스로를 계시하신 세 위격의 성부 성자 성령하느님께서 분리되지 아니하시는 사랑의 한 분 하느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의 신앙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가지고 성경을 읽게 되면 구약이 신약의 그림자이며, 그 실체(그림자의 실체)는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구약과 신약이 영적으로 연결되는 은혜를 입게 되어 성경을 전체적으로 하느님의 구세사적인 입장에서 이해하게 되며, 구약의 야훼 하느님과 신약의 그리스도,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께서 한 분이신 사랑의 하느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7.체험적 순서에 있어서의 믿는 이가 인식하게 되는 하느님.
하느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는 상태로 살던 사람에게 성령께서 은총으로 역사하시면 절대적인 존재(하느님)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이 작동하여 내면에 경외심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아직은 하느님에 대해 실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과연 실재하시는 것인지 어쩐지 확신할 수 없고, 만일 계시다면 구약에 나타나는 심판의 하느님, 징계의 하느님으로 인식하여 무서운 하느님이실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성령께서 깊이 역사하시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구속공로로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해방시키신 구세주 성자 하느님이심을 깨달아 알게 됩니다. 이때, 막연하여 알 수 없고 어쩐지 무서워 보이는 심판주 하느님이 실제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구세주 사랑의 하느님이신 것으로 깨달아 알게 됩니다. 즉, 하늘 어딘가에 계신다는 무서운 하느님이 역사상에 실재하신 성자하느님(주 예수 그리스도)이 되시어 우리에게 구세주로 계시되시는 것입니다. 알 수 없던 하느님에서,이천년 전에 실재하셨던 구세주 하느님(예수님)으로 드디어 손에 잡힐 것 같은 가까운 하느님으로 우리에게 인식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믿는 이에게는 믿음이 견고하지 못해 의심이 드는 문제가 있게 됩니다. 성경에 의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천년 전에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시어 40일후에 승천하시고 오늘 날 성부 오른 편에서 우리를 위한 중재기도를 하신다는 데, 웬지 실감이 나지 않고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이천년 전에 십자가를 지시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었다는 데, 어떤 날은 믿어지다가 어떤 날은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누구나 신앙의 초기에는 이런 문제가 있으셨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러한 문제는 성령께서 믿는 이 안에 충만하게 임하시어 생명이 되실 때, 해결됩니다. 분리되지 아니하시는 원칙에 의해 성령께서 우리 안에 생명이 되실 때, 성령과 함께 성부와 성자께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시게 됨으로써, 우리의 심령에 하느님의 보좌가 펼쳐지고 보좌에서 솟는 생명강수(생명의 기쁨과 평화)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느님을 우리의 생명으로 우리 자신 안에서 체험하게 되고 경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 있는 믿는 이는 하느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 안에 생명으로 살아계시는 하느님이 되실 때, 성령의 인도로 우리는 선행을 자발적으로 기쁘게 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할 때,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알게 해주셔서 하느님의 뜻 안에서 성경을 바르게 깨달아 알고 성경말씀이 레마가 되어 우리의 생명의 양식이 됩니다.
구약의 삼위일체 관련한 성경말씀과 유대교및 이슬람에 대한 견해는 아래 답변 글에 별도로 올리겠습니다.
전기한 내용은 성경과 교리서를 통해 알게 된 내용에 제 개인적인 견해를 더한 것인데, 만일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 있다면 제가 쓴 내용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잘못된 것임을 밝혀둡니다.
추신:
삼위일체는 천주성에 관한 신비이기 때문에 언어문자를 통해서 우리가 온전하게 그 깊이와 높이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읽으시며 기도로 성령님께 청하시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주님께서 깨달음을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순수한 영이시고 초월적인 분이시므로 우리의 제한되고 상대적인 언어문자나 인식, 논리 체계로 우리가 하느님을 온전히 깨달아 알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계시된 이상으로 자꾸 상상을 하는 것은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므로 가능하면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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