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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창세기 입문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2 조회수11,494 추천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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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입문

 

 

창세기는 오경의 첫 번째 책이다(오경 입문 참조). 이 책은 그 이름이 가리키는 것처럼 세상의 기원,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시는 하느님 활동의 시작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러한 창세기는 토라(또는 모세의 율법)의 일부를 이루면서도 본질적으로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이 민족의 표현에 따르면 그들의 ‘아버지들’), 그리고 신앙인들이 자기들의 선조로도 받아들이는 이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하여 창세기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되며, 유다 민족과 그리스도의 교회와 더불어 온 인류와 관련되는 역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창세기는 선조들의 생애 동안에 일어난 일들을 전하는데, 이것들은 하느님께서 세상의 구원을 준비할 목적으로 아브라함과 그 가정의 역사에 지속적으로 개입하심을 드러낼 수 있도록 배열되어 있다. 이는 선조들의 이야기 앞에 나오는 일종의 서론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서론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을 세상의 여러 민족들 가운데 배치시키면서, 성서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설화들을 담고 있다. 창조, 아담과 하와, 노아의 홍수, 바벨탑 등, 인류의 지상 여정 그리고 그들의 활동과 실패에 대하여 인상적으로 요약한 것들이다. 

 

이러한 창세기, 그리고 이 책이 말하는 이야기들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체를 그 역동성 안에서 파악해야 하고, 그 이야기들을 다른 것들과 관계없는 단편들로 분해해 버려서는 안된다. 그리고 이 책의 널리 알려진 부분들 가운데 어떤 한 부분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일 경우에도 다음의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곧 오경 입문에서 강조된 것처럼, 창세기가 선조시대에 대한 일종의 역사서로서 독립적인 작품이 아니라, 이 땅 위에서 당신의 증인으로 세우시려고 하느님께서 여러 민족들 가운데서 어떻게 당신의 백성을 뽑아 이루시는지를 이야기하는 광범위한 전체의 시작일 따름이라는 사실이다. 아울러 창세기가 단숨에 저작된 것이 아니라, 여러 세대 동안 계속된 문학적인 작업의 결과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자기네 선조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전해 주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겪어야 했던, 때로는 고통스런 체험들도 반영한다. 이렇게 해서 창세기는 이스라엘 역사의 성쇠와 관련해서 끊임없이 다시 풀어 읽히는 살아있는 전통을 전제로 한다. 현재의 창세기 본문은, 자기들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업적에 대해서 이스라엘이 필연적으로 되풀이해서 깊이 생각한 결과라는 사실을 함께 고려할 때에만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업적은 연속적으로 이루어진 본문의 여러 편집에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이 후대의 편집 작업들은 그 기초가 된 최초의 초고를 파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계시들과 더불어 그것들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1. 창세기의 구성

 

창세기는 통상 두 부분으로 나눈다. 곧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 살게 된 인류의 시작을 다루는 창세 1-11장과 선조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창세 12-50장이다. 이 두 번째 부분은 다시 아브라함(12-25장), 이사악과 특히 야곱(26-36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셉에(37-50장) 대한 세 개의 서로 이어지는 설화들로 세분된다. 이를 ‘종적’인 구분이라 부를 수 있다. 그리고 이 구분은 창세기의 내용을 말해 주기 때문에 편리한 면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구분, 곧 성서의 이 첫 번째 책이 창세기 50장을 넘어서는 여러 문학적인 지층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드러내 주는 ‘횡적’ 구분을 선호할 수도 있다. 사실 현재의 창세기는 야훼계, 엘로힘계, 사제계라 불리는 여러 문학적인 지층들로 구성되어 있다(오경 입문 참조). 이들은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서로 중첩되기는 하였지만 오경 전체를 통해서 다시 발견할 수 있다. 

