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읽으며
우리는 하나 하나의 사건에서
이른바 하느님의 섭리를 느낀다고 하지만
한 번 생각해 보자.
한 아기를 마구간에서 태어나게 하는데서
어찌 하느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으랴!
아기들을 학살하는 헤롯의 만행에서
어찌 하느님의 얼굴이 보이겠는가!
생각해보라.
우리가 만일 그때 요셉과 마리아였다면
이른바 하느님의 섭리를 생각이나 했겠는가!
더 나아가 우리가 제자들이었다면
무기력하게 체포당한 예수를 버리고 어찌 달아나지 않았을까,
그것이 하느님의 뜻인 줄
그 자리에서 어찌 수긍할 수나 있었겠는가!
또한 처참한 몰골로 십자가상에 못 박혀 계신 그분을 보면서
하느님의 능력을 믿기란 얼마나 어려웠을까,
"이래도 하느님은 계신가!"라고 울부짖지 않았겠는가!
더욱이 그분의 죽은 몸뚱이를 받았을 때,
하늘은 캄캄하고 온 천지가 악마처럼 으르렁거릴 때,
그 압도된 절망의 상태에서
싸늘히 식은 상처투성이의 몸뚱이를 받았을 때,
과연 그 순간
"그래도 하느님은 계시고 전능하시다!"라고
자신에게 다짐할 자 누구일까!
갈릴리 그녀들이 무덤을 봐 둔 것도
오직 인간 예수에 대한 사랑에서일 뿐
그 때 그 시간 그 무슨 부활의 기대 같은 것이 있었겠는가!
이처럼 한 사건을 통해
하느님의 섭리를 신앙인이 느껴 깨달아 믿는다는 것은,
차라리 우주만물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는 것보다
더 어렵기만 하다.
왜냐면 후자의 경우엔 어디까지나
우리가 능동적 위치에서 찾아갈 수 있지만,
사건이란 마치 제자들이 잠들어 있을 때
예수 체포 사건이 일어났듯이
불시에 덮쳐 오는 예가 많기에,
신앙인의 눈은 캄캄해지고
믿음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생각은 아예 마비되는
그런 상태에 빠져들기 쉬운 것이다.
우주를 차분히 그리고 깊이 관조하여
"모든 것엔 하느님이 계시고,
모든 일은 하느님이 하신다"고
굳은 깨달음을 품고 있는 자가,
뜻밖의 한 사건에 접하여
"도체 하느님이 이럴 수가 있나? 이건 안돼!" 하며
멍청할 정도로 허둥대는 경우란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볼 때 예수께서
자신의 그 수난사건 모두를
"예언서에 기록된 하느님의 섭리"로 보시고서
"자신을 낮추어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명하신 것"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신앙인이라면 그러한 믿음을 지니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