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교우간의 호칭에 대하여 궁금합니다.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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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경호 | 작성일2010-02-12 | 조회수719 | 추천수0 | 신고 |
형제님의 글 속에도 하느님의 눈으로 예수님의 입으로 성령의 의지로 작은 정성을 기울이고자 하시는 예지가 느껴집니다. 또는 온 머리를 다하여 온 마음을 다하여 온 어깨의 힘을 다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총만을 믿으려 애쓰시는 단초를 제공하고 계시다고 여겨집니다.
성호경의 신성과 인성이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대필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자주 하느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지향하고 있으나 그 신성과 인성의 분리 현상을 만나곤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지체로서 즉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과 지체인 우리가 평화, 화해, 일치등으로 나아갈 수 있음은 그 호칭의 의미속에서도 찾을 수 있으며 형제님처럼 섬세한 열정도 필요할 것입니다. 이는 최고의 주님 사랑을 지향하는 우리가 마땅히 최선을 다하려는 의지와 조화를 이룰 대상이기도 할 것입니다.
저의 좁은 식견으로 볼 때 형제, 자매라 하는 칭호는 언제나 오늘만을 사는 우리가 보다 주님과 일치하려는 의지의 내일을 구현함에 있어 아침, 점심, 저녁론 또는 두 배의 기도인 성가를 부를 때에도 초, 중, 종성과 관련이 깊다고 여겨집니다. 즉 초성을 아기처럼 여리게, 중성은 햇살을 받는 점심의 그것처럼 그리스도의 은총만을 따르려는 즐거움 속에서의 하늘에서 지상으로 즉 내려놓는 음이 편하기에 자주 우리가 편법등을 동원하여 옥타브를 내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형제님의 그 사랑의 도화선으로부터 시작된 이타적 즐거움의 이치를 깨우치게 되면 그 최고와 최선의 편차도 줄어들어 프로 가수 부럽지 않은 성령 감화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음정도 그 입김마저 알뜰하게 하늘 높이 올림으로서 회심으로 진화되는 생명체인 사랑의 마음을 더욱 구현하게 될 것입니다.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하느님과 함께라면 내가 밑에서 위로의 음정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아시게 되겠지요. 이는 현재 형제님의 질문 속에도 담겨 있음을 느낍니다. 하느님의 작품인 수평선과 지평선을 평화롭게 바라보는 음정도 물론 좋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머니 태중에서의 10개월 태교가 100년의 인생을 좌우한다고 하였습니다.
성호경을 바탕으로 한 태교에 정진할 때 우리는 이미 영원한 탄생이라는 죽음 이후의 세번째 탄생을 준비하는 태교의 자세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 때의 형제님과 자매님의 칭호속에는 그 성화된 마음 지향의 그것들이 녹아있습니다. 형제님의 경우는 그 신중함 속의 자연스럽게 녹아든 예의 즉 가톨릭의 전례를 닮은 것이 많다고 봅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입으로 이웃에게 형제님 그리고 자매님 하고 불러보십시오. 자연도 또한 우리에게 형제님, 그리고 자매님 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영원 앞의 우리는 모두가 그리스도의 아들 딸입니다. 마침내 쌍둥이 아들과 딸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결코 남을 비교하지 않겠다는 단단한 평화의 정신으로 하루를 열 때 나의 생각은 그만큼 소멸될 것이고 하느님이 더욱 활동하시게 될 것입니다. 2월 달력을 보니 故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아래와 같은 말씀을 주셨지요.
내가 내적 침묵을 잃고 나로 가득 차 있을 때, 하느님은 그런 나를 통해서는 아무 것도 하실 수 없습니다. 하느님이 나를 통하여 아무 것도 하실 수 없을 때, 그런 하느님은 죽은 하느님처럼 나타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내가 참으로 약하고 가난함을 깨닫고 하느님께 겸손되이 나 자신을 열 때 하느님은 이런 나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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