 

가장 오래된 창세기라 부를 수 있는 야훼계 설화는 이미 현재의 창세기가 보여주는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이 야훼계 저자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동물과 식물 사이에서 살게 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이 아니라 다른 존재의 말을 들음으로써, 에덴에서 쫓겨나 고통과 혼돈과 분열 속에서 살게 된다(2-4장). 인류는 자기들 사이의 일치를 이루려고 시도하지만 실패한다(11장).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의 진정한 모임을 준비하시고 또 그것을 실현하신다. 그렇게 해서 그분께서는 노아를 홍수에서 건져내시고(6-9장)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 안에서 당신의 복을 받도록 하신다(12장). 아브라함 선조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 성소에서 저 성소로 옮겨다닌다. 그러면서 그는 하느님의 약속을 받는데, 이스마엘의 탄생과(16장) 이사악의 탄생이(18-21장) 그 약속을 보증한다. 아브라함의 설화는 이사악이 메소포타미아의 아람 땅에 사는 친척 처녀와 혼인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24장). 

 

아브라함의 이 상속자에 대한 전승은, 비록 자기 아버지에 대한 전승들보다 더욱 견고하게 대지와 역사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 수가 많지 않을 뿐더러 별로 두드러지지도 않는다(26장). 이사악이라는 인물은 처음부터, 장차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통일을 이루게 되는 열두 지파의 선조인 야곱에 의해서 압도된다. 이 야곱은 생의 대부분을 약속의 땅 밖에서 지낸다. 그는 또한 일생 동안 하느님 그리고 다른 인간들과 투쟁을 벌여야 하는 인간이기도 하다(32장). 실제로 야곱은 지속적으로 자기 부인의 민족인 아람인들, 이스라엘의 형제 민족인 에돔족의 조상인 에사오, 또 가나안의 주민들과 분쟁을 일으키게 된다(34장). 그러다 그는 에집트에서 생을 마친다. 

 

창세기는 야곱의 아들들의 역사와 함께 끝을 맺는다. 이들 가운데서 유다와 더불어 요셉이 중요한 구실을 한다. 형들은 요셉을 제거하려 하지만, 요셉은 형들을 에집트로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을 굶주림에서 구해 낸다. 

 

야곱은 숨을 거두기 전에 자기 자식들에게 축복하는데, 유다를 그들의 임금으로 지명한다(창세 49). 야곱에 이어 요셉도 죽는다. 이로써 요셉은 자기 가족들을 머지않아 노예생활을 하게 되는 땅에 그냥 놓아둔 채 세상을 뜨게 된 것이다. 

 

이렇게 에집트에서 살게 된 선조들의 해방은 창세기에 이어지는 책, 곧 출애굽기의 주제가 된다. 

 

왕조시대에 저작된 것이 틀림없는 야훼계 설화는 지방 및 씨족 전통들 가운데서 첫 번째로 문학 형식을 취하게 된다. 이 설화는 아브라함의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약속, 그리고 이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 겪게 되는 어려움을 이스라엘의 지파들에게 상기시킨다. 

 

왕국의 분열로 인한 하느님의 백성이 누리던 일치의 파괴, 그리고 그것에 이어지는 어려운 시기는 이스라엘에게 선조들의 역사에 대한 수정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보완을 요구하는 문제를 새롭게 제기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엘로힘계 전승이 두 번째 문학적 지층을 이루게 되는데, 그 범위와 중요성을 밝혀내는 작업은 쉽지가 않다. 이 전승의 어조는 앞선 야훼계 문헌보다 더욱 간결하면서 그보다 덜 낙관적이다. 또한 이 전승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인간사에 덜 직접적으로 개입하시고, 당신의 종들에게서 무엇보다도 먼저 순종을 기대하신다. 이 전승 안에서 가끔 예언 현상의 영향을 알아볼 수 있다. 예컨대 아브라함은, 하느님 때문에 신앙의 시련을 겪게 되는(22장) 예언자로서 받들어진다(20,7). 

 

기원전 587년에 일어난 예루살렘의 참혹한 몰락으로 선조들의 발자취에 대한 서술을 새롭게 수정해야 했다. 이 작업은 메소포타미아에 유배 간 사제들에 의해서 수행된다. 이렇게 이루어진 사제계 문헌은 하느님의 업적의 제의적 그리고 법률적인 면들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하여 노아의 계약을 이어받고(9장) 시나이 계약을 준비하는 것으로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을 강조하게 된다(17장). 

