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장절 표기는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든 것인가? 신약성서를 작은 대목으로 구분한 필사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알렉산드리노 사본과 바티칸 사본이다. 이 두 사본은 다 같이 4세기에 필사되었다. 알렉산드리노 사본은 우리가 오늘날 '장(Chapter)'으로 부를 수 있는 구분을 해놓았는데, 네 복음서의 경우, 마태오를 68장, 마르코는 48장, 루가는 83장, 요한 18장으로 분류하였다. 그 반면 바티칸 사본은 '장'의 구분을 본문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한 '표제(Title)'로 대체하였다. 예를 들어 마르 1,1-22는 머리말이어서 건너뛰고, 첫번째 표제로 1,23에 '마귀들린 사람'이 나온다. 두 번째 표제는 1,29에 '시몬의 장모'이다. 바티칸 사본은 이 모든 표제들을 책머리에 한데 모아 목차처럼 제시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현대판 성서에서 보는 장의 구분은 파리 대학에서 공부하고 그곳에서 가르치다 나중에 캔터베리 대주교가 된 스티븐 랑톤(1228년 사망)이 처음 창안했고, 도미니코회 소속 쌍또 까로의 휴고 추기경이 1238년 '성서색인(Sacrorum bibliorum concordantiae)'에서 처음으로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신약성서의 경우 절의 구분은 훨씬 후대로 넘어온다. 그것은 1550년 로베르 에티엔이 파리에서 그리스말과 라틴말로 된 신약성서를 출판하면서 시작되었다. 전해지는 말로는 에티엔이 말을 타고 여행하면서 절 구분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가끔 눈에 띄는 부적절한 절 표시는 말이 뛰는 바람에 생겨난 오류라는 것이다. 실제로 에티엔의 아들이 증언하는 바에 따르면, 그가 이 일을 완성한 것은 리옹에서 파리로 여행하는 동안이었다. 아마도 여행중에 여인숙에서 쉴 때 이 일을 했던 것으로 보면 가장 무난한 추측일 것 같다. 구약성서를 작은 단위로 나눈 가장 오래된 필사본은 1947`년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구약성서 사본들이다. 쿰란 구약성서 사본은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까지 에세네파 공동체에서 사용하던 사본들이다. 이 사본들을 보면 주제별로 문단을 나누어 놓고 있는데, 한 문단이 끝나면 다음 문단이 시작될 때까지 공란으로 비워두거나 아예 한 줄을 띄워 쉽게 구분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한 문단을 더 작은 단위로 구분할 때는 보통 9글자만큼의 공백을 두었다. 이 쿰란 사본의 구분은 구약성서의 현대어 번역본들이 원본으로 삼는 마소라 본문의 구분과 대부분 일치한다. 기원후 6세기 티베리아에서 보다 완벽한 히브리말 구약 성서를 만들고자 했던 마소라 학자들은 자신들이 편집한 본문에 여러 가지 액센트를 첨가함으로써 오늘날 현대어 성서들에서 볼 수 있는 절 구분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구약성서 본문에 숫자를 곁들여 장과 절을 구분해 놓은 것은 히브리 전통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불가타 전통에서 나온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캔터베리의 주교 스티븐 랑톤이 13세기에 파리에서 불가타 성서를 펴냈는데, 이때 처음으로 구약성서의 장·절 구분이 숫자로 표기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불가타 성서는 '히브리적 진리(hebraica veritas)'를 추구하던 예로니모 성인이 390-405년에 유다인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히브리말 원전을 라틴말로 옮긴 것이다. 이 성서에 붙여진 '불가타'라는 라틴말의 뜻은 '일반적인 것'으로서 이 번역본 성서의 대중적 인기를 가리킨다. 랑톤 대주교가 불가타 성서에 붙인 장·절의 숫자는 히브리말 구약성서에 대부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러나 몇몇 군데서 현대어 번역본들이 원본으로 사용하는 BHS(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스투트가르트판 마소라 구약성서)는 장·절의 구분에서 불가타와 차이를 보인다. 다른 언어권 구약성서 번역본들은 BHS`의 표기만을 수용하나, 우리말 공동번역과 몇몇 영어판 성서는 BHS와 불가타의 표기를 같이 소개하거나, 아니면 BHS의 표기를 버리고 불가타의 표기를 따르기도 한다. 주교회의 성서위원회에서 펴내고 있는 구약성서 새번역은 BHS의 표기만을 따른다. [정태현 신부 저, 놀라운 발견, 바오로딸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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