 

이 사제계 전승은 세상 창조와 더불어 성역사(聖歷史)를 시작하게 함으로써(1장), 창세기의 이야기에 결정적인 짜임새를 부여하고, 족보와 연대기적인 자료를 통해서 인류 운명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동시에 계약 또는 특수 규약의 제정으로 표시되는 여러 단계를 드러낸다. 이러한 단계 곧 창조에서 노아까지, 그리고 노아에서 아브라함에게까지 이르는 단계를 거쳐서 이스라엘은 결국 뭇민족들 사이에서 유일하신 하느님께 참다운 예배를 드리는 백성이 되는 것이다.

 

 

2. 창세기의 전거(典據)

 

성서의 저자들은 세상과 인류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고대 근동 특히 메소포타미아와 에집트 그리고 페니키아-가나안 지방의 전통들을 망설임없이 직간접적으로 그대로 쓰고 있다. 사실 지난 한 세기 동안 이루어진 고고학적인 발견은 창세기의 첫 부분, 그리고 수메르와 바빌론과 에집트 중부의 테베 또는 북부 시리아-팔레스티나에 있던 우가릿의 서사시와 지혜문학과 전례 문서들 사이에 많은 공통점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이 자리잡은 지방이 외국 문물의 영향에 넓게 열려있었음을 안다면,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이 밖에도 하느님 백성 자신이 자기들의 역사를 통해서 근동의 여러 민족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았다. 그러나 고고학의 발달은 동시에, 창세기 앞부분의 여러 장들에 들어있는 이야기들을 지어내고 수정한 저자들이 기계적인 모방자들이 아니었음을 드러낸다. 이들은 고대 근동의 이야기들을 그냥 가져오지 않고, 자기 민족의 특수한 전통이라는 틀 안에서 그 자료들을 다시 작업하였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야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독창성을 보존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근동의 설화들을 이용하여 자기네 신앙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 수가 있었다. 

 

그렇더라도 성서 본문을 그 옛날에 널리 알려져 있던 세상 기원 또는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들과 비교하는 것은 성서의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일이다. 고대 근동의 수많은 문학적 증인들 중에서 여기에서는, ‘에누마 엘리쉬’라 불리는, 마르둑 신이 이룬 창조에 대한 바빌론의 설화, 바빌론판 홍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웅 길가메쉬의 모험 이야기, 그리고 (바벨탑 이야기를 상기시키는 것으로서)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성읍 주민들이 자기네 신들을 위해서 지은 큰 탑들 등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이스라엘 선조들의 이야기는, 비록 거기서 말해지는 사건들이 일어난 뒤, 훨씬 후대에 와서야 편집 또는 저작되었지만, 그들이 살던 당시의 주변 환경에 실제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입증한다. 고고학자들은 다시 한번, 특히 우가릿과 마리에 대한 비교적 최근의 발견을 통해서 선조 전통들의 복합성과 동시에, 이 전통들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기원전 천년대의 생활상에 잘 부합됨을 인식하게 해준다.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의 관습은 메소포타미아와 에집트를 잇는 ‘비옥한 반달 지역’을 따라 이주하면서 양과 염소를 치던 반유목민족의 관습을 상기시킨다. 이들은 농경지에 정착한 주민들과 다소 접촉하면서 살았는데, 때로는 평화적인 관계를, 때로는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선조들의 가문들을 이루는 여러 집단들은(이들 사이의 정확한 관계를 우리로서는 잘 알지 못한다) 가나안에 정착하는 과정에 있었는데, 이 땅은 그뒤 그 후손들의 땅이 된다. 

 

선조들에 대해서 일관성있는 역사를 기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성서의 문헌들과 이스라엘 선조들 사이를 넓게 갈라놓는 시간 때문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이 선조들이 자기네 집단과 더불어 정치적 역사 무대의 가장자리에서만 살았기 때문이다. 그들에 대한 전통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굶주림으로 위협받는 지방에서 가정의 생계를 꾸려나간다거나, 가축을 위해서 기름진 땅을 마련하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관심들을 반영한다. 그리고 끝으로, 그들 생존에 관한 몇몇 일화들만이 우리들에게 전해진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도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선조들에 대한 창세기의 이야기들은 그 전부가 당시 문화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 민속적이고 가족적인 것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옮겨다니면서 살아야 하는 선조들과 늘 길을 함께하시고 그들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약속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그들의 믿음을 드러낸다.

 

 

3. 창세기의 주제와 인물

 

창세기는 풍부한 주제와 인물들을 담고 있다. 이들은 성서의 다른 구절들에도 나올 뿐만 아니라, 유다교 전통은 물론 그리스도교 전통도 이들에 대한 깊은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창세기는 창조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이 이야기는 시편들에서 불려지고(시편 8; 104) 욥기의 저자에 의해서 상기되며(욥 38 이하), 제2이사야에 의해서 되새겨진다(이사 40 이하). 에덴 동산에서 보인 아담의 자세는 바오로 서간에서 새로운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자세와 비교된다(로마 5; 1고린 15). 노아 홍수의 이야기는 종말의 극적인 사건의 배경(마태 25) 또는 세례성사의 예형(豫形)으로 사용된다(1베드 3). 아브라함의 운명은 약속과 함께 시작되는데, 이 약속은 이후 하느님에 의해서 끊임없이 확인된다. 이렇게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은 그의 가까운 자손들, 그리고 먼 후손들의 미래를 밝혀주고 결정짓는다. 이러한 약속의 성취를 선조들, 그리고 여호수아 때와 다윗 때에 이스라엘 전체가 고대하였고, 사도 바오로는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었음을 경축한다(갈라 3). 이사악의 희생제사는 선조들의 은덕을 기리는 랍비들의 주의를 끌었고, 초세기의 교회에서는 성금요일에 대한 예형이 된다.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신학은, 세상 기원의 신비와 그 운명의 의미를 알아듣기 위해서, 그리고 인간들을 위한 하느님 업적의 첫 단계들을 발견하기 위해서 대대로 성서의 이 첫 번째 책을 읽고 또 읽는다. 사실 창세기는 개인과 민족들이, 당신 자신을 아브라함에게 계시하신 하느님 사랑의 의지 안에 삶의 뿌리를 내리도록 해준다. 

 

창세기의 몇몇 인물들이 특별히 우리의 관심을 끈다. 야훼계 전승이 섬세하고 심오하게 그려낼 뿐만 아니라, 그들 안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도록 초대하는 아담과 하와 부부; 주님의 은혜를 받고 그분의 명령을 수행하는 노아; 유다인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인들과 회교도들까지도 존경하는, 신앙인들의 선조로서 마지막까지 자신을 투신한 믿음과 소망의 증인인 아브라함; 그렇게 기다리던 아들로 태어났지만 끊임없이 위협받고 결국 자기 가족들의 음모 앞에서 농간당하는 이사악; 가까운 친척들과의 끊임없는 대결 상태에서 속고 속이며 살았고, 하느님의 강복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할 각오가 되어있었으며, 하느님을 만난 결과로서 자기 몸에 계속 그 흔적을 지니고 산 야곱; 잊혀진 채 무죄한 감옥살이를 해야 했지만, 에집트의 재상이 되어, 결국 그러한 운명으로써 모든 것을 당신의 선택된 이들의 선에 기여하도록 만드시는 주님의 지혜를 드러내는 요셉 등이다. 

 

이러한 남성들과 더불어 선조 전통들 속에서 여인 또는 어머니가 수행하는 일 역시 가볍게 볼 수 없다. 뱀의 유혹에 빠지긴 하였지만, 전인류의 어머니가 되도록 부름을 받는 하와(3장); 약속된 아들 이사악의 어머니가 된다는 말을 듣고 웃는 사라(18장); 자기가 더 좋아하는 아들 야곱을 위해서 음모를 꾸미는 리브가(27장); 갈등 속에 살아가는 레아와 라헬(29장 이하); 보디발의 아내(39장) 등등. 이들은 성서 전통이 제시하는 대로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아담과 아브라함과 이사악 등과 함께 소개되는 여인들이다. 

 

주제와 인물들과 관련한 창세기의 풍부함은 성서의 세계로 들어가는 하나의 문으로서 신앙인들은 그 앞에서 크게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출처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 새번역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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